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광희 칼럼 - 누리백경(百景)(216)

“범 내려온다. 범 내려온다. 장림 깊은 골로 대한 짐승이 내려온다. 몸은 얼숭덜숭, 꼬리는 잔뜩 한 발이 넘고, 누에머리를 흔들며 전동 같은 앞다리, 동아같은 뒷발로 촤르르르르 흩치며, 주홍입 쩍 벌리고 ‘워리렁’ 허는 소리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난 듯, 자래(자라) 정신없이 목을 움추리고 가만이 엎졌것다.”
판소리 <수궁가>(일명 <별주부전>)의 ‘범 내려온다’ 대목이다. 바닷 속 별주부(자라)가 토끼 간을 구하기 위해 뭍으로 올라와 육지동물을 두리번대며 살피던 중, 토끼를 발견하고 “토선생!”하고 부른다는 것이 그만 “호선생!” 하고 잘못 불러 범(호랑이)이 산에서 “어흥!”하고 내려온다는 대목이다.
19세기 후반, 날랜 줄타기와 판소리 명인이었던 이날치(李捺致, 1820~ 1892)의 <수궁가> 한 대목을 최근 ‘이날치 밴드’라는 젊은 음악그룹이 퓨전국악으로 만들어 불러 인기 상종가를 치기도 했다.

#그 범이 내려왔다. 2022년 새해는 임인년(壬寅年) 범(호랑이)의 해다.
12간지를 색깔로 보면, 갑을-파랑, 병정-빨강, 무기-노랑, 경신-하양, 임계-검정. 임인년인 올해는 검정이라 검은 호랑이, 즉 흑호(黑虎)의 해다.
예부터 우리 민족은 호랑이와는 뗄레야 뗄 수 없는 인연으로 엮여져 왔다. 우리 민족의 탄생설화인 단군신화의 주인공으로 곰과 함께 호랑이가 등장한다.(곰과 같은 끈질긴 참을성 부족으로 사람이 되지 못하지만)

아마도 이 땅의 모든 동물-‘백수의 제왕’이라는 호랑이의 ‘무지한 힘+용맹성+위엄’이라는 상서로운 상징성을 우리 민족성으로 동질 시 하려는 노력의 산물이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잘 알다시피 1988년 서울올림픽 마스코트를 호랑이인 ‘호돌이’로 한 것도 대표적인 사례의 하나다. 그러나 아쉽게도 우리나라의 야생호랑이는, 1922년 경주 대덕산에서 포획된 이후 자취를 감춰 ‘백두산 호랑이’, ‘인왕산 호랑이’로 불리던 호랑이는 동물원에나 가야 만나볼 수 있다.

#임인년인 올해가 특별한 것은, 대통령 선거일(3월9일)이 들어있다는 것을 꼽을 수 있다. 우리는 지나간 역사 속에서 ‘호가호위(狐假虎威, 여우가 호랑이를 뒤따라 다니면서 호랑이 위세를 제 위세로 삼는 것)하는, 몰염치한 인사들을 질리도록 많이 보아왔다.

우리 모두 ‘범 내려 온’ 올 한 해만이라도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호사유피 인사유명/虎死留皮 人死留名)’는 성어를 가슴 속에 되새겨 보는 한 해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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