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농촌은… 과수화상병 후유증, 언제쯤 회복될까

꽃망울이 맺히는 봄이다. 춘분이 지나 한해 농사 초읽기에 들어가며 바쁜 나날을 보내는 요즘, 충북 진천 도깨비체리농장 한청범, 민미란(백곡면생활개선회장) 부부는 지난해 6월 체리나무밭 6000㎡(1800평)을 엎어야 했던 쓰라린 기억이 떠올랐다. 부부는 과수화상병으로 나무를 매몰해 흉흉한 빈터로 남은 농지를 보면서 어떻게 버텨나가야 할지 막막하다고 했다.

▲ 충북 진천 도깨비체리농장 한청범씨가 과수화상병 피해로 허망하게 빈터가 된 농지를 가리키고 있다.

3년간 농사 못 지어 아르바이트로 생계 꾸려
맨땅만 남은 농업인들…영농보상 없어 막막 

농장 정리하고 막노동·아르바이트 전전
한청범씨와 민미란씨는 과수화상병이 발병한 그날을 잊지 못한다. 당장의 수익을 보전할 수 없어 농사 대신 막노동과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잇고 있다는 부부. 민미란씨는 아르바이트를 하러 가서 농장에 없었고, 남편 한청범씨는 임차한 땅에 심은 블루베리 묘목을 도시에서 온 고객에게 판매하며 정리하고 있었다.
“묘목이라도 헐값에 팔아야죠. 그나마 블루베리는 과수화상병이 없었어요.”
우리나라는 사과, 배, 복숭아 순으로 과수재배 면적이 많은데, 체리가 특히 고소득 작목이라는 소문을 듣고 한청범씨는 2012년 체리재배에 뛰어들었다고 한다. 미니사과 ‘알프스오토메’와 블루베리도 부작목으로 같이 심으면서 자동차 한 대 지나지 않는 청정 산골에서 농사 짓는다는 자부심이 있었다. 
“체리나무는 최소 3년 이상 키워야 열매를 수확할 정도의 성목이 됩니다. 3년째 되던 해에는 열과 때문에 전혀 수확을 못했고, 다음해는 냉해 때문에 수확을 많이 못했어요. 주변 농가들이 냉해를 입을 때 밤잠 줄여가며 불 피우면서 냉해를 막아 체리를 일부 수확할 수 있었죠.”
kg당 1만5000원에 국산 체리를 판매하면서 연간 4000~5000만 원의 수익을 올리게 됐었다는 한청범씨는 체리재배 10년차로 안정 궤도에 접어들었다.

턱없이 적은 보상에 울상
그러다가 지난해 과수화상병 진단을 받고 체리나무를 매몰하면서 모든 게 원점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나무가 없는 빈터를 보면서 한청범씨는 혼이 빠져나갈 정도의 정신적 충격에 마음고생을 했다고 한다.
“수확시기라서 날마다 사과밭을 지나 체리밭을 갔어요. 어느 날부터 체리나무가 위에서부터 말라죽어 있어서 이상했습니다. 진천군농업기술센터 담당자가 체리나무 상태를 보러 왔는데 과수화상병 같으니 알아보자고 했지요. 그날 바로 조사하더니 과수화상병 진단을 받았습니다.”
발병은 미니사과 ‘알프스오토메’에 왔다고 한다. 사과나무에 과수화상병이 6주 이상이면 매몰해야 되기에 농촌진흥 관계기관에서 포크레인을 몰고 왔다. 체리나무는 균을 보유하는 기주식물이어서 사람을 통해 다른 농장으로 옮길 수 있어서 같이 통째로 매몰됐다. 
농촌진흥 관계기관의 역학조사팀이 현장을 탐색했지만 원인을 밝혀내지 못했다고 한다. 주변에 모과나무가 있으면 기주식물이라 균을 옮길 수 있는데, 모과나무도 없는 환경이라는 소견이 전부였다.
“체리가 다 열렸고 따기만 하면 돈인데 솔직히 과수화상병을 미리 알았다면 체리를 수확한 뒤에 신고했을 거예요. 왜냐면 영농에 대한 보상은 하나도 없었으니까요.”
과수화상병이 발병한 농지는 3년 동안 국화과 작목을 재배할 수 없다. 이에 대한 3년치 농가소득은커녕 나무 1그루당 값을 책정한 보상금이 전부라고 했다. 이마저도 과수화상병 피해 매뉴얼에 따라 차등지급해 보상금은 얼마 되지 않았다고 한 씨는 토로했다.
“나무 크기와 기주식물 유무에 따라 보상금이 다르게 형성돼 있습니다. 농진청의 보상 기준이 있어서 농업인이 왈가왈부 할 수도 없어요. 저희 체리나무는 콜트대목이라 그나마 나은데, 유전적으로 키 작은 기셀라대목은 나무 사이즈가 작아서 1그루당 보상금이 낮게 책정된다고 해요.”

대체작목 알아보며 주경야독
한청범씨는 빈터가 된 밭에 올해 대추나무를 심을 계획이라고 했다.
“대추재배법에 문외한이라 ‘멘땅에 헤딩’해야 합니다. 그래도 올해 대추나무를 심으면 내년에 수확할 수 있으니 해봐야죠. 국화과 작목이 아니면서 최대한 빠른 시기에 수확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부부는 체리재배의 끈을 놓지 않고 종중땅에 체리나무를 심어보기로 했다. 그동안 농사 짓지 않은 자갈밭이지만 “이제까지 하던 게 체리인데 당장 떠날 수 없으니 악조건이어도 한다”는 부부의 의지에서 비롯됐다. 하지만 이마저도 종중땅 분쟁에 휘말릴 수 있어 안정적인 방법은 아니라며 체리나무를 심고자 놀리는 땅을 알아본 것이다. 
결과적으로 올해 농사에서 얻을 수 있는 소득은 없다. 그래서 부부가 농장을 지키기보다는 바깥일에 나서 읍내를 오가며 살길을 모색해야 한다.
“겨우내 막노동하면서 구들장을 시공했어요. 과수화상병을 겪고 나니까 오히려 부업이 마음 편해요. 한 달 꼬박 일하면 500만 원 버니까 다행이죠. 아내는 평일에 선거관리위원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어요. 6월 지방선거가 끝나면 진천자연휴양림에 숲해설사로 취업한다고 해요. 아내가 농사 짓는다고 자격증 많이 취득하더니 어쨋든 도움이 되네요.”
한청범씨는 농업농촌의 과수화상병에 대한 새 정부의 관심과 연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과수화상병은 1780년 미국에서 최초 발견됐는데, 200년이 넘은 지금도 치료제가 없어요. 과수화상병을 연구하는 전문가들도 많은데 정확한 원인도 파악되지 않아 과수농가에서는 매년 불안한 마음으로 농사 짓습니다. 과수화상병 전파를 막는 데만 급급하기보다 발병 농가의 피해도 감소시킬 수 있는 전문적 대책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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