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PTPP 피해규모, 한·미FTA보다 클 듯…중국 가입 시 2조원 넘어설 수도

▲ 농업계는 지난 4일과 13일 CPTPP 가입 저지를 위한 총궐기대회를 연달아 개최하며 정부의 졸속추진에 분노했다.

지난 15일 서울 정부청사에서 열린 대외경제장관회의에서 서면으로 CPTPP(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 가입계획을 의결됐다. 3월25일 열린 CPTPP 공청회가 파행으로 끝났음에도 정부는 정상적으로 절차를 완료한 것으로 보고, 국회 보고 절차를 빠른 시일내 마친 다음 4월 중에 가입신청서 제출을 목표로 한다는 계획이다.
정부가 가입추진에 속도를 내는 사이 농업계는 지난 4일과 13일 연이어 수산업계와 함께 CPTPP 가입 저지를 위한 총궐기대회를 서울 여의도에서 개최하고 현 정부의 졸속추진에 반대하며, 새 정부에서 논의를 다시 이어가야 한단 입장을 분명히 했다.

CPTPP 가입 논의 시작은 8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초 미국 주도로 중국견제를 목적으로 TPP를 창설되며 경제외적으로 정치와 외교, 안보 등을 한데 묶은 협정으로 출발했다. 헌데 미국이 TPP를 탈퇴하며 표류했지만 일본이 바통을 이어받아 CPTPP로 재편됐다. 원산지 규정·동식물위생검역(SPS)·서비스 무역·지적재산권·정부조달·정부정책·환경·노동 등 비관세분야까지 총괄한 협정으로 확대됐다.
정부가 높은 수준의 개방을 해야 하는 CPTPP 가입에 속도를 내는 건 코로나발 팬데믹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 대외여건으로 인한 원자재 공급망이 안정화가 시급하단 이유에서다. 하지만 그로 인한 농수산업계가 볼 피해는 외면한 채 식량주권은 후순위로 밀려나고 말았다.

번번이 약속 저버린 정부에 불신 팽배
직접 피해 보는 농수산업, 또 찬밥신세

정부와 농업계의 가장 큰 쟁점은 피해를 직접적으로 보게 되는 것이 분명한데도 필요한 정보를 공개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지난 19일 국회에서 열린 ‘대한민국 식량주권을 위협하는 CPTPP 이대로 괜찮은가?’ 토론회에서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 서용석 사무총장은 “CPTPP는 농업계를 무덤으로 내모는 메가 FTA임에도 정부는 협상전략 노출을 핑계로 피해규모와 지원대책에 대한 정보를 전혀 공개하지 않고 있는데 한·미, 한·중 FTA에도 이렇진 않았다”면서 “정부가 농업계 피해액이 77억 원에 불과하다는 RCEP보다 피해가 훨씬 큰 CPTPP에 대해 제대로 된 정보를 왜 내놓지 않는지 모르겠다. 정부가 다양한 시나리오를 공개해야 농업인도 대책을 세울 수 있을 것”이라며 소통을 촉구했다.
그리고 FTA 지원책을 정부가 내놓겠다고 하지만 이를 신뢰할 수 없는 이유로 한·중 FTA를 맺으며 1조 원 규모의 농어촌상생협력기금 조성을 약속했지만 아직 1300여억 원에 불과한 사례를 근거로 들었다.

산업통상자원부 조수정 FTA정책기획과장은 “협상 전에는 경제적 타당성만 파악하고 피해영향평가는 협상 후에 하는 것이다. 협상을 개시하면 농업의 민감성을 최대한 반영하는 건 물론이고 농업계와 긴밀한 소통을 거칠 것”이라면서 “발효까지 상당한 시일이 소요되기 때문에 그전에 지원대책을 마련할 것이며, 관계부처와 선제적으로 준비하고 있는 중”이라고 밝혔다.
또한 일각에서 CPTPP 가입 대가로 일본이 요구할 것이라는 후쿠시마산 농수산물 수입 허용에 관해 조 과장은 “국민건강과 직결되는 문제로 협상의 직접적 조건이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조 과장의 발언과 달리 대만은 올 2월부터 CPTPP 가입을 위해 그동안 금지했던 후쿠시마를 포함한 5개 현의 식품 수입을 허용한 바 있다. 게다가 지난 2월 일본의 마쓰노 히로카즈 관방장관은 우리나라의 후쿠시마 등에서 생산하는 수산물 등의 수입을 금지하는 규제 철폐를 강력하게 요구했다.

