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자수필- 귀농아지매 장정해씨의 추억은 방울방울

"내년 이맘때도 어르신들과 
떡을 나누며 눈물 섞인 
인생담을 나눌 수 있을지..."

한 장 한 장 세월은 찢겨나가고 달랑 한 장 남은 12월 달력. 그 속에 박힌 하루하루로 올 한 해를 마무리해야 한다. 위드 코로나로 경로당 문이 다시 열리고 동계, 반계, 대동계를 올해는 할 수 있으려니 했는데, 오미크론 변이 바이러스로 갈팡질팡이다. 그래도 연말이면 정부에서 주는 쌀로 해마다 가래떡을 해왔기에 더 늦기 전에 떡도 하고, 노인회 총회도 하고, 성탄축하도 해야 한다.  

방앗간에 쌀을 맡긴지 하루 만에 떡을 찾아가라고 연락이 왔다. 총무님께 마을 어르신께 연락을 부탁하고 부리나케 달려가 떡 스무 박스를 싣고 왔다. 떡을 다 내려놓고 총무가 오자마자 떡 나눌 명단을 그에게 맡기고 산꼭대기에 홀로 사시는 어르신들에게 떡을 돌리려고 출발했다. 

“할머니~ 할머니~” 문을 두드려도 조용하다. 문을 여니 어두컴컴한 방에 TV를 크게 켜고 혼자 앉아 계신다. 방문을 벌컥 열고 부르는 목소리에 뒤돌아보며 “이게 누구여~ 섬바우댁인가~~~” 하며 반색하신다. “연말이라 노인회에서 가래떡 뽑았어요.” “그래~ 커피 한잔 마시고 가~” 가봐야 한다고 해도 어르신은 손을 잡고 놓지를 않는다. “이렇게 먼 데까지 떡을 갖다 줘 너무 고마워, 그냥 가면 내가 섭섭해. 한 잔 마시고 가~” 거절할 수 없어 커피를 받아 들었다. 

달달한 커피믹스를 뜨거운 김 후후 불어가며 마시는 할머니의 눈빛에는 많은 것이 아스라하게 사라진다. 일제침략기와 전쟁통에 칠남매를 낳아 키워낸 여장부 강단이 다섯 며느리를 쩔쩔매게 했던 기세가 잿불 같이 잦아들었다. 오롯이 자식을 기다리는 시간을 낙으로 견뎌야하는 시간을 달콤한 커피로 달래면서 그저 보드라운 노인이 돼버렸다. 

쓰고 달고 고소한 맛이 고루 섞인 커피는 인생의 맛을 닮았다. 다 마신 종이컵을 내려놓고 아래 대문다리 할머니댁에 떡배달 가야한다고 손을 흔들며 나섰다. 

대문다리 할머니는 그래도 몸을 잘 쓰시는 편이라 문을 두드리자마자 나오셨다. 반갑게 떡을 받으시며 안 그래도 전화 와서 내려갈까 했는데 이래 가져왔냐면서 들어오라신다. 윗집에서 커피는 벌써 마셨다고 했더니 그럼 우리 큰아들이 사놓은 귤이라며 하나를 쪼개주신다. 어린 나이에 시집와서 시어머니와 자기가 같은 해에 출산을 해서 시동생을 자기 자식과 함께 키웠는데, 형편이 어려워 둘씩 중학교를 보낼 수 없어 시동생만 중학교를 보내고 자기 큰아들은 못 보냈다고. 택시운전을 하며 먹고는 살지만 지금도 그 아들 못 가르친 게 마음이 째이고 아프다며 눈물을 닦으며 담배 한 가치를 입에 무신다. 

요즘 아무도 노인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는다. 모르면 누구에게 묻기 전에 일단 인터넷에 들어가면 그만이다. 그러나 사람의 오래된 경험을 전산화할 수 있을까? 그리고 팔십이 넘은 노인들은 두려움이나 이해타산 없이 거침없이 말하는 굽힘 없는 정직함이 있다. 우리 경로당에 모이는 왕할머니도 이제 다섯 분 정도다. 연세가 팔십 후반에서 구십 초반이라 보이지 않으면 걱정이 앞선다. 내년 이맘때도 마을 어르신들과 떡을 나누며 눈물 섞인 인생담을 나눌 수 있을지... 짧아진 오후 해를 등지고 집으로 발걸음을 재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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