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명견 교수의 재미있고 유익한 옷 이야기(119)

"과학적이고 품위 있었던 
난모의 지혜도 다시 한 번 
떠올리며 민족적 자긍심을..."

▲ 난모(사진출처/한국민속대백과사전)

코로나19가 인간의 삶을 뒤흔들고 있어도 우리에게 기쁨을 주는 BTS를 보며 새삼 민족적 자부심에 어깨를 펴본다. 정치적으로 무력적으로 힘이 없어 어려운 역사도 겪어야 했지만, 과학적으로 문화적으로 우수했던 조상의 DNA가 꾸준히 맥을 이어오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세계인이 놀란 온돌도 그렇고, 임진왜란으로 끌려간 도공들의 도자기 기술, 구한말 우리의 기술자들이 전해준 은(銀)의 연금술로 일본이 부(富)를 쌓은 것도 그렇거니와, 가무(歌舞)를 즐기던 후손답게 세계인을 열광시키고 있는 BTS 등이 모두 확실하고 명백한 증거다. 어디 그 뿐인가. 복식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모든 옷에 솜을 두둑이 넣어 추의를 이겨낼 줄 알았고, 특히 모자는  조선에 온 외국인들이 이 나라를 ‘모자 대국’이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을 정도다. 

특별히 겨울에는 각종 난모(煖帽 : 머리를 따뜻하게 하는 모자)로 체열이 빠져나가는 것을 막으면서 장식까지 해 한껏 멋을 부렸다. 난모는 이름도 형태도 다양했다. 이마만 가리는 액암(額掩)과 아얌도 있고, 이마와 귀와 뒷목부위를 가리는 남바위, 볼을 감싸주는 볼끼가 달린 풍차, 머리통만 감싸는 조바위 등이다. 반가의 남성들은 흑립(갓) 아래 어깨까지 따뜻하게 하는 휘항도 썼다. 이들 난모는 겉은 비단으로 하고, 동물의 털이나 융 같은 천을 안에 덧대고 가장자리에 또 털을 두른 후 수술과 구슬 장식을 하는 형태가 기본이었다. 한마디로 모자 하나에 성별, 신분, 빈부를 나타냈고, 보온은 물론 멋과 품위까지 드러냈다. 

날씨가 추워지고 있다. 올겨울 추위가 예년보다 강해질 것이라고 한다. 이러한 가운데 최근 겨울 모자가 젊은이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한다. 패션업계에 따르면, 스타일과 보온성을 모두 갖춘 발라클라바가 새삼 뜨고 있다는 것이다. 발라클라바는 머리와 목·귀·입을 감싸는 방한용 모자다. 19세기 크림 전쟁에 파견된 영국군이 혹한을 견뎌내기 위해 털실로 방한모를 만든 것에서 유래했다. 이름도 이 크림 전쟁의 주요 전투 중 하나였던 ‘발라클라바 전투’에서 따왔다. 얼굴 전체를 가리기 때문에 겨울 스포츠용품이나 군경·소방관 등이 착용해 왔으나 은행 강도 같은 범죄에 이용되기도 했다. 

이 발라클라바가 패션계에 등장한 것은 이미 2018년부터였다.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 구찌. 디올, 캘빈클라인 등이 유행을 선도했었고, 그해 4월 미국 코첼라 뮤직 페스티벌(캘리포니아주 인디오의 사막 지대 코첼라 밸리에서 하는 야외 록 축제)에서 세계적 팝 가수 리한나(Rihanna)가 크리스털로 장식된 구찌의 발라클라바를 쓰고 등장했었다. 그녀의 이 기괴한 패션이 ‘매우 멋지다(Super Cool)’며 팬들이 열광하면서 제품은 6일 만에 매진됐었다. 발라클라바에 대한 새삼스러운 관심과 유행은 보온은 물론 마스크 뒤의 편안함을 경험하고 있는 코로나 시대의 우리들에게 얼굴을 가리면서 얻을 수 있는 심리적 안정감까지 기대하기 때문이라는 견해도 있다. 

굳이 발라클라바가 아니어도 보온성 높은 모자를 쓰며 조상들의 과학적이고 품위 있었던 난모의 지혜도 다시 한 번 떠올리며 민족적 자긍심도 높여 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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