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자매네 반디농장 김영란의 전원일기(53)

아무리 첨단기계문명시대에 살아도
사람이 만든 도구에 휘둘리지 말고
사람답게 살기 위한 성찰을 했으면...

해가 바뀌어 새해가 됐지만, 나의 새해는 대개 음력설이 돼서다. 그 즈음에서야 11월부터 시작된 귤 수확과 배송이 얼추 끝나기 때문에, 나는 긴 여정의 노고를 풀어내며 후줄근해진 몸과 마음을 내려놓고 고단한 몸을 추스르고 새해설계를 한다.
1월말이면 이미 봄이 가까이 와서 매화가 벙글고, 바로 봄농사에 돌입해야 하기에, 연중 내내 농한기가 없는 긴 겨울을 보내는 우리 시스템이 너무 힘들어 대변혁이 필요한 시점이 아닌가 싶다.

회원제를 구축해 안정적인 판로와 수입구조를 갖추게 됐지만 전 과정을 몸으로 감당해야 하는 영세하고 열악한 시스템인지라, 해마다 노화돼 가는 우리 부부는 규모를 줄이고 기계화를 해야 한다는 절박한 심정이다. 

뒤를 돌아보면, 아이들이 없었다면 이 많은 일들을 감당할 수 있었을까 싶다. 큰아이가 중 2때 명퇴해서 집으로 돌아온 남편이 다시 재취업을 1년간 했지만, 대기업보다 열악한 근무조건이 힘들다며 그만 둔 남편을 전업농으로 인도해 지금까지 농사를 지어서 세 아이들을 대학 졸업까지 뒷바라지했다.

회사를 그만두고서야 매월 월급이 꼬박꼬박 나온다는 게 얼마나 큰 축복이며, 내가 움직이고 노력하지 않으면 수입이 무일푼이 되는 자영업자들의 고충과 비애를 몸으로 실감하게 됐다. 뼈 빠지게 고생한다는 말의 의미를 몸소 겪고 나니 돈을 왜 마디게 써야 하는지를 아이들에게 시시때때 일깨우는 꼰대엄마가 됐다.

‘세상살이가 만만치 않으니 일부러라도 고생을 시켜야 한다’는 식의 고리타분한 훈육이 내 안에 잠재하고 있다. 내가 부모나이만큼 살고 나니, 아무리 문명이 발달해도 삶의 근본지향은 결국 ‘행복하게 삶을 영위하는 것’이기 때문이었고, 그래서 제대로 살고 있는가를 늘 성찰해야 한다는 깨달음이 왔다.
겨울 수확기의 반환점을 돌 때 즈음에 우리 부부는 방전되고 있어서 아이들에게 SOS를 쳤다. 며칠이라도 집으로 돌아와서 돕기를 바라서, 힘든 남편이 아이들이 언제 오냐고 자꾸 물었다. 내가 직접 아이들과 영상통화를 하라고 하니, 영혼이 집나간 모습의 아빠를 본 아이들이 하던 일을 제치고 일단 막내가 달려왔다.

아이들은 반디농장 시작 때부터 함께 해서 숙련된 일꾼이라 투입되자마자 아빠의 노고가 절반으로 줄어 남편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막내가 있는 동안 남편은 조금 피로회복을 했고, 일주일간의 극기훈련을 하고 돌아간 막내 다음에 바통터치 해 첫째가 왔다. 
나는 딸들이지만 일부러 아빠 몫의 일을 시킨다. 20㎏ 박스를 들고 내리고 나르고 하는 고강도의 중노동을 시킨다. 부모의 일을 몸소 겪어봐야 살아가는데 자양분이 되지 않을까하는 생각에...

아이들이 아무리 첨단기계문명시대에 살아도, 사람이 잘 살기 위해 만들어진 도구들에게 휘둘리지 말고, 사람답게 잘 살아가기 위한 성찰을 늘 했으면 한다. 부모는 이미 사고가 경직되고 꼰대스러운 발상을 하지만(아이들 눈에) 가상의 공간에서 시공을 넘나들며 살 아이들과의 접점은 우리는 사람의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이다.
아이들아~ 잊지 말자! 언제나 내가 세상의 중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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