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자매네 반디농장 김영란의 전원일기(44)

"긴 노년이 잉여시간이 돼 
무위도식 하지 않으려면 
끊임없이 자신을 담금질해야..."

78세인 큰언니는 나와 주변 사람들이 다 치매가 오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정작 본인은 치매가 아니라고 도리질한다. 본인도 치매가 아니길 바라겠지만 스스로 컨트롤이 안 되는 몸과 마음이 아득할지도 모르겠다.

친구와 치매 이야기를 하다가 보니, 친구 시어머니는 90세가 넘었고, 치매 진단을 받아서 집으로 도우미가 와서 집안 살림도 돕고 대화도 해주는 제도가 있다고 말한다. 역시 병은 널리 알려야 한다더니 몰랐던 제도를 알게 됐다. 큰언니의 치매가 더 심각해지기 전에 미리 대비하려고 나는 요즘 생각이 많아지고 있다.

큰언니에게 외아들 조카가 있지만 늦은 결혼에 이제 돌이 된 아들과 연년생인 딸 아빠가 돼 육아만 해도 정신이 없는 처지라서, 큰언니가 치매가 온다면 정신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감당할 여유가 없을게 뻔하다. 조카는 고3때 엄마가 쓰러져 2년이나 병원에 입원해 인생의 나침반이 크게 바뀐 힘든 경험이 있었기에, 행복한 새출발 앞에 엄마의 치매가또 발목을 잡을까봐 걱정이 태산이다. 이런 처지를 잘 알고, 가장 가까운 친척인 나는 내가 큰언니의 보호자가 돼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불길한(?) 예감이 든다. 

피하고 싶은 현실이지만, 노인 문제는 우리들의 미래 자화상이기도 하다. 10년 전에 돌아가신 엄마의 말년을 큰언니가 많이 감당했기에 그 빚갚음을 이번에는 내가 해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어깨 무거운 중압감이 밀려온다. 100세 시대는 노인이 노인을 부양해야 하는 재앙적 사회문제가 대두될 것 같다.

현재 치매환자를 돌보는 친구 왈 “치매는 환자 본인은 행복하고, 옆에 있는 사람은 몹시 힘든 병”이라고 말한다. 암은 본인도 힘들고 옆사람도 힘들지만, 치매는 먹는 것도 잘 먹고, 잘 자기도 해서, 본인은 세상과 자신을 잊고 행복한 상태라고 한다. 그래서 장기전이 될 가능성이 많아서 ‘긴 병에 효자 없다’는 말을 듣게 하는 가장 힘든 노인성 질환에 속한다고 한다. 

내 곁의 두 노인, 80세에 동해안 해파랑길 대장정에 나선 마중물 언니와 78세 큰언니를 비교해 보면, 2살이나 적은 큰언니는 벌써 치매가 진행 중이고, 마중물 언니는 몸도 마음도 여전히 청년이다.

면면을 들여다보면 생활습관에 큰 차이가 있다. 마중물 언니는 젊은 사람들과 독서모임도 활발히 하고, 신문을 읽고, 젊은 사람들과의 소통을 즐긴다. 매일 규칙적으로 수영을 하고, 뜰을 가꾸는데도 하루 몇 시간씩 노동을 한다. 19살 차이인 나와도 전혀 세대차이를 느끼지 못한다. 오히려 요긴한 생활 정보를 마중물 언니를 통해서 들을 때가 많다.

반면, 큰언니는 사람들과의 소통을 거의 하지 않고, 신문은 보지만 쓰지는 않는다. 운동도 하지 않고, 건강을 위한 식사가 아닌 편식을 한다. 대화가 한정적이고, 시대를 따라가려는 노력도 하지 않는다.
두 언니의 생활 태도가 확연히 다른 것을 보고, 나도 노년을 어떻게 관리해야 할지 방향을 잡게 된다. 긴 노년의 시간들이 잉여의 시간이 돼 무위도식 하지 않으려면 끊임없이 자신을 담금질해야 할 것이다. 나도 살아있는 동안 부지런한 농부로 살고, 거기에 그림을 끼어 넣어서 내 삶을 나태하지 않게 채색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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