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광희 칼럼 - 누리백경(百景)(211)

“사랑하는 여인의 도움과 지지 없이는 무거운 책임을 수행해 나가기가 나로서는 불가능 하다는 것을 깨달았으며....”
1936년 12월11일 밤, 대영제국의 왕 에드워드 8세가 영국 국영방송 비비씨(BBC) 라디오를 통해 ‘국왕 퇴위의 변’을 발표했다. 동생 요크 공에게 왕의 자리를 물려준다는 말이었다.
이 에드워드 8세가 바로 윈저 공(Duke of Windsor, 1894~1972)이다.

우리가 흔히 ‘세기의 로맨스’로 얘기하는, 심프슨(1896 ~1986) 부인과의 사랑을 위해 왕위를 버린 바로 그 장본인이다.
이들은 1931년 어느 날, 파티에서 운명처럼 만난다. 이때 대영제국의 왕세자 신분이었던 데이비드는 35세의 미국인 유부녀인 심프슨에게 단숨에 빠져 불륜 관계를 맺는다.

때마침 부왕인 조지 5세가 건강악화로 세상을 뜨자, 황태자 데이비드가 왕위에 오른다. 에드워드 8세다. 그런 와중에서도 이들의 불륜은 계속 이어지고, 급기야 에드워드는 심프슨 부인의 남편에게 이혼을 권고한 뒤, 자신은 끝내 영국 왕위를 포기한다.

그리고 왕위를 내놓은 지 7개월 만인 1937년 6월3일, ‘윈저공과 윈저공 부인’이라는 이름으로 두 사람은 프랑스에서 정식으로 결혼한다. 하객은 달랑 16명 뿐이었다.
당시 영국의 전시내각을 이끌던 처칠 수상은, 윈저공에게 바하마 총독 자리를 줘 서인도제도로 쫓아낸다. 사실상의 유배였다.

이때 처칠 수상은, “저열한 사람들 중에서도 가장 저열한 사람들”이라고 격하게 힐난했다. 영국 내에서는 이들의 눈먼 사련이 전쟁 중에 있는 영국을 위기로 몰아넣는다며, “대영제국을 말아먹으려 한다!”는 악평이 쏟아졌다.

심프슨 부인은, 이따금 짜증 섞인 푸념을 늘어놓았다. “세기의 로맨스? 그게 얼마나 죽을 맛인데...”
윈저공은 훗날 왕위를 버린 것을 후회하며 우울증에 빠져 있다가, 죽은 뒤 영국으로 돌아와 왕실 묘지에 묻혔다.

지금은 세상이 많이 변했음인지, 그에 따라 영국 왕실의 엄격했던 금도도 다 깨졌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4남매 중 3명이 이혼했으며, 아들 찰스 황태자는 다이애너 왕비가 교통사고로 죽은 후 이혼녀와 재혼했다.

영국 왕실의 또다른 이단아는 찰스 황태자의 둘째 아들 해리 왕자(36). 그는 서식스 공작 작위를 갖고 있는데, “어머니 다이애나비의 불행을 되풀이하고 싶지 않다”며 세 살 연상의 미국 흑인혼혈 여배우로서 이혼녀인 메건 마클과 결혼해 미국 캘리포니아로 이주해 자유분방하게 살고 있다.

그도 영국 왕위 계승 서열 6위지만, 아예 그런 자리는 안중에도 없이 사랑을 택해 왕실에서 뛰쳐나왔다.
최근 왕족이 아닌 보통사람인 대학 동창과의 결혼으로 평민신분이 돼 화제가 되고 있는 일본 황실 마코(30) 공주의 말이 그런 요즘 세상 분위기를 잘 대변해 준다.
“결혼은 우리에게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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