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란 목포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농특위 농어촌여성정책특별위원회 위원장

"이제는 세상 속에서 
자신을 일으키고 깨어나야 
농어업과 농어촌이 
지속가능할 수 있고, 
여성들이 행복할 수 있다"

▲ 김영란 목포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농특위 농어촌여성정책특별위원회 위원장

완연한 봄이다. 뜨거운 여름도 곧 올 참이다. 새삼 노래 한 곡이 떠오른다. 

‘어두웠던 밤 지나 
새벽이 얼어 붙은 땅 녹아 
새싹이 케케묵은 낡은 틀 
싹둑 잘라버리고 
딸들아 일어나라 깨어라.’

혹자는 ‘여성해방가’라고도 하고 혹자는 ‘딸들아 일어나라’라고도 부르는 제목의 이 노래에서 유독 '딸들아 일어나라 깨어라' 부분이 마음에 들어온다. 날이 밝아오면 제일 먼저 일어나고 날이 어두어지면 제일 나중에 잠드는, 이 땅의 여성농어업인으로 태어난 딸들, 며느리들, 어머니들, 할머니들. 단지 여성이기 때문에 집안일, 밭일, 갯일, 마을일...그저 일과 일 사이에서 하루를 다 보내고 자신과 세상에는 한 발도 들여놓지 못하는 여성들의 처지를 생각해 본다. 그래서 이제는 세상 속에서 자신을 일으키고 깨어나야 농어업과 농어촌이 지속가능할 수 있고, 여성들이 행복할 수 있다는 말을 건네려 한다.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로 많은 사람들이 먹거리 안전을 우려할 때 제주도 해녀들은 오염된 바다 속에서 안전장치도 없이 늘 그랬던 것처럼 물질을 한다. 아시아·태평양 지역 11개 국이 결성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가입 신청결정으로 농산물 시장 자유화율이 평균 96.1%에 이르면 농축산업에 미치는 피해가 어떻게 될지 암담한 상황에서 오늘도 여성농업인들은 양파를 키우고 소를 먹인다. 

만의 하나 구조적 성차별은 없고, 성폭력은 개인의 문제라서 여성가족부가 폐지된다 해도 여성농어업인의 지위는 남성과 동일하지 않고 청년여성농업인은 여전히 성희롱의 대상이며, 농촌에 사는 독거여성노인은 성폭력이 두려워 옆집으로 자러 간다. 이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근원적·본질적 여성농업인정책 방향  논의
어떻게 세상이 돌아가는지, 자신이 그 안에서 어떤 상황에 처하게 될지 꼼꼼하게 따지지 않으면 타노스가 손가락을 튕겨서 인류 반을 사라지게 하는 마블시리즈 영화처럼 농어업도, 농어촌도, 여성도 사라질 수 있다는 불안한 현실을 그저 바라만 보고 있을 수는 없다. 

이런 맥락에서 지난 4월15일에 새로 구성된 13명의 위원이 진행한 농특위 농어촌여성정책특별위원회 회의는 사뭇 진지하고 결연했다. 농어업여성단체, 연구자, 언론인으로 구성된 위원들은 농업과 어업의 생산활동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기후위기, 생산과 소비 구조를 장악한 신자유주의, 그리고 여성을 지우는 사회분위기 속에서 기존(낡은 틀)과는 다른 시각으로 여성농어업인의 일과 삶을 들여다보고 보다 근원적이고 본질적인 여성농어업인 정책의 바탕과 방향을 논의하자고 결의했다. 
여성에게 수월한 농작업, 여성에게 필요한 의료와 복지, 여성에게 맞춘 교육, 그리고 의사결정과정 참여를 위한 여성할당제 등 여성농어업인들을 위한 정책과 제도는 지난 수십년 동안 거론됐고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그러나 세상은 혼란스럽다. 이제 여성의 일상문제 때문에 돌아보지 못한 세상의 문제는 무엇인지, 그것은 과연 여성들이(혹은 인간들이)통제할 수 없는 것인지 통제할 수 있다면 어떤 방법이어야 하는 지를 촘촘히 따져봄으로써 여성의 힘으로 지속가능한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보자. 이런 생각을 하자니 ‘딸들이여 일어나라 깨어라’라는 가사가 절로 흥얼거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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