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철 충남연구원 책임연구원

"새해에는 대통령선거와 
지방선거라는 매우 중요한 
정치행사가 있다. 
나는 특정한 종교는 없지만 
억압받고 소외된 농민과 
농촌주민 
누구나 자유와 행복, 
평등과 존엄이 보장되는 
종교적 소망이 있다."

▲ 박경철 충남연구원 책임연구원

수박, 고추, 담배, 무, 배추 등 원예특작 농사를 많이 지었던 부모님 때문에 어렸을 때 농사일을 많이 도왔다. 학교를 다녀오면 가방을 집에 던져놓고 논밭에 먼저 가는 게 일과였다. 일을 마치고 집에 올 때면 해가 지고 어스름한 저녁일 때가 많았다. 부모님과 함께 어둑한 신작로 길을 걸어 돌아올 때면 부모님께 뭔가 도움을 드린 것 같아 뿌듯한 마음이 들곤 했다. 고등학교를 도회지로 갈 때까지 논밭은 그렇게 나의 터전이기도 했다.

우리집 논밭이 있던 그곳을 사람들은 개갑장터라고 불렀다. 고증에 따르면 1801년 신유박해 때 이 지역 출신 마티아 최여겸 신부가 이곳에서 순교를 당했다고 한다. 최여겸 신부는 전라도 일 때의 천주교 전파를 담당하고 이곳을 중심으로 천주교 교리를 전파하다 천주교 박해가 심해지자 외지로 피신했다가 체포되어 고향인 이곳으로 와서 장터 한 가운데에서 순교를 당했다고 한다. 

또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을 알았다. 이곳 장터는 인근 법성포와 물길로 이어져 물산이 풍부해 교역이 활발했다고 한다. 장터사람들이 일제강점기 때 돈을 모아 의병들에게 자금을 제공했는데 그게 발각이 돼 일제가 이 장터를 없애버렸다는 것이다. 공교롭게 우리집 밭에서 2킬로미터 거리에 구수내 동학농민혁명 기포지가 있다. 정읍에서 작전상 후퇴한 전봉준 장군 일행이 이곳에 내려와 진을 치고 농민들을 모아 군사훈련을 시켰다. 그리고 갑오년 3월에 정식으로 동학농민혁명 선언문을 낭독하고 일제와 부패관료에 맞서 싸우기 위해 출정했다. 이런 여간한 역사적 사실을 알고 나니 장터가 사라진 이유가 이해가 됐다. 참으로 놀라운 역사적 사실이 우리 고향 밭자락에 묻혀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사실이 고증이 되면서 천주교와 군청에서는 개갑장터를 천주교 성역화와 장터복원 사업을 추진했다. 그 과정에서 우리집 논과 밭이 수용이 되는 아쉬움이 있었다. 아버지는 이 논밭을 만들기 위해 무던히 애를 쓰셨다. 밭에 사금파리가 많아 골라내는 일도 많았고 밭을 논으로 만들기 위해 품도 많이 들였다. 그래서 더 애착이 가는 농지였다. 하지만 역사적 의미가 깊고 가치 있는 일을 추진하는 것이라 생각해 우리 가족은 토지 수용을 기꺼이 허락했다. 그 후 우리집 논밭을 포함해 주변 논밭은 천주교 성지로 지정이 돼 현재 성역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31일 연구원 종무식을 마치고 고향으로 내려가 어머니와 한해 마지막 날을 보내고 새해 첫날에 어머니와 함께 우리 밭자락이 있었던 그곳을 돌아보았다. 그런데 한 겨울인데도 성지 가장자리에 성당이 지어지고 있었다. 허허벌판이었던 그곳이 성지로 만들어지고 그 가장자리에 성당이 만들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성당이 지어지고 장터가 점차 복원이 되면 이곳은 어떤 모습으로 변할까. 밀레의 만종(晩鐘)처럼 성당의 종이 울리면 감사의 기도를 올리는 가난한 농부의 모습은 아니더라도 우리 농촌의 풍경도 달라질 거라 생각했다. 

이곳이 성지임을 알리는 안내 표지석 뒤에는 이런 문구가 적혀있다. “행복하여라,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마태 5:10)” 
임인년 새해에는 대통령선거와 지방선거라는 매우 중요한 정치행사가 있다. 나에게 특정한 종교는 없지만 억압받고 소외된 농민과 농촌주민 누구나 자유와 행복, 평등과 존엄이 보장되는 종교적 소망이 있다. 정치가 변하고 사람들의 의식도 바뀌어 올해에는 그 간절한 소망의 종소리가 우리네 들판에도 울려 퍼져 농촌이 다시 살아나는 원년이 되길 소원한다.  

저작권자 © 농촌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