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과 사람들 – 전북 부안 '바래청춘학교'

평균나이 83세 어르신들이 책상에 둘러앉아 한글을 배우려고 연필을 잡기 시작한 건 올해 4월부터다. 어르신들에게 한글을 가르치는 백영선 문해교사는 도비와 군비 약 1억1천만 원의 예산을 통해 전북도가 14개 시군 어르신을 대상으로 '바래청춘학교'를 운영하면서 어르신들과 인연을 맺었다.

▲ 전북 부안 동림마을 (왼쪽부터)함석순(80), 김승이(91), 유정숙(87), 김계순(87), 서정순(73), 황연임(79) 어르신들이 또박또박 자신의 이름을 적은 종이를 들어보였다.

어르신들, 한글 배우며 자존감 재확립
응어리진 한 풀고 일상생활 불편 해소

자음·모음부터 한글 삼매경
연초에 교육생을 모집하면서 11명의 어르신이 의기투합했다가 한 어르신이 예기치 못하게 돌아가셨고, 그 사이 코로나19 확진자가 급증하면서 자녀들의 만류로 현재는 함석순, 김승이, 유정숙, 김계순, 서정순, 황연임 어르신만 남았다.
백영선 교사는 “부안 농특산물인 오디를 시설하우스(300평)에서 친환경 재배하면서 3년차 문해교사를 겸하고 있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어르신들의 학습 진도는 교육부와 국가평생교육진흥원에서 성인문화교과서로 제작한 ‘소망의 나무’ 초등과정 2권에 접어들었다. 교재는 한글을 읽고, 쓰고, 단어와 이미지를 연결하는 문제와 치매예방을 위한 색칠공부 등으로 구성돼 있다. 어르신들은 자음과 모음을 배우고, 받침이 들어간 단어를 익히는 단계다.
서정순 할머니(73)는 “이제 자음이 14자인 것은 귀딱지가 앉게 외우고 깨쳤다”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연결 지으며 낱말 외워
백 교사는 “늦게 공부에 임하는 만큼 즐겁게 배울 수 있도록 콩나물이 돼가는 과정이라고 비유하면서 한 방울씩 물을 맞으며 키가 크는 중이라고 응원했다”고 말했다.
교육을 진행하면서 어르신들이 받침 들어간 낱말쓰기를 어려워했는데, 현재는 ㄱ받침이 들어간 낱말을 뗐다. 어르신들은 받침 있는 글자를 알고 쓸 줄 알게 됐다며 뿌듯해했다.

황연임 할머니(79)는 “‘연탄’이란 단어를 배우면서 내 이름에도 ‘연’이 들어가니까 연결지어 외우기 좋았다”며 암기 비법을 전했다.

눈높이에 맞춘 교육에 어르신들은 선의의 경쟁을 하고 서로 모르는 글자를 물어보면서 집에 가서도 복습해 온다고 했다. 
유정숙 반장(한국생활개선부안군연합회 회원)은 “이런 자리가 없으면 까막눈으로 살다 가는데, 한글 배우면서 새로 탄생한 것 같았다”며 “혼자는 어려운데 동료가 있으니까 호기심으로 더 배우게 된다”고 말했다.

또 백영선 교사는 바쁜 농사철에도 한글 공부날이면 열일 제쳐 두고 일바지 입고서 마을회관에 모인다고 어르신들의 열정에 감사한 마음을 전했다.

함석순 할머니(80)는 “여자는 가르치면 집안 망한다는 세상에 살았다”며 “농사짓기 바쁘고 배고프니까 공부는 언감생심이었다”고 말했다.

한글 까막눈…일상생활 불편 초래
백영선 교사는 문해교사로 3년간 일하면서 어르신들이 모국어를 깨우치지 못한 데 마음 속 한이 서려있다고 전했다. 어르신들 고충을 들어보면 버스 탈 때도 목적지를 읽지 못해서 답답하고, 운전기사에게 매번 물어봐야 해서 부끄러움을 느낀다고 했다. 또 은행가서도 자신의 이름 쓸 줄 알고 입·출금할 수 있는 최소한의 한글은 알아야 생활이 좋아질 거 같다고 말했다.
“한 어르신은 어릴 때 학교를 안 보내줘서 매일 울었다고 했어요. 친구들은 보자기에 책 싸서 학교 가는데 자신은 못 가니까 집에서 지푸라기를 허리에 매고 학교 가는 연습을 했대요. 그 어르신은 3년 동안 한글교육에 ‘열공’하시더니 지금은 편지도 잘 쓰세요.”

어르신들의 한글 정복을 향한 대한 염원에 지자체도 뒤따르고 있다. 
부안군 교육청소년과 신명자 주무관은 “어르신들에게 소망의 나무 교재와 색연필, 공책 등의 학습꾸러미를 지원하고, 현장을 방문해 어르신들의 고충을 듣고 있다”며 “전라북도에서는 자체적으로 어르신에 맞춘 문해교재를 제작해 오는 24일 발행해 14개 시군 교육생들에게 배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신 주무관은 도의 자체교재는 군산, 고창, 부안에서 활동하는 문해교사들이 직접 참여하고 검수하면서 공동집필에 나섰다고 덧붙였다.

 

▲ 백영선 문해교사

“겨울방학에도 한글공부 기대” 

문해교사로 3년간 일하면서 아쉬운점은 성인문해교육사업 기간이 3~12월 진행된다는 것이다. 12~2월까지는 겨울방학에 돌입해서 한글교육을 쉰다. 겨울에 어르신들은 가장 한가한데, 방학을 하는 점이 아이러니하다. 한여름에도 더위로 지치니까 여름방학이 있는데, 겨울방학은 더 길어서 그 사이에 배운 걸 잊어버린다. 어르신들도 한글교육이 겨울에도 꾸준히 실시되길 바란다.

농촌 실정에 맞춰 농한기인 겨울을 이용해 교육이 꾸준히 이뤄져야 집중력을 잃지 않고 일취월장하는 시간이 될 것이다. 이같은 애로사항을 살펴 효율적인 예산 운영이 필요함을 현장에서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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