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성호 박사의 날씨이야기-10

 

1977년 쌀 4천만 석 생산은 역사에 남긴 최고의 기록이다. 그 기록은 그 이듬해부터 보리농사를 찬밥신세로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공교롭게도 그 해 겨울의 혹독한 추위는 중부지방에까지 널리 장려하여 심어놓은 보리를 거의 얼어 죽게 하였으니, 보리농사와 인연은 더욱 멀어지게 되었다.
그런데도 지금까지 보리농사를 꾸준히 짓고 있는 곳들이 있다. 그 곳은 바로 바다와 가까운 지대에 있다.
그 날의 최고기온이 25도 이상이 되는 날을 ‘여름날’이라고 한다. 대체로 이 ‘여름날’은 내륙에는 5월 21일경에, 해안에는 6월 5일경에 찾아온다. 말하자면 해안에는 내륙보다 15일이 늦게 여름이 온다. 해안은 바닷물 온도의 영향으로 내륙보다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포근하다.

해안에 심은 보리는 겨울에 얼어 죽을 염려가 덜하고, 이삭도 내륙보다 조금 일찍 팬다. 따라서 이삭이 팬 뒤에도 온도가 높지 않아서 익는 기간이 내륙보다 길다. 그 때문에 보리의 품질이 좋고 소출이 많다. 한편 내륙에는 해안과 반대 현상이 나타난다. 겨울 동안 얼어 죽을 염려도 문제지만, 보리가 익을 때 온도가 높아서 익는 기간이 짧아진다. 그 때문에 보리알이 작아지고 가벼워져 해안보다 소출이 떨어진다.
밭보리 논보리 가릴 것 없이 보리농사가 한창일 때 보리에 대한 시험연구가 큰 비중을 차지하였다. 그런데 그 당시 미처 고려하지 못한 아쉬운 점이 있다. 그것은 보리의 시험장소를 모두 내륙에만 두었고, 해안에는 두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1990년대 후반에 해안과 내륙에서 자란 보리의 1,000알 무게를 비교한 바 있다. 그 때 해안에서 자란 보리알의 무게가 내륙에서 자란 것보다 훨씬 무거운 사실을 발견하였다. 이로써 해안기후는 보리농사에 더 없이 좋은 기후자원이라는 사실을 이해하게 되었다.
지금 보리농사는 서해안의 군산에서 출발하여 남해안의 사천을 거쳐 동해안의 영덕을 지나 고성에 이르는 해안지대에서 겨우 이어오고 있다. 그런데, 요즘엔 이 곳 보리농사마저 ‘꿔다 놓은 보릿자루’ 취급을 받지 않을까 하는 염려를 떨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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