■ 숨쉬는 무형유산 이야기⑵ – 충남 공주 이상근 얼레빗 목소장

농촌은 우리 먹거리 생산과 함께 옛 선조들이 지켜온 전통유산이 발견되고 보존·전승돼온 터전이다. 최근 우리나라는 한복, 김치 등 옛날부터 전해 내려오면서 선조의 지혜가 담긴 무형유산을 다른 나라가 우기는 만행을 겪어야 했다. 이에 우리나라 무형유산 주권의식을 높이고 이를 지키고 전승해온 보유자를 만나 널리 알려지지 않은 전통유산의 가치를 조명해본다.

▲ 전국 유일 얼레빗 기능보유자인 이상근 장인(충청남도 무형문화재 42호)이 작품 제작을 하고 있다.

독성 없고 온화한 토종대추나무로 수작업
얼레빗에 문화유산 조각한다는 자긍심 커

뿌리 깊은 10가지 기능성 빗
조선시대 숙련된 장인들은 중앙과 지방 관부에 속해 외교, 군사, 왕실의례와 일상생활 등에서 요구되는 물품들을 제작했다. 이는 <경국대전(經國大典)>에서 중앙 관부에 129개 분야, 총 2841명의 경공장이, 지방 관부에 27개 분야, 총 3656명의 외공장이 속하도록 규정했다. 
나무를 깎아 만든 ‘얼레빗’ 7대 기능보유자 이상근 장인의 선조들도 외공장으로 소속돼 조선 왕실의 빗을 제작했다. 왕실에서는 머리를 올리고 단장하기 위한 기능성 빗이 10가지에 달했는데, 시대에 따라 두발문화가 변모하면서 빗 또한 다양하게 발전했다.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머리를 단정하게 가꾸면서 일생동안 3번 머리를 바꿨어요. 유년기에 댕기머리, 혼인하고 쪽진 머리, 사후에 인연을 풀어내듯 머리를 풀어 매장했죠.”
이상근 장인은 10가지 빗을 쓰는 민족이었으니 두발문화가 광범위했다고 설명했다. 왕실에서는 머리카락으로 만든 가채를 왕관 대신 썼고, 백성이 이를 따라해 솎아낸 머리카락을 묶은 달비를 만들어 머리를 풍성하게 보이도록 했다. 엄마는 달비를 딸에게 물려줬고, 당시 농촌여성의 화장대에는 달비 대여섯 묶음을 꼭 갖고 있었다고 한다.

“일제강점기 단발령도 두발문화를 통제해 민족말살정책을 시행하려던 것이었어요. 5000년 문화가 36년 만에 뒤집힌 뼈아픈 역사입니다.”
이때 이상근 장인의 아버지도 일제 군부에 끌려가 전통 빗을 만들지 못하도록 통제 받았다고 이 장인은 전했다. 

나무로 만들어 정전기 없어
해방 이후 이상근 장인은 가업을 전승해오고 있다. 이상근 장인은 빗이 두피와 직접 닿기 때문에 원재료가 되는 나무도 성격이 온화한 과수나무를 사용한다고 했다.
“과수나무는 독성이 없어 목재로 쓰기 좋습니다. 무늬와 재질이 좋은 토종대추나무를 주로 사용합니다.” 

이 장인은 토종대추나무를 대구, 청도, 봉화의 대추 농가를 찾아 1년치 수량을 베어온다고 했다.
“20~30년 동안 매년 대추농가를 가는데 겨우살이 병이 핀 대추나무들이 생겨서 농업인 어르신이 베어 달라며 서로 상생할 때도 많아요.”
어르신이 품값을 들이지 않고 병든 나무를 제거하는 데 도움을 준다고 이상근 장인은 덧붙였다.

“나무를 잘라서 대패질하는 공정이라서 10~20개 수량을 잡고 빗을 만들기 시작해요. 장식 없는 평빗은 하루에 10개도 만들 수 있습니다. 빗에 조각을 하게 되면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얼레빗이 완성되면 식물성 기름을 발라 마무리한다. 염색하지 않은 천연의 나무 빛이 더해진 얼레빗은 오래 봐도 질리지 않고, 머리 빗질을 하면 사람의 머릿기름이 더해져 쓰면 쓸수록 윤택이 난다고 이 장인을 말했다.

이렇게 만든 얼레빗은 전북 전주 한옥마을에서 판매되고 있다. 여성이 선호하는 반달빗, 음양소, 쪽빗 등 빗 종류도 다양하다. 여기에 조각을 해서 소장가치 있는 작품으로 만든다. 조각된 얼레빗은 10~20만 원으로 형성돼있는데 소비자들은 취향에 맞는 얼레빗을 골라 사간다고 했다.
“얼레빗은 두피 건강에 좋습니다. 나무로 만들어져서 정전기가 없어요. 머리를 길게 기르지 못하는 이유가 드라이기 바람과 플라스틱 빗이 정전기를 일으켜 머리카락을 갈라지게 만들어서 입니다. 얼레빗은 두피와 모근을 튼튼하게 만들어줘서 사용해본 사람들은 즐겨 찾습니다.”

▲ 그는 공주 공산성과 무령왕릉을 각각 조각한 얼레빗 3작품을 창작했지만 판로는 막막하다.

소비 활성화에 맞춤 정책 필요
이상근 장인은 2007년 유네스코 우수수공예품으로 얼레빗을 인증 받았다. 2010년에는 충청남도 무형문화재 제42호 공주 목소장으로 지정됐다. 한 분야에서 걸출한 명인으로 전통 빗의 아름다움을 전하고 있는 명인에게 뿌듯하고 자랑스러울 것 같다고 물었으나, 그는 무형문화재 현실이 녹록치 않다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인정을 받으면 정부에서 관심 갖고 얼레빗을 알릴 수 있는 기회를 이끌어줘야 되는데, 그렇지 않으니까 속병이 생길 때도 있어요.”

최근 이 장인은 정부 산하기관으로부터 문화재 행사 참여를 요청하는 전화를 받았다고 한다.
“불과 2주 앞두고 전시 행사에 쓰일 작품과 자료를 준비해달라는데, 시간은 부족했고 병원 예약일과도 겹쳐 거절했습니다. 무엇보다 수작업으로 시일을 할애하는 무형문화재를 존중하지 않은 촉박한 통보가 괘씸했어요.”

이상근 장인은 지역에 무형문화재가 몇 명 분포하는지에 따라 문화재 예산을 융통하는 데 있어 전시행사에 무형문화재들이 활발히 참여할 수 있도록 관에서 적극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공주 공산성을 축소해 빗을 조각하고, 무령왕릉 문양도 조각한 빗을 빗장이로서 열정 다해 만들었는데 판매해본 적 없어요. 20~30개 만들어 판매하면 좋을텐데 고생해 만들었지만 판로는 막막합니다. 지역행사에서 얼레빗에 관심가질 수 있는 프로그램이 더욱 개발돼 판매 촉진이 이뤄지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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