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만나봅시다 - 한국농촌복지연구원 정명채 이사장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농어업회의소 법제화를 위한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다. 농어업의 비중과 인구가 급격히 줄어들면서 현장의 다양한 의사를 정책에 반영하는 데 한계를 느낀 농업계는 실질적 농정참여를 위해 민관협치 대의기구인 농어업회의소를 법으로 보장하고 전국으로 확대해야 한단 목소리를 내고 있다. 정부도 농어업회의소 법안을 발의했고, 국민의힘 홍문표 의원이 발의한 농어업회의소법안은 여야의원 20명이 발의자로 포함될 만큼 이견이 없어 일단 청신호가 켜져 있는 상황이다.

독일과 프랑스 등 해외에서 농어민의 대의기구로서 제역할을 하는 농어업회의소처럼 권익을 지키는 농정파트너이지 법적 자치기구, 단체·품목·지역간 이해조정과 협동기구로서 역할을 할 수 있는 농어업회의소 설립을 오랫동안 주장해 온 한국농촌복지연구원 정명채 이사장을 만나봤다.

헌법 명시된 자조조직으로 농어업회의소 법제화 필요
농지 관리업무 위탁받다 공익소득 보장하는 역할 맡겨야

-농어업회의소 법제화는 지지부진했다.
1991년 농협 주최의 농민단체 활동방향 세미나에서 유럽의 사례를 소개하며 농어업회의소를 처음 주장했었다. 논의가 조금씩 이뤄지다 1998년 순수민간기구인 범농업인 21세기 농업개혁위원회에서 농어업회의소 설립이 본격화됐지만 당시 단체 간 이해가 충돌돼 무산되며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농민단체 반목으로 농어업회의소가 좌초돼 누구도 다시 논의하자고 하기 힘든 시간이 꽤 길었다. 이후 이명박 대통령 대선공약으로 포함돼 시범사업으로 시작됐다. 하향식으로 추진되다 보니 한계가 분명했고, 무엇보다 설립되는 속도가 거북이걸음이다.

현재 설립된 지역은 25개 지역에 불과하고, 준비 중인 17곳을 포함해도 42곳 남짓이다. 농업인의 목소리를 제대로 전달해야 할 국회도 사실상 손을 놓고 있었다. 2016년이 돼서야 여야가 농어업회의소 법안을 발의했지만 농해수위 문턱도 넘지 못했다. 대통령직속 농어업농어촌특별위원회가 출범해 법제화에 큰 기대를 걸었지만 사실상 성과는 없었다.

-왜 농어업회의소가 필요한가?
독일에서 유학생활을 하며 협치농정의 파트너이자 자치농정 기능을 부여받은 농민의 대의기구인 농어업회의소를 보며 우리나라에서도 필요성이 크다고 봤다. 지금도 그렇지만 우리 농업계에는 정책기능과 국가를 대표하는 대외조직이 없다.

그래서 농업정책 결정 과정에 현장목소리가 빠진 일방통행식이라 실패가 많았다. 대통령의 해외순방길에 상공회의소 회장은 꼭 포함되지만 농업계 인사가 포함된 건 손에 꼽을 정도다. 그만큼 해외와 교류할 기회가 적고, 대외여건 변화에 제대로 대응할 시스템이 갖춰지지 않아 개방에 따른 피해를 고스란히 맞으며 농업의 존립 자체가 어려워지고 있다.

전체 산업계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줄어들어 제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 농정예산 비중이 2%대로 떨어진 것도 농어업회의소가 없는 게 한몫했다고 본다. 유럽은 WTO 출범 이후 농어업회의소가 대외여건에 대응하기 위해 자치기능이 더 강화되고 있는 점은 시장개방 때마다 농업계 의견을 배제하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독일헌법을 그대로 가져온 우리나라는 헌법 제123조 제5항에 ‘국가는 농·어민과 중소기업의 자조조직을 육성하여야 하며, 그 자율적 활동과 발전을 보장한다’고 명시돼 있다. 헌법에 따라 상공업계는 상공회의소를 만들며 대표조직으로서 지위를 다지고 자발적으로 경쟁력을 강화해 왔다. 하지만 농업계는 헌법에 자조조직 육성이 명시돼 있음에도 농어업회의소가 법제화되지 못했고, 그 피해는 수십년째 이어지고 있다.

-존재에 의문을 갖는 시선도 있다.
농민단체는 농업농촌의 발전 단계마다 중요한 역할을 해왔지만 단체마다 성격이 각각 다르다. 교육과 봉사단체도 있고, 정치단체와 품목단체 등으로 다양하고, 지역간에도 차이가 있다. 그래서 이해관계가 다르고, 중요한 고비마다 일치된 목소리를 내지 못해 정당한 대가를 가져가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익산의 명예농업시장을 맡고 있는데 시의회에서 예산 확정 후 고맙다는 소리를 들었다. 원래는 의회에 상정하는 예산은 필요성이 의문투성이인 누구를 위해 왜 세워졌는지 모른 채 올라오는 경우가 많았다. 익산은 희망농정위원회에서 농민이 농지와 농정은 물론이고 예산과정에도 참여한다.

무수한 의견과정을 거쳐 예산안을 짜다보니 의회에서 단 한 건의 삭감은 물론이고 수정 없이 그대로 확정됐다. 왜 농민이 정책과 예산과정에 직접 참여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본다.

농업인구는 5%가 무너졌고, GDP 비중을 보면 3%대가 무너졌다. 이대로면 농업과 농민이 사라지는 건 시간문제다. 농업이 안정되려면 농지확보가 관건이다. 지금처럼 공무원에게만 농지보전을 맡기면 기업과 투기세력에 휘둘릴 수밖에 없다.

농어업회의소가 신규취득농지의 농장계획서를 검증하는 농지관리 업무를 일부라도 위탁받아 농민 스스로 농지를 지키는 구조가 돼야 한다.

소득이 보장 안 되면 농민은 버티지 못한다. 유럽은 농업을 공공재산업으로 보고 그 기능에 걸맞는 지원책이 다양하게 있다. 공익직불제가 시행되고 있지만 충분하다고 보진 않는다. 농업소득과 농외소득에다 환경과 전통을 보전하는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는 공익소득 등 3대 소득이 보장돼야 한다. 농어업회의소가 바로 그 역할을 할 수 있는 조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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