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론 - 김재수의 기승전農

"통상 현안 대응에 있어 
정치권 압력이나 부당한 요구에 
단호히 대처해야 한다..."

CPTPP(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 협정)가 우리 농업통상에 당면 현안으로 다가왔다. 문재인 정부에서 ‘가입 신청’을 하고 윤석열 정부에서 가입 협상과 피해지원 등 ‘후속조치’를 하는 방향으로 큰 틀을 정한 것 같다. 올해 2월부터 이미 시행된 RCEP(역내포괄적 경제동반자 협정) 영향력도 미지수다. CPTPP와 RCEP은 우리 농업의 근간을 흔들 수 있는 거대한 자유무역협정이다. 가입국가나 교역 규모 등도 과거 협정과 많이 다르다. 그럼에도 당장에 피해가 나타나지 않고 큰 이슈가 되지 않아 소홀히 대응하기 쉽다. 더구나 현재는 정권교체 직후다. 통상 관련 정부 조직과 기능이 가변적이고 검찰 수사권 조정 등 당면한 국정 현안이 너무 많아 CPTPP 대응에 빈틈이 많다. 차질 없는 준비를 해야 한다.

첫째, CPTPP의 피해와 영향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피해 지원과 대책마련에 소홀함이 없어야 한다. 통상협상에 따른 국내 피해액은 근본적으로 정확한 피해액을 산출하기 어렵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CPTPP 가입으로 연간 853억 원에서 4400억 원 정도의 농업생산액 감소를 추정한다. 여러 가지 전제를 토대로 추정한 금액이지만, 전후방 연관 효과나 간접피해 등을 감안하면 훨씬 더 클 것이다. 전문가와 농업인 대표, 정부가 머리를 맞대고 피해액을 검토하며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대책 마련에 전제가 되는 것이 농업인들과의 진지한 대화다. 이해당사자들과의 대화를 토대로 피해 규모와 지원책을 마련해야 한다. 지난 3월 개최된 공청회가 파행으로 끝난 것을 보면서 진정성 있는 대화를 아쉬워한다. 4월 여의도에서는 농민 5000여 명이 모여 CPTPP 반대 시위를 했다. 수산업계도 동조하고 전국적으로 확산될 우려가 있다. 범정부 차원의 진지한 대화와 논의, 설득이 필요하다. 우리는 ‘수출로 경제성장’을 이룩했고,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라는 주장만을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

둘째, 통상 이슈가 새 정부의 정책 우선순위에서 밀리지 않아야 한다. 검수완박, 코로나 피해지원, 경제 회복 등 산적한 국정 현안이 윤석열 정부 앞에 놓여 있다. 통상 현안이 국정의 우선순위를 차지하기 어렵다. 소관 부처 장관이 상세한 통상업무를 파악하기도 어렵다. 통상을 다뤄 본 경험 있는 장관이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통상을 이해한다고 하더라도 부처 간 긴밀한 협력과 대응을 하기 어렵다. 문제가 생기면 서로 책임을 떠넘기게 된다. 

통상 조정 부처 역할도 불분명하다. 국가적 현안이 눈앞에 있으나 외교부와 산자부는 통상소관 다툼으로 물밑에서 힘을 낭비한다. 대통령 비서실 소관 수석들도 부담이 있거나 책임이 따르는 사안은 대통령에게 제대로 된 보고를 하기 어렵다. 문재인 정부의 잘못된 국정을 ‘정상화’시킨다는 명분으로 밀어붙이기 쉽다. 소관 부처 의견이 무시되고 상황 판단에도 오류가 생긴다. 또 공직자들은 자신이 소속된 부처 중심의 판단과 대응을 한다. 범부처 차원의 협력과 대응이 힘들고, 순환보직 인사시스템은 책임 의식을 흐리게 만든다. 이명박 정부 초기에 일어난 미국산 광우병 쇠고기 협상과 대응이 대표적인 사례다. 장차관 임명이나 소관 부처와 관계없이 국가적 통상과제는 범정부적 차원에서 일사불란하게 대응하기를 기대한다. 

셋째, 글로벌 시대에 알맞은 통상 대응을 해야 한다. 통상문제의 인식과 대응이 아직도 후진적이다. 소관 부처 다툼에 머물러 있거나 문제가 터지면 책임소재를 따지며 장차관 경질로 대처해서는 안 된다. 국가나 국민 수준에 알맞은 통상정책이 추진돼야 한다. 통상인력, 통상조직, 통상전략도 국민 수준에 비례한다고 한다. 1992년 필자는 OECD(경제협력개발기구)에 파견 나가 선진국의 글로벌 이슈와 협상 대응 전략을 배웠다. 통상 현안 대응에 있어 정치권 압력이나 부당한 처리요구에 단호히 대처해야 한다. 

농업통상 대응에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으나 여전히 후진적이다. 김영삼 정부의 우루과이 라운드 협상 파동과 쌀 협상 파동, 김대중 정부의 한·칠레FTA 체결, 한·중 마늘협상 파동, 노무현 정부와 이명박 정부의 한·미FTA나 쇠고기 파동 대응이 대표적인 사례다. 농업통상 이슈가 대형 국가적 현안으로 확대돼 악화한 민심을 수습하기 위해 대부분 장차관이나 고위급 인사경질로 마무리했다. 한·중 마늘협상 파동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농식품부 차관과 경제수석이 경질됐다. 당시 경제수석이 윤석열 정부의 초대총리로 내정된 한덕수 내정자다. 

선진국으로 가는 길목에 서 있고 4차산업혁명 시대다. 더 이상 이런 방식의 대처를 해서는 안 된다. 적도 동지도, 이념도 체제도 없는 것이 국제사회다. 오로지 ‘국가이익’만이 있다. CPTPP를 연착륙시키기 위해 치밀하게 준비하고 대응하자.

<김재수 동국대학교 석좌교수, 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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