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열린창

강 신 홍
본지 편집위원
前 축협중앙회 연수원장

 

맹자는 친구를 사귈 때, 자신이 의지해 믿지 말아야 할 것으로 세 가지를 경계한 바가 있다. 곧 친구를 사귐에 있어 자기가 연장자임과 존귀함과 형제가 많음을 자세(藉勢)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자세란 자기나 남의 세력을 믿고 의지해 으스댐을 나타내는 것이다. 요사이는 현세의 시류(時流)에 따라 그 자세함에 부와 권세, 우월의식이 더 큰 비중을 차지할 것이다. 벗이란 본디 그 덕을 벗하는 것이므로 무엇인가를 믿고 의지해 자기를 내세우면 벗을 취하는 뜻이 성실하지 못하기 때문에 현명한 사람은 그런 사람과 사귀지 않을 것이다.
예로부터 군자는 벗을 사귐에 있어, 상대가 자신을 기쁘게 해 주기를 다 바라지 않았으며, 충성스럽게 해 주기를 다 바라지도 않음으로써 그 사귐을 온전히 했다. 친구가 언제나 나를 기쁘게 해 주고, 충성스럽게 해 주기만을 바라면 후회하기 십상일 것이다. 친구에 거는 기대는 큰데, 상대가 그에 호응해 주기도 어렵거니와 기대에 못 미치면 그 사귐이 온전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친구가 항상 좋게 해주기만을 바란다거나 마음을 다 해주기를 너무 바라지 않는 것이 우정을 지속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한편, 벗은 인(仁)을 돕는 것이므로 자기의 마음을 다해 충고해 주되, 그 말은 부드럽고 선하게 인도해야 할 것이다. 벗이란 의리로 합한 사이이므로 의가 불가하면 좋은 권고의 말도 그만 둬야 할 것이다.
만일 좋은 충고의 말이라도 자주 하다가 벗과 소원함을 당하면 이는 애초 아니함만 못하고 스스로 욕되게 될 것이다. 언쟁을 하지 말 것이다. 자기 생각이 옳다고 상대의 의견을 들어 보기도 전에 격한 말을 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필자도 이와 같은 일로 후회하는 것이 한 두 번이 아니다.
아인슈타인은 성공하는 사람보다 먼저 가치 있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라고 말했다. 남에게 가치 있는 사람이 될 때, 우리는 그들을 도울 수가 있다. 친구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관계에 있어서도 다 그렇다.

다른 사람들의 삶에 가치를 더해 줄 때, 그들도 우리에게 끌릴 것이다. 이 세상 어디에도 자기에게 관심을 가지고 돕는 사람에게 감사하지 않을 사람은 없다.
우리가 남을 도울 때 남도 우리를 사랑할 것이며, 그들 또한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할 것이다.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끌리지 않는 사람들을 구별해 내는 경향이 있다. 매사에 부정적이고 비판적인 사람들과 어울리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그런 사람들 외에는 별로 없다. 유유상종(類類相從)이다. 가뜩이나 버거운 세상에 그런 사람들과 어울리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을 테니까 말이다. 우리는 우리를 믿어 주고 격려하는 사람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한다. 자신을 비난하고 혹평하는 사람들에게 자기 인생의 자리를 내어 주는 사람은 없다. 옛글에 벗이 바르고 성실하며 견문이 많으면 이로운 벗이라 했다. 벗이 곧으면 그 잘못을 듣게 되고, 성실하면 나도 성실함에 나아가고, 견문이 많으면 밝음에 나아 갈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해로운 벗은 그와 반대의 경우를 말하니, 외모에만 정신을 써 곧지 않으며, 아첨해 남을 기쁘게 하는 데만 능하고 성실하지 않은 것, 그리고 말로만 잘하고 견문의 실체가 없는 이를 벗하면 해롭다 했으니, 친교는 고금의 구별이 없다 할 것이다.

벗은 함께 하면 언제나 편하고 푸근한 정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너무 지나치게 완벽하고 곧으면 좋은 친구라 생각하면서도 가까워지기가 어렵다. 물이 너무 맑으면 고기가 모이지 않듯이(水至淸卽無魚), 모든 인간관계가 다 그렇다.
때로는 악의 없는 나의 작은 결점에 인간적으로 상대는 편해질 수도 있다. 현자는 어진 사람과의 친교를 통해 그 자신이 절차탁마(切磋琢磨)해 덕을 쌓아 나갈 것이다.

저작권자 © 농촌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