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류미월의 문학향기 따라 마을 따라 - 전남 해남

▲ 대흥사 가을전경

일출·일몰이 유난히 아름다운 
해남은 한반도의 시작점이자
시간을 관통한 시향이 머무는 곳...

한반도 최남단에 위치한 해남은 탁 트인 바다와 산자락이 그림처럼 아름답다. 우수영관광지 내 명량대첩기념공원에는 이순신 장군의 시퍼런 기운이 살아 숨 쉬고, 스카이워크가 불빛을 발하는 저녁의 풍경은 한 장의 예쁜 카드 같다. 

땅끝전망대에 오르면 가슴이 뻥 뚫린다. 병풍처럼 드리운 달마산 자락에 위치한 미황사 앞에 서면 황홀함에 빠져들고, 드넓은 두륜산 자락을 품고 있는 대흥사에 가면 피안(彼岸)의 세계에 들어선 듯 마음이 편해진다. 땅끝순례문학관에는 해남에서 시학의 뿌리를 내린 조선시대부터 1980년대 저항시인의 작품이 전시돼 있다. 고산 윤선도 유적지인 녹우당에는 조선시대 국문학의 아버지 격인 윤선도의 작품이 전시돼 있고 고택인 녹우당 돌담길에서는 600년 된 은행나무도 만날 수 있다.  

짜릿한 전율이 느껴지는 
울돌목 스카이워크~땅끝전망대

해남에서 개최된 심호 이동주 문학제에 필자의 시조집이 작품상으로 선정돼 해남을 찾았다. 행사를 마치고 해남의 별미인 닭고기 회가 나오는 닭고기 코스요리를 처음 맛보고, 저녁에는 우수영관광지를 찾았다. 

▲ 울돌목 스카이워크

이순신 장군이 활약했던 세계 5대 해전에 들어가는 명량대첩의 격전지였던 울돌목. 조류가 센 곳에 아슬아슬하게 스카이워크가 있다. 스카이워크는 야경이 백미다. 바로 앞 진도대교와 어우러져 남도의 멋을 뿜는다. 경치 좋은 화원면의 한 펜션에서 묵고 다음 날 아침 땅끝마을 전망대로 가는 길가에 가을빛에 빛나는 은빛 억새가 살랑살랑 여심을 흔든다. 황금벌판에 검게 익어가는 흑미 벼도 이색적이다. 

▲ 땅끝전망대

땅끝전망대에 오르니 탁 트인 남해가 출렁인다. 모노레일을 타고 전망대까지 편하게 가도 된다. 전망대에는 땅끝에서 전하는 빨간색 희망의 느린 우체통이 있다. 그리운 이를 떠올리며 편지를 쓰고 싶어지는 곳이다.

남쪽의 금강 달마산 미황사
엄마 품 같은 두륜산 대흥사

대흥사에 가을이 드니 산사의 고요함이 더 깊어진다. 대흥사는 한국의 산속 승원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천년고찰이다. 대흥사 일지암에 기거하면서 다도와 우리 차(茶)를 정립하고 차에 대해 송(頌) 형식으로 지은 책 ‘동다송’(東茶頌)을 지은 초의스님과 임진왜란 때 승병을 일으킨 서산대사를 모신 표충사(사액사당)로 인해 대흥사는 차와 충(忠)을 상징하는 우리나라 대표 사찰이다. 

천년고찰 대흥사는 일주문으로 가는 숲길에 동백 숲길, 물소리길 등이 잘 가꿔져 있어 걷기에 좋다. 해탈문을 지나 경내에 들어서면 하늘과 맞닿은 산등성이가 마치 누워있는 부처님을 닮은 듯 부드럽고 넉넉한 품이 엄마 품처럼 따스함을 주고 좋은 기운이 전해진다.
미황사는 남해의 금강산이라 불리는 달마산 중턱에 있는 사찰로 우리나라 사찰 가운데 가장 남쪽에 위치하며, 대웅보전과 뒤편으로 병풍처럼 둘러싼 달마산 기암절벽의 풍경이 으뜸인 곳이다. 한국불교가 인도에서 바다를 건너왔다는 남방전래설이 전하는 곳. 

