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자매네 반디농장 김영란의 전원일기(67)

"온갖 하소연을 들어주고 
상대를 함께 욕해주고
나를 다독여주는 것인데
역시 ‘겸손은 힘들다’..."

손가락 크기의 작은 줄기를 삽목해서 애지중지 5년 동안 키운 삼지닥나무를 누군가가 담을 넘어와서 캐 가버렸다. 이제 수형도 잡히고 꽃도 제법 많이 피어서 이웃들에게 장하게 자란 모습을 자랑하고 난 직후에 없어져서 황당하고 불쾌했다.

길가의 농장이라서 사람들이 오며가며 내가 가꾼 꽃밭을 살피기는 하나, 담까지 무너뜨리고 캐 간 행동에 마음이 많이 상했다. 잃어버린 사람이 잘못이라는 말도 있는 것은, 누군가를 의심하는 마음까지 들기 때문이다. 기분이 땅에 뚝 떨어지자 좀체 돌아오지가 않았다.

손버릇이 나쁜 사람은 좋은 것을 보면 본능적으로 슬쩍 해 가는데, 이런 작은 도둑에서부터 나라곳간을 훔치는 큰 도둑까지 온통 양심이 부재하는 세상이 된 것 같다. 꽃을 훔쳐 가는 것은 큰 도둑이 아닌 것 같지만 남이 애지중지 하는 것은 돈 이상의 가치가 되는 것이다. 남의 꽃이 예뻐서 뿌리째 뽑아가는 사람이 제대로 꽃을 키우고 즐기기나 할까 싶다. 

나도 지나다니다가 예쁜 꽃이 있으면 저것을 어떻게 얻을 수 있을까 하는 마음이 생긴다. 사는 것이 가장 쉬운 방법인데 흔하지 않은 꽃은 사기도 쉽지 않아서, 나는 주로 삽목을 해서 키운다. 손가락만한 가지를 얻어 와서 뿌리를 내리고 키우려면 몇 년이 걸리는데, 그 과정에서 더욱 사랑하는 마음이 생긴다. 

공 들인 물건에 애착이 더 가서 나는 꽃 사랑이 점점 더 커진 것 같다. 한 번에 공짜로 얻는 쉬운 방법이 도둑질인데 꽃도둑의 죄질은 얼마일까?(꽃으로 마구 때려주고 싶다^^)
꽃을 잃어 버려 기분이 안 좋은데다가 함께 도모하는 일에도 갈등이 생겼다. 여러 사람이 함께 하는 일에 이기적인 행동을 하는 사람이 있으면 파열음이 나고, 결속이 안 돼 어떻게 하면 좋을지 고민하고 있었다. 요즘 몇 가지 고민에 내 감정이 실려서 평정을 잃고 있었다.

겸손은 힘들어 팀의 유리공주에게 지혜를 알려달라고 청했다. 내 문제는 이성적이지 못하고 감정이 실려서 지혜로운 판단을 하기 어렵다. 남의 일은 객관적으로 보여서 냉정하게 평하기가 쉬워 나의 심리적인 상태를 조절하려고 “지혜를 구합니다~” 했더니 한참을 생각하던 유리공주 왈, 하나님 관점에서 보아야 한단다. 전지전능하신 신의 관점에서 보면 기승전결이 다 보이고, 그 모든 일이 가벼운 일이라면서 전지적 관점에서 보라고 한다.

전.지.적.관.점... 맞는 말인 것 같은데, 위로가 안 되는 말이다. 사람이 어찌 신처럼 사물을 바라보란 말인가?
나의 속물적 근성은 나의 온갖 하소연을 들어주고, 내편이 돼 상대를 함께 욕해주고, 나를 다독여주는 것인데, 그래야만 조금이라도 기분이 풀릴 텐데, 역시 ‘겸손은 힘들어’ 팀이다.

형이상학적인 말로 나를 가르치니 통감자를 꿀꺽 삼킨 것 같았으나 곰곰이 생각하니 지혜로운 말인 것 같다. 역시 유리공주다운 조언이다. 좀 더 높은 곳에서 바라보면, 세상사를 가볍게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복잡한 머리를 비우고, 동네사람들에게 마을청소를 하자고 했다. 아름다운 고호마을을 만들기 위해 꽃씨를 뿌리자고. 함께 노동하니 절로 결속이 됐다. 남남이 만나서 하나처럼 되려면 세월의 풍화작용이 깃들어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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