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자매네 반디농장 김영란의 전원일기(42)

"포기한 꿈이 요동쳤다.
마중물 언니의 도전은 
요즘 나를 흥분케 한다."

네 번째 스무 살을 맞은 마중물 언니가 동해안 해파랑길 770㎞ 대장정을 걸으려고 떠나셨다. 동해안 최북단 통일전망대에서 부산까지의 해파랑길. 지금 며칠째 걸으면서 일정을 간간히 알려 오시는데, 떠나기 전부터 내가 더 가슴 뛰고 설레서 난리법석을 떨었다. 

한꺼번에 다 걷는 것은 무리라서 몇 번으로 나눠 걸어서 내년까지는 종주계획을 세웠는데, 이 멋진 계획을 실행하시려는 80세 마중물 언니보다 내가 더 흥분하고, 신이 나서 마음은 계속 동행취재를 하고 있다. 함께 하고픈 마음이 간절했으나, 핑계가 줄줄이 나서서 몸과 마음을 묶으니 대리만족으로 매일 마중물 언니와 마음이 걷고 있다.

어제는 속초에 들어섰다는 연락을 해오셨다. 실은 내가 “지금 어디를 걷고, 무엇을 하며, 무엇을 드셨는지?” 묻는다. 내 마음이 함께 하고 있다고 응원도 하고, 실제로 내 마음이 그곳에 가있기도 하다.
하늘도, 바람도 좋은 이 계절에 살아있어서, 건강해서 누릴 수 있는 축복을 만끽하며 “80세, 이제부터 새로운 시작이야~”를 외치며 길을 떠난 나의 꽃미녀 친구 마중물 언니를 무한 존경한다.

유복한 환경에서 남부러울 것 없는 경제적 여유까지 누렸던 마중물 언니가 남편의 사업 실패 후, 결연히 떨치고 일어나서 ‘무’(無)에서 ‘유’(有)를 만들어내시고, 엄마로서, 아내로서 소임을 다하고 난 후 홀로 된 인생 후반, 몇 년 전 옆지기 남편이 소천하신 후 한참을 우울증과 무기력증에 시달리셨다고 한다. 

어깨의 짐이었던 남편이었지만 삶을 지탱해주는 이유이기도 했었기에, 돌아가시자 휘청거리며 한참을 힘들어 하다가 지난해 떨치고 일어나셨다. 이제 오로지 혼자 된 삶을 잘 살아내야 하는 과제 앞에서 새싹처럼 돋아나는 삶의 의지를 북돋우며 다시 삶을 추스르기 시작한 것이다.

나는 꽃 이야기로 하루 종일도 수다를 떨 수 있는 사이라, 수시로 드나들며 정원에 다시 미쳐보라고 부채질을 해댔다. 치유의 방법 중 가장 효과적인 정원 가꾸기를 통해 새살이 돋고, 희망이 생기고, 다시 잘 살아야 할 이유를 찾게 되고, 그리고 자연처럼 우리도 미련 없이 갈 때 가면 되는 것이라고...
마중물 언니는 수영을 시작했고, 근육을 키우고, 마음 맷집도 만드시더니 드디어 ‘80세 꿈 꾸다’를 외치며 해파랑길 대장정에 도전하신 거다.

이미 무릎관절 연골이 다 닳아서 몇 년 전에 연골주사를 맞고 절뚝거리며 걷는 내가, 죽기 전에 하고 싶었던 버킷리스트 중 하나였던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고 싶었던 꿈을 포기하고 있었는데, 마중물 언니가 해파랑길에 도전하자 내 안에서 포기한 꿈이 요동을 쳤다. 

56세 때 68세 신체지수라고 진단받았던 내 몸 때문에 몇 년 동안 우울증이 왔었는데, ‘내 몸 수리하고 단련해서 나도 도전해 봐봐~’라고 내가 나에게 바람을 불어넣는다. 
내게 선한 영향력을 끼친 마중물 언니의 도전은 요즘 나를 설레고 흥분케 한다. 인생 후반전, 다시 홀로서기 해야 할 때, 고요히 잦아들며 선한 영향력을 끼치며, 나를 잘 갈무리하고, 큰나무가 돼 큰 그늘을 만들어 너른 쉼터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한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혼자일 때 더 강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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