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자수필- 귀농아지매 장정해씨의 추억은 방울방울

"이렇게 좋은 사람들을 
징검다리 삼아 건너며 
건강하게 살아왔구나 싶다..."

“어이~ 눈이 왔어~” 어둠을 뚫고 들려오는 남편 목소리에 거미줄에 말린 먹이처럼 칭칭 감고 있던 이불을 제치고 덜 떨어진 눈으로 커튼을 젖혔다. 온 세상을 하얀 모포로 감싸 안듯 목화송이 같은 함박눈이 하늘에서 점점이 쏟아진다. 점퍼를 걸치고 얼른 밖으로 나갔다. 흰 눈송이 냄새가 싱싱한 것이 첫눈이다. 처음의 깨끗함은 언제나 사람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노트 한 권으로 일 년을 넘겨 매일의 잡기장으로 쓰다 보니 끝이 났다. 지나간 일 년을 메모한 글들을 설렁설렁 넘겨본다. 4월 쯤 TV에 ‘윤스테이’가 방영될 때 ‘내가 윤여정씨를 좋아하는 이유’라고 쓴 글에는 젊은이를 좋아하고 새로운 시도를 두려워 않고 부끄러워하지 않는 태도, 자신의 많은 성취에도 불구하고 남(젊은이)을 더 아름답게 보는 자세, 솔직하게 자신의 편견과 한계를 인정해 사람들을 웃게 하는 재치와 유머가 있어 부럽다는 내용이다. 

바로 옆장에는 독일의 여성총리였던 ‘앙겔라 메르켈’의 ‘무티 리더십’에 대해 장장 두 페이지가 쓰여 있다. 농촌여성신문에도 한 번 소개된 적이 있었던 것처럼 세계 어느 곳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더라도 인간이 추구하는 본질적인 진실한 삶의 가치는 동일하다는 것을 그녀로부터 듣고 감탄했었다. 

그리고 한참 페이지를 넘기니 MZ세대의 롤모델 크리에이터 ‘밀라논나’(본명은 장명숙)에 대한 글도 있다. 구독자 100만 명을 자랑하는 이태리할머니(밀라논나)는 그녀는 어려서 별명이 ‘입 큰 애’, ‘못난이’, 말라서 예쁜 옷도 태가 안 난다는 등 못 생긴 애로 낙인이 찍힌 미운오리새끼였다고 한다. 그래서 그 열등감(결핍)으로 예뻐지고야 말겠다는 굳은 결심이 그녀를 한국 최초의 이태리 밀라노 패션 유학생이 되게 했다고. 

그녀가 유학을 떠난 1978년은 내가 결혼한 해였고, 그때는 지방에서 서울로 진학을 해도 유학 간다고 했던 시절이다. 이미 결혼해 아이까지 둔 그녀가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비행기를 갈아타고 36시간을 날아간 서양의 낯선 타국땅에서 유일한 동양인 여학생이 첫 시간에 들은 것은 “네 색깔을 찾아. 너만의 고유한 개성을 지녀라. 네 고유함을 잊지 말라”는 가르침이었다고 했다. 영화배우 메릴 스트립 같이 하얗고 짧은 숏커트 머리에 가죽점퍼를 맵시 있게 입은 작고 마른 체구에는 압도적이고 당당한 뭔가가 있었다. 나는 그녀에게서 자신의 자유를 어떻게 쟁취하며 누리는지를 배웠다고 적었다. 

노트의 끝장이 다 돼 마지막으로 쓰인 이름이 요즘 가장 뜨거운 TV조선 ‘내일은 국민가수’의 힐링콩알이라 불리는 일곱 살 김유화다. 최연소로 출연해서 처음부터 눈에 띄었지만 회가 거듭되면서 유일하게 시청자들의 호응으로 준결승까지 오르며 솔로로 ‘아름다운 강산’을 부르는데, 인형같이 작은 아이의 몸에서 어떻게 그렇게 큰 목소리로 쩌렁쩌렁하게 세상을 깨우며 사람들을 춤추게 하는지 유하의 목소리는 크고 맑고 부드럽고 우아했다. 노래의 후렴부분 배시시 웃는 얼굴에 손망치로 박자를 맞춰 절도 있게 부를 때는 무대가 좁았다. 300여명이 방청객과 심사위원 모두가 일어나 손망치를 두드리며 환호하는 광경은 입을 다물지 못하게 했다. 내가 알고 있는 바로 무병장수의 비결은 귀여운 것을 잔뜩 보는 것이 아닐까한다.

한해를 뒤돌아보니 이렇게 좋은 사람들을 징검다리 삼아 건너며 건강하게 살아왔구나 싶다. 노트를 덮으며 창밖 참새떼가 나무에서 땅으로, 다시 나무로 날개달린 나뭇잎이 바람에 날리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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