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철 칼럼

김 재 철
농학박사
본지 칼럼니스트

 

인류 역사상 적과의 전쟁기간은 다양하다. 짧게는 중동의 6일 전쟁이 있는가 하면 길게는 유럽의 30년 종교전쟁, 그리고 영국과 프랑스의 100년 전쟁이 있다. 허나 이보다 더 긴 인류의 전쟁역사가 있다. 바로 잡초와의 전쟁, 즉 김매기이다.
오늘날의 대부분 잡초는 인류가 농경생활을 시작한 기원전 10,000년경부터 출현했다고 알려져 있다. 초기의 원시적 형태의 잡초제거 방법이 기원전 1,000년경에는 축력에 의해, 1920년대에는 기계적 방법, 드디어 1947년경부터는 대량 살초무기인 제초제가 보급되기 시작했다. 또한 1956년에는 미국 잡초학회가, 1976년에는 국제잡초학회가 결성됐으며 우리나라는 1981년에 한국잡초학회가 창설돼 잡초에 대항한 공식적인 방위군까지 편성되기에 이르렀다.
잡초 발생은 농업인에게는 관리 소홀에 대한 경고이기도 하다. 그러나 최근 잡초와의 전쟁은 그 양상이 달라져 잡초에 대한 무차별 폭격에서 환경친화형 방제기술 개발로 바뀌고 있다. 잡초 허용한계를 감안한 저농도 제초제 개발, 생물농약, 또는 재배기술 개발 나아가 종합잡초관리체계가 바람직하게 거론되고 있다.

중국 전국시대 제나라에 맹상군이라는 군자가 있었다. 그는 신분의 귀천을 가리지 않고 수많은 식객을 보살펴 주위의 덕망이 자자했다. 이에 위기를 느낀 진나라 소왕은 초청한 맹상군을 아예 죽이려 했다. 이때 식객으로 받아들였던 도둑과 닭울음소리를 잘 내는 천인의 도움으로 무사히 진나라를 빠져 나올 수가 있었다. 미천한 사람의 기술도 관리하기에 따라 쓸모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잔디밭의 토끼풀은 흉악한 잡초이지만 토끼풀 초지에는 잔디뿌리가 흉악한 잡초가 된다.   생각해보면 인간사회에서 영원한 적이 없듯이 잡초사회에서도 절대 잡초는 없다. 때로는 잡초도 우리의 훌륭한 자원이 된다. 늪지나 논에 잘나오는 택사는 물론 잡초이지만 유용한 약초로 대량 재배한다. 우리나라 밭에 가장 많이 발생하는 잡초인 명아주, 쇠비름은 해열·해독에 효능이 있다. 특히 명아주로 만든 효도지팡이는 가볍고 은은해 지방 특산물로 인기가 있으며, 쇠비름은 처방에 따라 마치산부방(馬齒散敷方)을 만든다.

소련 연방 붕괴로 동서냉전 체제가 무너졌듯이 기나긴 잡초와의 전쟁에서도 평화 공존의 시대가 올지 모르겠다. 농업에서의 모든 잡초는 유용할 수 있다. 잡초발생은 토양유실을 막으려는 자연생태계의 자기보전기능이다. 잡초가 없으면 논둑은 무너진다. 따지고 보면 인간에게 유용하지 않는 잡초는 없다. 친환경 작물재배에서는 잡초를 경쟁상대로 삼아 그대로 방치하기도 하는가 하면, 자연경관을 유지하는 관상용으로도 활용한다. 들판에 흔한 억새풀은 차세대 바이오에너지 작물로도 각광을 받는다. 잡초 또한 녹색성장의 동력인 셈이다.
발길에 차이는 농촌의 흔한 잡초들도 훌륭한 자원이 될 수 있다. 농업생산에 제초제를 이용, 잡아 없애는 것만을 생각하지 말자. 잡초 상위 20%가 인간이 주로 이용할 수 있는 파레토의 법칙이 통용되는 일이 일어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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