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시주부 이여사의 농담식담(農談食談)

"40여 년 삶을 주부로 살아온 
엄마의 경험은 비록 없을지라도
이제는 채소의 얼굴을 보고 
구입하고 싶다..."

얼마 전에 엄마가 시골 동네 마트에서 산 고구마가 맛있다고, 보내주시겠다고 했다. 별 기대 없이 받았는데 막상 하나 구워서 먹어보니, 너무 맛있는 것이다. 한입고구마, 입에 쏙 들어가는 크기에서 촵촵촵촵 먹다 보니 어느새 다섯 개를 한자리에서 먹었다. 근데 정말 그렇다. 엄마가 보내준 고구마는 내가 사는 고구마보다 훨씬 맛있다. 고구마의 얼굴을 보면 이것이 맛있을지 없을지 아는 건 아닐까? 
고구마만 그런 게 아니다, 엄마가 보내준 감자가 내가 산 것보다 늘 훨씬 맛있다. 엄마도 직접 농사해서 보낸 것이 아닌데도... 시골 지역 마트에서 사서 보내신 건데... 분이 보슬보슬 나고, 감자만 먹어도 구수하다. 

된장찌개의 국물맛을 바꾸는 맛있는 감자다. 반면, 내가 사는 감자의 맛은 늘 평면적이다. 심지어 엄마가 고구마와 함께 보내준 오렌지도 그렇다. 정말 맛있다! 내가 산 것과 다르다. 이건 분명 캘리포니아에서 온 걸 텐데... 오렌지의 얼굴을 보면 요놈이 맛있을지 없을지를 아는 걸까?

그도 그럴 것이, 나이 40에 초보주부가 된 나는 채소의 얼굴을 볼 줄을 모른다. 어떤 녀석이 맛있는 채소인지 외모를 보고 구분을 못한다. 심지어 일을 관두고 초보주부가 됨과 동시에 코로나19가 돌기 시작했다. 대형마트에서 채소들의 얼굴을 보며 직접 구매하던 것마저 코로나19 2년차가 되니 거의 없어지기 시작했다. 너도나도 장보기 어플에 가입해서 집 앞 배송으로 먹게 됐다. 편리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코로나19 바이러스 유행이 너무 심해졌고, 도시에서는 이렇게 하는 것이 감염으로부터 훨씬 안전하기 때문이었다. 

장보기 어플로 채소의 생김새를 모른 채 장바구니에 담았고, 결제를 했다. 신선한 채소들이 오긴 했지만, 뭔가 채소의 얼굴이 맛있어 보이는 관상이 아니었다. 맛도 뭐 나쁘지는 않았지만, 엄마가 채소의 얼굴을 보고 골라 보내준 것에 비해서는 맛이 늘 떨어졌다.

물론 맛난 채소의 얼굴을 구분도 잘 못하지만, 주어진 채소를 대형 물류센터에서 보내주신 대로, 내가 고르지 못하고 나는 받아먹고 있다. 그러다 보니 주부 40여 년 빛나는 경력을 가진 엄마가 보내준 채소가 당연히 훨씬 맛있는 것이다. 엄마는 채소의 얼굴만 아는 것이 아니다. 채소의 신선한 향도 알고, 촉감도 알며, 빛깔도 구분하고, 심지어 소리도 안다. 수박 같은 것은 둥둥 두들겨서 맛을 선별한다. 채소의 속을 아는 청진기가 있는 것일까. 낯빛만 보고 이 사람이 아픈지 안 아픈지 구분하는 명의처럼 엄마는 채소의 얼굴을 보고 채소의 됨됨이를 구분한다. 그리고 한마디 하신다. “요놈 맛있게 생겼구나. 요런 애들이 맛있어~”

역병이 다 끝난 후, 다시 채소가게에 갔을 때 맛을 보지 않고 이 녀석이 맛이 있는지 없는지 나는 분별할 수 있는 자신이 없다. 그러나 분명히 채소에는 차등이 있고, 맛이 있는 친구가 있고 맛이 떨어지는 친구가 있다. 그놈이 그놈이 아니다. 요즘에는 어느 어플 채소가 더 신선한가를 비교하는 도시의 주부들을 보며, 언제까지 복불복 배송 채소를 만나야 하나 싶기도 하다. 40여 년 삶을 주부로 살아온 엄마의 경험은 비록 없을지라도, 이제는 채소의 얼굴을 보고 구입하고 싶다. 설사 내가 데려온 채소가 맛이 좀 모자란다 할지라도 ‘고놈 참 예쁘다, 맛있기를 바란다’는 말을 걸며 사고 싶다. 우리 가족이 먹을 채소의 얼굴을 알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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