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광희 칼럼 - 누리백경(百景)(232)

오월이다. 그리고 눈이 시리도록 화사한 봄이다. 찔레꽃, 아카시아꽃, 탱자꽃, 안개꽃, 라일락꽃-꽃. 꽃. 꽃내음으로 머릿속이 아득히 어찔해지는 오월이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아름다운 추억보다는 아픈 기억이 가슴의 생채기로 박인, 또다시 오월이다. 올해도 추억은 추억대로, 아픔은 아픔대로 그렇게 뒤섞이어 흘러갈 것이다.

‘풀잎은 풀잎대로 바람은 바람대로/초록의 서정시를 쓰는 5월/하늘이 잘 보이는 숲으로 가서/어머니의 이름을 부르게 하십시오/피곤하고 산문적인 일상의 짐을 벗고 당신의 샘가에서 눈을 씻게 하십시오/물오른 수목처럼 싱싱한 사랑을 우리네 가슴 속에/퍼올리게 하십시오’
- 이해인 시 <5월의 시> 부분

이제는 그렇게 힘겨운 삶의 버거운 짐을 잠시라도 내려놓고 해맑게 피어나는 목련처럼 푸르디 푸르게 물오른 오월을 가슴에 안아보자.
오월엔 여름에 드는 입하(5일), 소만(21일) 절기가 들어 있어 봄은 더욱 깊어진다.
뿐이랴. 잊고 산 ‘사람의 참 도리’를 일깨우는 기념일들이 달력에 줄줄이 새겨져 있다.
-어린이날(5일), 어버이날-부처님 오신 날(8일), 스승의 날(15일), 성년의 날(16일), 부부의 날(21일), 바다의 날(31일).

‘청자빛 하늘이/육모정 탑 위에 그린 듯이 곱고/연못 창포잎에/여인네 맵시 위에/감미로운 첫 여름이 흐른다//라일락 숲에/내 젊은 꿈이 나비처럼 앉는 정오/계절의 여왕 오월의 푸른 여신 앞에/내가 웬일로 무색하고 외롭구나//.....//풀냄새가 물큰/향수보다 좋게 내 코를 스치고//청머루 순이 뻗어 나오던 길섶/어디메선가 한나절 꿩이 울고//.....//보리밭 푸른 물결을 헤치며/종달새 모양 내 마음은/하늘 높이 솟는다’
-노천명(1912~1957) 시 <푸른 5월> 부분

‘가정의 달’이라지만, 몸 떠난 옛적의 고향을 그리며 향기로운 이 봄 밤에 쉬 잠 못 이루는 이들은 또 얼마일까.
‘넓은 벌 동쪽 끝으로/옛 이야기 지즐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얼룩백이 황소가/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정지용(1902~1950) 시 <향수> 부분

그렇게 우리들 마음에는 맑고 싱그러운 푸른 오월을 닮은 어릴 적의 ‘소년, 소녀’가 산다. 그러나 꿈은 저만치 멀고, 시간은, 세월은 머문 듯이 또 그렇게 흘러간다. 바쁘게 산다는 이유로 사람을 사랑하는 일을 잊고 살아온 날들은 또한 몇 날이던가.
이제라도 서로를 뜨겁게 품어안고 사랑할 일이다. 창밖은 푸른 오월인데.

‘사랑하는 것은/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오늘도 나는/에메랄드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
-유치환(1908~1967) 시 <행복> 부분

저작권자 © 농촌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