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별기고- 강원도의회 신명순 의원(농림수산위원회 부위원장)

▲ 강원도의회 신명순 의원(농림수산위원회 부위원장)

요즘 TV 채널을 돌리면 거의 모든 방송사마다 트로트가 나온다. 트로트는 친숙한 노랫말로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코로나우울을 이기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
예전에는 농촌을 배경으로 한 노래가 많았는데 요즘은 농촌 정서를 반영한 노래를 듣기가 어려워졌다. 대중가요는 대중의 삶과 사회상이 투영되는데 대중들의 농촌에 대한 관심이 줄어듦을 보여주는 것 같아 아쉬운 마음이 든다.

트로트 중에 어르신들이 지금도 즐겨 부르는 ‘흙에 살리라’라는 노래가 있다. 노랫말을 들어보면 그 속에는 남성 우위의 가부장 문화가 뚜렷하게 보인다. 여성농부를 노래한 ‘처녀농군’이라는 노랫말에는 여성농업인의 지위가, 그 고단한 삶이 드러나 있다. 60·70년대 당시 우리 농촌 모습을 잘 투영하고 있는 두 노래 속에 담긴 남녀가 불평등한 농촌 정서는 안타깝게도 오늘날에 있어서도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 같다.

 

              <흙에 살리라>
초가삼간 집을 지은 내 고향 정든 땅
아기염소 벗을 삼아 논밭 길을 가노라면
이 세상 모두가 내 것인 것을
왜 남들은 고향을 버릴까 고향을 버릴까
나는야 흙에 살리라 부모님 모시고
효도하면서 흙에 살리라

물레방아 돌고 도는 내 고향 정든 땅
푸른 잔디 베개 삼아 풀내음을 맡노라면
이 세상 모두가 내 것인 것을
왜 남들은 고향을 버릴까 고향을 버릴까
나는야 흙에 살리라 내 사랑 순이와
손을 맞잡고 흙에 살리라

[1973년 발표, 가수: 홍세민 작사/작곡: 김정일]

 

                  <처녀농군>
1. 홀어머니 내 모시고 살아가는 세상인데
이 몸이 처녀라고 이 몸이 처녀라고
남자 일을 못하나요
소 몰고 논밭으로 이랴 어서 가자
해 뜨는 저 벌판에 이랴 어서 가자
밭갈이 가자

2. 홀로 계신 우리 엄마 내 모시고 사는 세상
이 몸이 여자라고 이 몸이 여자라고
남자 일을 못하나요
꼴망태 등에 메고 이랴 어서 가자
해 뜨는 저 벌판에 이랴 어서 가자
밭갈이 가자

[1967년 발표, 가수: 최정자 작사: 황우루]

 

 

 

 

 


우선 ‘흙에 살리라’의 노랫말을 보자. 남성 농부는 아기염소를 벗을 삼고, 푸른 잔디를 베개로 삼으며 풀내음을 맡고 있다. 여유가 있고, 고달픔보다는 어쩐지 낭만이 넘친다. 그리고 더 눈에 띄는 구절은 ‘이 세상 모두가 내 것’이라는 것이다. 논도 밭도 본인의 것이기 때문에 흙에 뿌리를 내릴 수 있는 것이다. 

남성농업인의 농지보유율은 80%대에 이른다. ‘이 세상 모두가 내 것’이라는 노랫말이 괜히 나온 소리가 아니다. 그리고 부모님 모시고 효도하고 싶어하는데 이 일도 여성의 도움에 의존한다. 그래서 2절 가사에서 보듯이 남성농부에게는 ‘내 사랑 순이’가 필요하다.

반면 ‘처녀농군’에서는 ‘남자 일’, ‘소 몰고’, ‘밭갈이’와 같은 단어가 눈에 띈다. 처녀농군에 있어 농촌은 여유와 낭만은커녕 치열한 삶의 현장일 뿐이다. 이 처녀농군들은 남자들의 부재로 어쩔 수 없이 홀어머니 슬하에서 농군이 된 사람들이다. 그러나 이 농군들은 농지를 상속받지 못했다. 

이 일꾼들을 현재 우리는 여성농업인라고 부르는데 여전히 ‘가진 것’이 없다. 탁월한 농업경영능력을 가지고 있는 여성들도 농지는 물론 통장조차도 본인의 명의가 아닌 경우가 많다. 여성농업인의 삶도 양성평등의 차원에서 눈에 띌 만한 진전을 이뤘다고 보기는 어렵다. 가사 일부를 가전제품의 지원(?)을 받는 것 이외에는 예전과 비교해 크게 개선된 것은 없다. 도시 맞벌이처럼 가사분담이라는 얘기는 꺼낼 수도 없는 곳이 농촌이다. 

농촌 마을공동체의 남성 중심적인 문화는 여성의 일방적인 희생을 요구한다. 이로 인해 농촌 여성들의 삶은 남성들보다 고달프다. 농촌은 가부장적인 문화가 미풍양속이라는 유산으로 남아있는 가장 불평등한 공간이다. 

따라서 농촌에 여성들이 머물러 살고 싶도록 정책적인 지원은 물론 양성불평등한 구조를 개선해 나가려는 지역사회의 노력이 필요하다. 
요즘 들어 청년여성농업인들이 스마트 영농 등으로 매스컴의 주목을 받는 일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반가운 일이다. 농촌에 새로운 활력이 될 스마트농업은 스마트한 여성들에게 더 잘 맞는 농법이라고 생각된다.

여성들이 스마트폰으로 소의 건강 상태를 체크하고, 시설하우스의 온도와 습도를 조절하며, 카메라로 병해충과 진딧물이 생기는지 관찰하고, 드론으로 방제약을 뿌린다. 무슨 강력한 남성적인 힘이 필요한가. 스마트한 농사를 하는 청년여성농을 통해 농촌의 변화를 견인하고 첨단기술과의 융복합을 친근하게 제시할 수 있는 역량을 키워야 한다.

이를 위해 농식품부의 청년농업인 정책은 사실 여성농업인에게 더 방점을 둬야 한다. 청년여성농업인들에 대한 별도의 정책을 마련해야 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청년여성농업인이 농촌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야 남성농업인들도 농촌을 떠나지 않고 자리를 잡고 살 것이기 때문이다. 

이 여성들이 부모님으로부터 농지를 완전히 물려받아 내 것으로 한 후 ‘내 사랑 훈이’와 손을 맞잡고 그 훈이가 처부모를 모시는 것을 사랑스럽게 지켜보면서 ‘흙에 살리라’를 노래하게 될 때 농촌공동화는 더 이상 진행하지 않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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