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희 기자의 ‘세상만사’

■  박광희 기자의 ‘세상만사’

 

조선조 헌종때의 실학자로 ‘북학(北學)4가(四家)’의 한 사람인 이덕무의 손자이기도 한 이규경(李圭景)은, “우리 동방(조선)의 어린아이들 울음소리는 이미 천하에 유명하다”고 전제하고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들고 있다.
-(부녀자는) 윗사람 모실랴, 아랫사람 거느릴랴, 온 식구 밥지어 먹일랴, 베짜서 옷지어 빨래 해 입힐랴 한 몸을 열조각 내도 붐빌 판에 젖꼭지마저 달려 있어 무작정 젖꼭지를 물리거나 안거나 업고서 일을 계속해야 하기 때문에 아이들은 그 어미의 살갗에 붙어살게 되고, 잠시라도 떨어지면 울게 된다‥‥.
얘기대로 한 아이는 업고 한 아이는 젖을 물려 안고 머리에는 물동이를 이고 다른 한 손으로는 아이 하나 이끌고 시골길을 가던 시골아낙의 풍경쯤은, 60~70년대를 시골에서 나고 자란 이들에게는 그리 눈에 설지 않은 모습일 것이다.

그 뿐이랴. 옛날의 우리 할머니나 어머니들이 젖을 떼는 아이에게 밥을 먹일 때면, 반드시 밥을 자기 입으로 씹어먹이거나 숟가락째 자기 입속에 넣어 아이가 먹을 밥의 온도를 체온 높이까지 데워 먹이곤 했다. 아이의 탈을 미리 막기 위한 지혜다. 아이들에게 옷을 갈아입힐 때 어머니가 입힐 옷을 겨드랑이에 끼고 온기가 있게 데워서 입힌다든지, 아이들 세숫물 속에 어머니가 두 손을 짚고 한동안 있다가 물이 너무 차거나 뜨겁지 않게 했던 것 모두가 그렇다.
요즘 그런 전형적인 한국적 모성애를 되돌아 생각케 하는 신경숙 씨의 장편소설 <엄마를 부탁해>(창비刊)가 작년 11월 초 나온 이래 순식간에 50만부를 돌파하며 독서가에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엄마를 잃어버린 지 일주일째다’로 시작되는 이 소설은, 시골에 사는 어머니가 장남이 처음 장만한 집을 보기 위해 서울에 올라왔다가 지하철역에서 실종되자, 이 엄마를 찾아나선 아들과 딸, 남편이 각자의 회상을 통해 주인공 엄마의 삶과 꿈을 그려가는 가슴 찡한 가족의 이야기다.

문단에선 신드롬에 가까운 이 소설의 폭발적 인기를 놓고, 최근 삶의 위기에 처한 소시민들의 모성애 갈망이 투영된 시대상을 반영하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비록 춥고 배고프고 어두웠지만 따뜻했던 어린시절과 고향, 그리고 어머니에 대한 아련한 추억을 지펴올려 읽는 이들의 눈물샘을 자극한 것이다.
얼마 전 타계한 김수환 추기경이 생시에 가장 그리워 한 풍경은, ‘어릴 적 국화빵 팔러 간 어머니를 기다리며 바라보던 붉게 물든 저녁하늘’이었다.
지금 우리들의 어머니는 어디에 어떤 모습으로 있는가. 누가 누구에게 ‘엄마를 부탁’할 수 있는가. 지금 기자의 팔순노모는 새끼들 다 떠나가 버린 고향의 텅빈 낡은 둥지에 우두커니 홀로 앉아 짓무른 눈 부비며 새끼들이 목에 걸어준 ‘워낭’ 같은 휴대전화에 가는 귀 기울이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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