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광희 칼럼 - 누리백경(百景)(206)

‘참을 수가 없도록/이 가슴이 아파도//여자이기 때문에/말 한마디 못하고 //헤아릴 수 없는 설움/혼자 지닌 채//고달픈 인생길을 허덕이면서//아, 참아야 한다기에/눈물로 보냅니다//여자의 일생’(1968, 한산도 작사/백영호 작곡/이미자 노래)

이 땅에 사는 여인들의 말할 수 없는 한과 눈물이 응축돼 있는 이미자의 노래 <여자의 일생>이다. ‘여자’로, ‘여인’으로 살아온 여성들의 고달픈 인생길은, 유교윤리가 지배하던 조선시대의 전통가치관에 그 바탕을 두고 있다.

남성을 귀히 여기고, 여성을 천대시 하던 ‘남존여비사상’이다. 남자는 하늘, 여자는 땅이라는… 이 가치관은 곧 평생 여성들을 옥죄는 족쇄가 됐다. 대표적인게 삼종지도(三從之道), 칠거지악(七去之惡), 삼불거(三不去)였다.

먼저 ‘삼종지도’는, 여자가 이 세상에 태어나 따라야 할 세 가지 도리다.
즉, 어려서는 어버이께 순종하고, 시집가서는 남편에게 순종하며, 남편이 죽은 뒤에는 아들을 따른다는 것이다.

‘칠거지악’은, 아내를 집에서 내쫓는 이유가 됐던 일곱 가지 금기조항이다.
첫째, 시부모에게 순종하지 않으며, 둘째, 아들을 낳지 못하며, 셋째, 음탕·부정하며, 넷째, 질투가 심하고, 다섯째, 몸에 나쁜 병이 있으며, 여섯째, 말이 많고, 마지막 일곱째는 도둑질을 했을 경우다.
‘삼불거’는, 위에 든 ‘칠거지악’에 해당하는 죄를 지었어도 내쫓지 못하는 경우다. 그 첫째는, 내쫓아도 의지할 곳이 없는 경우, 둘째는 함께 부모의 3년상을 치른 경우, 셋째는, 전에는 가난했으나 혼인한 후 부자가 된 경우다. 그래도 이 ‘삼불거’에서는 사뭇 인간적인 배려심이 진하게 묻어나온다.

# 최근 서울시 성평등활동지원센터에서 시민들을 대상으로 ‘이제는 바꿔야 할 의례문화’라는 주제로 체험사례 에세이를 공모했다. 그 응모사례들의 상당수가 아직껏 우리사회에 남아있는 남녀 성차별에 관한 것들이어서 주목된다.

(사례·1)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장례식장에서 부고를 작성하러 ‘아드님’을 오라고 했다. 딸만 넷이라고 하니 그러면 사위를 보내라고 했다. 모두 결혼을 안해서 사위가 없다, 큰 언니가 상주노릇을 할 것이라고 하니, ‘그럼 곤란하다’고 했다.
상주는 남자조카로 세우는 게 모양새가 좋다고 했다.(김◯◯, 여 40세)

(사례·2)할머니 초상 때, 영정사진을 남동생에게 들라고 했다. 동생이, 손위 누나가 있는데… 하자 집안어른들이 재차 손주가 들어야 한다고 했다. 할머니 생전에 할머니와 가장 오래 함께 생활한 나는 여자라는 이유로 안된다고 했다.(양××, 여 33세)

위의 사례에서 보듯이 아직도 여전히 ‘남존여비’ 가치규범의 잔재가 우리사회에 깊게 뿌리박혀 있음을 알 수 있다.
과거 우리 사회에서 여성은 교육의 기회와 재산상속의 대상에서 철저하게 배제돼 왔다. 이해당사자들 역시 아직도 그것을 미풍양속처럼 당연한 가치규범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러나 ‘차이’와 ‘차별’은 엄연히 다른 가치규범이다. 뒤늦게나마 3년 전인 2018년 양성평등법이 국회를 통과하고, 여성의 날(3월8일)이 공식 법정기념일로 지정된 이유다. 그냥 여자, 여인으로서가 아니라 존중받는 여성으로서 살아가야 할 충분한 이유가 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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