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옥임 순천대학교 명예교수

"한민족만의 총체적인 문화를 
직접 경험하면서 생활하고 있는 
문화를 보유하고 있는 당사자는 
바로 농촌여성들이다.

농촌의 뿌리 깊은 문화를 
지키고 보존하는데 농촌여성이 
발 벗고 나서야 한다. 
농경문화가 시작할 때부터 
농촌의 버팀목으로 살아왔던 
농촌여성들이 농촌문화의 
수호자이자 길잡이로 나서야..."

▲ 박옥임 순천대학교 명예교수

봄은 보는 것이다. 만 가지 고운 꽃과 연둣빛 잎으로 세상은 생기가 넘친다. 그야말로 산천이 꽃대궐처럼 환하다. 24절기 중 지금은 삼라만상이 맑고 밝다는 청명(淸明)과 곡식에 유익한 비가 온다는 곡우(穀雨) 사이의 시기다. 가장 생기 넘치고 화창한 날이 바로 이때다. 봄은 말 그대로 모든 것을 새롭게 보고 보이는 것이다. 

봄은 시작하고 일어나는 것이다. 만물이 소생한다. 꽁꽁 얼었던 대지가 숨 쉬듯 기지개를 켜고 딱딱한 씨앗이 새싹을 터트린다. 이처럼 감춰졌던 것을 드러내고 생명의 위대함이 곳곳에서 솟구치고 일어난다. 사람도 자신의 숨겨져 있던 내면의 소리를 밖으로 드러내고 외칠 때 기쁨이 가득하고 살아있음을 느낀다.

얼마 전 한 농촌여성의 전화를 받았다. 지금은 무용지물인 짚으로 새끼를 꼬는 기계를 고물상에서 팔라고 하는데 돈 몇 푼에 그렇게 할 수 없다고 한다. 눈 찔끔 감고 그냥 없애 버리기에는 너무나도 아깝고 마음이 편치 않았단다. 젊었을 때 부업으로 새끼를 꼬고 가마니를 짜서 자식도 가르쳤는데, 지금 소용없다고 버릴 수는 없다는 것이다. 간절함이 절절하다. 방법을 찾아야 했다. 

여러 곳에 해결방법을 문의했어도 나 몰라라 한다. 고민 끝에 제자인 지역농협 조합장과 상의했다. 농민들이 오래 두고 썼던 물건 하나하나가 바로 농민들의 삶의 흔적이자 문화가 아니겠는가. 오고 가는 대화 끝에 가칭 ‘농가생활사박물관’을 세우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조합장이 그렇지 않아도 농민의 삶이 깃든 물건들을 조금씩 수집하고 있었는데, 이제부터 농협의 특별사업으로 본격 나서겠다고 했다. 바로 직원을 보내 그 기계를 가져가겠다 했다.

며칠 후 그 여성분이 너무 감사하다며 전화가 왔다. 기증자인 자신의 이름까지 자세히 적고 갔고, 한때 애지중지한 물건이 버려지지 않고 농협에 보관하고 나중에 전시한다니 기분이 좋아서인지 목소리에서 기쁨이 느껴졌다. 아주 흡족해 했다. 그분의 행복이 휴대폰 너머로까지 느껴질 정도였다. 기분 좋은 일은 모두 같은 마음이었다. 폐기돼 버려질 뻔한 농촌의 자그마한 유형문화를 힘을 합쳐서 살렸다는 성취감을 공유했기 때문이다.

지난달 문화재청은 ‘한복 입기’를 무형문화재로 지정했다. 이유는 한복이 단순한 의복이 아니라 가족공동체의 안녕을 기원하고 예를 갖추는 중요한 매개체로서 한국인들에게 매우 중요한 무형적 자산이라며 신규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 예고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 농촌은 문화의 보물창고나 다름없다. 지금 농촌에는 마을공동체이자 우리 민족의 삶의 양식이 고스란히 살아있지 않는가. 농경민족으로서 전승시켜온 농업문화는 기본이고, 전통문화인 식생활문화, 복식문화, 가족문화 등 유·무형의 헤아릴 수 없는 고유문화의 원형을 우리 농촌은 간직하고 있다. 한국문화의 뿌리는 농촌이고, 농촌의 삶의 현장에 아직 남아있고 보물처럼 숨겨져 있다. 

한민족만의 총체적인 문화를 직접 경험하면서 생활하고 있는 문화를 보유하고 있는 당사자는 바로 농촌여성들이다. 사라져가는 농촌의 뿌리 깊은 문화를 지키고 보존하는데 농촌여성이 발 벗고 나서야 한다. 농경문화가 시작할 때부터 농촌의 버팀목으로 살아왔던 농촌여성들이 농촌문화의 수호자이자 길잡이로 나서야 한다. 대한민국 국민들이 지닌 삶의 양식이자 역사인 다양한 문화를 소중한 가치로 새롭게 보고 엮어내는 성과를 낼 수 있도록 지금이라도 시작해야 한다. 미래의 농업은 생산의 축과 더불어 문화의 장으로 한 축이 돼 성장할 잠재력이 충분하다. 이러한 흐름을 주도할 수 있는 주체는 바로 농촌여성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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