도솔암은 달마산 정상 바위틈에 절묘하게 석축을 쌓아 올려 평평하게 만든 곳에 자리 잡은 암자다. 산 정상에 놓인 오솔길을 20분 걸어서 만나는 사찰은 한 번 찾는 이는 또 찾게 되는 주변 절경에 탄성이 나온다. 미황사에서 달마산 산세와 다도해의 절경을 보며 걷는 한국의 산티아고라 불리는 달마고도 둘레길은 남도를 대표하는 명품 길이다.

삐거덕 어간문 열며 세 부처님 나오시겠다/무릎은 좀 어떠신지요 서로 살펴도 보고/나란히 돌계단에 앉아 달빛 나눠 쬐시겠다//주춧돌 속 게와 거북 자하루(紫霞樓) 및 소 그림자/다 닳은 발 움직여 그 옆에들 와 앉겠다/저 아래 파도도 달려와 야단법석 나겠다
                                                -강현덕 시인 <미황사> 중 일부  

이동주와 윤선도의 시향이... 
책 읽기 좋은 가을엔 해남 땅끝순례문학관을 찾아가 보자. 한옥과 양옥이 절충된 독특한 외관의 이곳에서는 해남에서 태어났거나 연고가 있어 머물렀던 많은 문인들의 생애와 다양한 문학세계 등을 살펴볼 수 있다. 

해남 출신 이동주 시인(1920~1979)은 영원한 낭만적 방랑시인이다. 그의 향토성 짙은 서정시를 읽다 보면 마음 한편에 파도가 일렁이듯 파문이 번져온다. 다작을 하지 않은 그의 작품은 더 천천히 음미하게 된다. 대표작으로 <강강술래> <혼야> <새댁>이 널리 애송되고 있다. 올해 그를 기리는 제11회 심호 이동주문학제가 해남문화예술회관에서 열렸다.

여울에 몰린 은어 떼/삐비 꽃 손들이 둘레를 짜면/달무리가 비잉빙 돈다
가아응 가아응 수우워얼래에/목을 빼면 설움이 솟고/백장미 밭에 공작이 취했다
뛰자뛰자 뛰어나 보자/강강술래
                          -심호 이동주  <강강술래> 중 일부

고산 윤선도(1587~1671)는 조선 중기의 시조시인이자 문신이다. 정철, 박인로와 더불어 조선시대 삼대 가인(歌人)으로 불린다. 그러나 이들과 달리 가사(歌辭)는 없고 단가와 시조 75수를 창작한 점이 특이하다. 

▲ 윤선도 유적지

인조 때 병과에 급제해서 예조정랑과 사헌부 지평을 지내다 파직 후 병자호란 때 조상의 은덕으로 산 깊고 물이 맑아 아름다운 섬인 보길도에 은거하며 세연정을 지어놓고 마음껏 풍류를 즐겼다. 보길도를 배경으로 어부사시사(漁父四時詞)를 지었다.

수국(水國)에 가을이 드니 고기마다 살쪄 있다/닻 들어라 닻 들어라/
만경징파(萬頃澄波)에 실컷 놀아보자/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인간 세상을 돌아보니 멀수록 더욱 좋다
                  -윤선도 <어부사시사> 중 추사(秋詞) 2편 해석

윤선도의 어부사시사는 계절별 10수씩 총 40수로 된 연시조다. 풍류와 자연친화적 시각으로 자연 속에서 한가롭게 살아가는 어부의 흥취를 시간의 흐름에 따라 시상을 전개했으며, 대구법과 은유, 반복법을 써서 작품의 흥을 돋우고 사실감을 더했다.
해남에는 한눈에 반한 해남쌀과 배추, 고구마가 유명하다. 김장철을 앞둔 들판에 탐스러운 배추가 속을 단단하게 살찌운다. 고구마 모양의 빵도 명물이다. 해남공룡박물관과 해안 산책로인 해월루, 포레스트수목원, 오시아노관광단지 등 일출과 일몰이 유난히 아름다운 해남은 한반도의 시작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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