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구실 노크- 농촌진흥청 국립식량과학원 정기열 연구관

트랙터로 주행하며 쉽게 시공하는 저비용 공법
논기능 유지면서도 탁월한 배수·관수기능 겸비

▲ 정기열 연구관

논에서 밭작물 재배시 투자비 부담
“밭작물의 수급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 논에서의 밭작물 재배면적이 매년 늘어나고 있는 추세입니다. 그러나 최근 이상기후로 국지성 호우가 빈발하는 상황에서 논에서 밭작물 재배할 경우, 토양 과습에 의한 습해 증가가 의외로 크다고 할 수 있죠. 그렇지만 물 빠짐을 위한 배수개선 생산기반은 취약합니다. 특히 중장비를 이용한 땅속배수 방식은 땅속 배수관과 소수재(물빠짐이 좋게 하는 소재) 확보 등 시공에 따른 투자비용이 크게 때문에 어려움이 많습니다.

발상의 전환이라고 할까요. 땅을 파지 않고도 땅속에 배수관을 묻는 기술을 생각하게 됐지요. 그렇게 개발된 기술은 작물의 생산성을 높이고, 작물 생육에 유리한 환경을 제공하는 차별성과 활용성 면에서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농촌진흥청 국립식량과학원 생산기술개발과 정기열 연구관(56)과 팀원들이 개발한 ‘무굴착 땅속배수 기술’은 농진청 신기술 시범사업에 반영돼 2018~2021년 전국의 21개 시·군(시군당 2㏊ 규모)에서 사업화를 추진했다. 또한 농가에 정책적 뒷받침을 통해 보급될 수 있도록 농업정책에 반영됐고, 밭작물 주산단지를 중심으로 시범사업에 반영해 기술을 보급하고 있다. 

손쉽고 저비용의 ‘무굴착 땅속배수기술’
정기열 연구관은 논에서의 밭작물 생산기술 개발과 관련해 20여 년간 연구를 이어오고 있다. 정 연구관은 그동안 ‘비굴착 지하배수 땅속 형태별 지하배수 성능 비교분석’, ‘배수효율이 높은 지하땅속의 간격과 주름유공관의 통수능 비교분석’ 등 다양한 학술성과를 비롯해 ‘트랙터 부착형 땅속배수관 매설기’ 등 3건을 산업재산권 등록했고, ‘트랙터 장착형 암거배수관 매설기를 이용한 암거배수관 시공방법’을 기술이전 했다.

이 같은 공로로 그는 제3회 대한민국 공무원상 근정포장(2017), 국민·공무원제안 최우수(2019), 농업기술대상 우수과제상(2019, 농촌진흥청장), 재난안전 연구개발 우수상(2020, 행정안전부장관) 등을 수상했다. 

“무굴착 땅속배수 기술은 토양을 교란하지 않고 손쉽게 시공이 가능한 기술입니다. 트랙터에 땅속 배수관 매설기를 장착해 주행과 동시에 시공할 수 있다는 게 큰 장점이죠. 특히 물이 드나드는 구멍이 나선형으로 뚫려 있고, 토사 유입을 막기 위해 부직포로 감싼 배수관을 50㎝ 깊이에 묻을 수 있습니다. 또 물빠짐을 좋게 하는 소수재인 왕겨를 동시에 충전할 수도 있어요. 시공 후에는 배수관을 서로 연결할 수 있어 배수관 안에 흙이 쌓이면 용수관을 통해 물을 흘려보내서 관속 퇴적물을 씻어낼 수 있기 때문에 장기간 배수 기능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무굴착 땅속배수 기술은 디지털 기술을 접목해 유지·관리 또한 한결 수월하다는 것이 더 큰 장점이라고 정 연구관은 설명했다.
“논의 말단부에 지하수위 제어기를 설치하면 논의 기능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탁월한 배수 기능과 지하로부터의 관수 기능까지 겸비하게 됩니다. 장마나 가뭄이 지속돼도 땅속 배수관을 통한 관·배수로 작물 재배에 최적인 지하수위로 자동 제어할 수 있지요. 무굴착 땅속배수 기술은 기존 굴착식 땅속배수와는 다르게 설치 과정에서 흙이 뒤섞이지 않고 논의 기능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언제든지 필요에 따라 논과 밭으로 이용할 수 있어요.”

시범사업·정책사업으로 농가보급 박차
정기열 연구관과 팀원들이 개발한 무굴착 땅속배수 기술은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실용화되지 않은 기술로, 기존의 굴착식 공법을 대체할 수 있는 최초의 저비용의 땅속배수 기술로 평가받고 있다. 특히, 전문 시공업체에 의한 굴착식 공법과 달리 영농현장에서 손쉽고 간편하게 시공할 수 있는 기술이어서 기존 굴착식 공법의 과다한 시공비용의 문제점을 해결했다는데 의미가 크다.

“무굴착 땅속배수 기술은 시공과정에 흙이 뒤섞이지 않아 땅속 양분을 그대로 유지하고, 땅의 수평을 깨뜨리지 않아 언제라도 다시 논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또한 논의 땅속배수 기반을 조성함으로써 논·밭 범용화를 유도해 농지 이용의 다양화와 더불어 밭작물 재배면적을 확대하고 생산성을 크게 높일 수 있습니다.”

무굴착 땅속배수 기술의 시공비용을 산정해본 결과, 1㏊당 1200만 원이 소요돼 기존 굴착식 땅속배수(3720만 원)에 비해 비용이 66.9% 절감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또한 무굴착 땅속배수 기술의 손익분기점은 3.84년으로, 굴착식 땅속배수(10.2년)에 비해 경제적 가치도 입증됐다고. 

“무굴착 땅속배수 기술은 산업체 기술이전을 통해 창업과 사업화 등 많은 고용인력 창출 효과도 기대됩니다. 이 기술은 농진청 신기술시범사업에 반영됐고, 또한, 농림축산식품부 농지범용화사업(2020~2024년, 총사업비 950억 원)에 반영돼 농가 보급도 신속히 추진되고 있어 쌀 생산조정과 밭작물 생산성 확대를 동시에 기대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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