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명견 교수의 재미있고 유익한 옷 이야기(117)

"내실과 자긍심이 
더욱 필요한 때다. 
좌절하지 않고 
당당함으로 일어서는
‘문장 정신’이 절실하다"

인간은 태고 적부터 자기를 표현하며 사회적 관계 안에서 스스로를 보호해왔다. 치장을 한다거나 귀한 것을 몸에 지니거나 특별한 표식을 하면서 자기 보호는 물론 독특한 문화와 유행을 만들어오기도 했다. 문장도 이들 중 하나다. 

문장(紋章)이란 가문이나 국가, 단체, 개인을 상징하는 기호나 그림을 일컫는 말이다. 서양에서 주로 발달했다. 문장은 중세부터 시작됐다고 하지만, 이미 고대국가시대에도 국가나 왕의 상징으로 이용했다. 고대 그리스의 아테네는 올빼미, 코린트는 페가수스(Pegasus:天馬), 크레타는 미노타우로스(Minotauros:人身牛頭의 괴물) 등의 사용이 그 예다. 이 외에도 6세기경 영국에 침입한 주트족은 백마(白馬)를, 바이킹은 붉은 바탕에 검은 새를 깃발에 사용하기도 했다. 

12세기에 나타나기 시작한 서양의 문장은 십자군 전쟁 이후 패션으로 진화하며 전 유럽을 휩쓸었다. 특별히 입고 있는 옷은 그 가문의 문장을 자랑하기에 가장 효과적인 도구였다. 옷에 화려하게 수를 놓아 가문을 자랑했다. 왕이나 영주들로부터 시작했던 문장이 17세기에 이르러서는 백성들에게까지 퍼지게 됐다. 우리의 조선시대 족보나 오늘날의 주민등록증 같은 기능까지 하게 됐다. 마침내 문장관이 전국을 순회하며 정기적으로 문장을 조사·수집하며 문장 사용을 통제하고 이것들을 성문화해 책으로 출판했다. 당시 도서관의 책 절반이 문장학에 관한 것이었다 하니 그 영향력이 얼마나 컸을까 상상이 간다. 물론 하나의 유행으로 간단히 넘길 수 있으나 이 문장 안에는 나름의 자부심과 결집력과 삶의 목표가 살아있었던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문장과 유사한 기능의 문양이 있었다. 서양의 문장처럼 옷이나 건축물에 나타낸 것은 아니지만, 한 집안을 상징하는 가인(家印:집안의 도장)이 있었고, 떡살이나 다식틀에 각 집안마다 고유한 문양을 새기고, 이것을 함부로 바꾸거나 빌려주지 않았다. 떡살문양을 정하거나 바꿀 때에도 문중의 허락이 필요했을 만큼 가문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떡살에 택호와 제작 날짜를 새겨 대대로 물려줬고, 절대 남에게 빌려주지 않으며 가풍과 가문의 힘을 뽐냈다. 때문에 옛날에는 떡이나 다식만 봐도 어느 집안에서 만들었는지 알 수 있었다고 한다. 

시대가 바뀌어 옛 문장이 사라진듯하다. 그러나 로고나 상표라는 이름으로 여전히 건재 한다. 현대의 로고나 회사 마크 같은 것이 현대화한 문장이다. 크게는 나라마다 국가의 문장(國章)이 있고, 뉴욕이나 서울시 같은 지역을, 삼성 등 회사, 샤넬이나 에르메스 같은 명품 브랜드, 축구단 같은 스포츠팀들이 나름의 로고로 각자의 특성을 부각시키며 역사와 전통, 자부심 그리고 응집력을 나타내고 있다. 그야말로 문장의 시대다. 결과적으로 현대를 살아가는데 있어서도 이 같은 강한 상징으로 소속집단을 표현하며 서로 응집하고 격려하며, 사회적 관계 안에서 스스로를 보호하며 존중 받고자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삶이 어렵다. 특히 젊은이들의 삶이 고달프다. 바야흐로 내실과 자긍심이 더욱 필요한 때다. 좌절하지 않고 당당함으로 일어서는 ‘문장의 정신’이 절실해 보인다. 

저작권자 © 농촌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