▲ 정부가 가입절차에 속도를 내는 CPTPP에 대해 국회에서 관련 토론회가 지난 19일 처음으로 열렸다. 이날 가장 큰 쟁점은 정부의 소통부족 문제였다.

농업계 RCEP보다 소통 안 돼 vs 산자부 협상전략 공개 불가
농식품부, 농업계 반대 목소리 외면한 채 원론적 입장만 되풀이
신선과일 사과·배·복숭아 등 수입제한 조치 완화 요구로 피해 불가피

반면 농림축산식품부는 CPTPP 문제에서 한 발 비켜 간 모양새를 취했다. 대외경제장관회의 위원으로 농식품부 김현수 장관이 가입계획을 동의했고, 농업계의 반대 의견을 타부처에 적극적으로 타진한 적도 공식적으로 없는 만큼, 이번 토론회에서도 농업계 입장을 대변하기 보단 줄곧 원론적인 입장만 내놨다.
농식품부 최봉순 농업정책과장은 “대외여건의 불확실성이 커진 게 CPTPP의 추진배경으로 앞으로 협상은 어떻게 진행할 것인지, 국내대책은 무엇을 준비할지는 변화하는 상황에 따라 유동적으로 차근차근 풀어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물론 농식품부가 통상협정에선 제대로 된 의견을 내놓긴 어려운 건 제도도 한몫을 차지한다. 통상조약법에 따라 피해영향평가 조사는 산업통상자원부 소관이고, 보고하는 국회 상임위도 산자위와 외통위만 해당되고 농해수위는 현재 빠져 있다. 개정안이 발의돼 있긴 하지만 아직 상정도 되지 못한 상황이다.

피해규모도 정부가 내놓은 것과 농업계가 예상하는 간격이 상당하다. 다자간 협정이기 때문에 한·미 FTA보다 클 것이라는데 이견이 없지만 협상 전이라 품목별 영향에 대해 정부는 구체적 수치를 내놓지 못했다. 정부는 일단 연간 최소 853억 원에서 최대 4400억 원으로 피해규모를 추산했다. 하지만 이는 중국이 가입하지 않았을 때 수치다.

중국의 시진핑 주석은 CPTPP 가입을 준비하라고 명령했고, 실제로 작년 9월 가입을 신청했다. CPTPP는 높은 수준의 시장개방과 규범을 모두 받아들여야 하는데 중국이 이를 받아들일지 의문을 표하는 전문가도 많지만 미국과 패권경쟁이 한창인 중국이 전략적 선택을 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향후 중국의 가입과 SPSP 조치로 최대 피해액이 2조 원을 넘어설 수도 있다는 주장도 제기된 상황이다.

우리나라는 RCEP 발효로 사실상 일본과도 FTA를 맺게 됨에 따라 CPTPP 회원국 중 FTA가 체결되지 않은 국가는 멕시코가 유일하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정대희 박사는 “이미 체결한 FTA의 농산물 개방은 CPTPP보다 낮은 수준인데 가입 시 축산·식량·작물·과수에서 추가개방 가능성이 크다”며 “일본과 RCEP을 체결했지만 주요농산물을 개방하지 않았고, 멕시코의 열대과일과 돼지고기 등에서 영향이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리고 개방하지 않은 쌀·보리·감자·대두·감귤·오렌지·꿀·탈전지분유·고추·양파 등에서 영향이 발생할 걸로 정 박사는 전망했다.

그리고 논란이 되는 SPS에 대해선 뉴질랜드, 일본, 칠레, 호주 등 주요수출국을 수입금지국가로 지정해 관리하는 신선과일 사과, 배, 복숭아 등의 수입제한 조치 완화를 요구하고 있어 CPTPP 가입 시 직접적인 피해가 불가피할 걸로 예상했다. 정 박사는 “농산물 소비는 정체될 수밖에 없어 공급위주 대책은 적합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품질과 경쟁력을 강화해 우리가 수출할 수 있는 시장을 개척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전남대학교 농업경제학과 문한필 교수는 “FTA 폐업지원제는 탈농보단 작목전환을 유도해 단기적으로 공급과잉 상태로 해당품목 가격하락을 유발한 경우도 있었고, 무엇보다 5년이 경과됐단 이유로 일몰한 건 성급한 결정이었다”며 “농업자원은 한정돼 있어 품목단위 지원보단 경영이양직불금과 통합해 휴·폐농업인과 전환농업업인, 청년농업인까지 아울러 대책을 짜야 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그리고 명칭도 시장개방 대응 구조조정 지원제도로 변경해 농가로 확대해 일정한 예산을 투입해 효과적인 지원책으로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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