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광희 칼럼 - 누리백경(百景)(201)

추석이 한이레 뒤다. 너나 할 것 없이 사는 일에 묻혀서 절기 챙기는 일이 점점 어설퍼진다. 그래도 연중 으뜸명절로 치는 추석이니, 이땅 거의 모든 이의 가슴 가슴마다에는 휘영청 눈부신 고향의 만월 보름달이 둥두렷이 떠오를 것이다.

‘추석 전날 달밤에 마루에 앉아 / 온 식구가 모여서 송편 빚을 때 / 그 속에 푸른 풋콩 말아 넣으면 / 휘영청 달빛은 더 밝아오고 / 뒷산에서 노루들이 좋아 울었네.// “저 달빛엔 꽃가지도 휘이겠구나”/ 달 보시고 어머니가 한마디 하면 / 대수풀에 올빼미도 덩달아 웃고 / 달님도 소리내어 깔깔거렸네 / 달님도 소리내어 깔깔거렸네.’
-서정주 시 < 추석 전날 달밤에 송편 빚을 때> 전문.

추석 전날 빚는 송편은 반달송편이다. 옛 농경사회에서는 밤하늘 달 모양의 변화를 보면서 때를 가늠해 농사를 지었다. 절기다.
송편도 그 달모양을 본떴다. 풋콩 등의 소를 넣기 전에는 한 손바닥 안에 들어오는 밀가루 반죽이 둥그런 보름 만월달 모양이었다가, 소를 넣고 접으면 도톰한 반달모양이 된다. 보름달에서 반달로 두 개의 달이 번갈아 송편으로 뜨고 진다.

이때 오랜만에 만난 피붙이 정인들이 덕담과 함께 주고받는 술잔에는, 저 중국 당나라의 시선 ‘이백의 달’들이 환하게 뜬다. -하늘의 달, 술잔에 뜬 달, 호수에 비친 달, 마음에 뜬 달, 그리고 님의 눈 속에 뜬 달.

# 추석은 글자 그대로 가을 저녁, 더 나아가서는 가을 달빛이 유난히 밝은 좋은 명절의 의미를 갖고 있다. 가배, 가위, 한가위, 중추절, 중추가절로도 불린다.
예전 중국인들이 음력 팔월 달빛이 가장 밝다 해 월석(月夕)이라 했는데, 이 말에 중추(仲秋)를 합해 축약시킨 말로 ‘추석’이라 했다는 시원설도 전한다.

조선시대에는 설날, 한식, 단오와 더불어 추석을 4대 명절의 하나로 꼽았다. 일종의 서양의 추수감사절과 같은 가을걷이 속절이었다. 지금이야 가족차례와 성묘가 다지만.

‘너도 나도/ 집을 향한 그리움으로/둥근달이 되는 한가위//우리가 서로를 바라보는 눈길이/달빛처럼 순하고 부드럽기를/우리의 삶이/욕심의 어둠을 걷어내/좀더 환해지기를/모난 미움과 편견을 버리고/좀더 둥글어지기를/두 손 모아 기도하려니//하늘보다 내 마음에 /고운 달이 먼저 뜹니다/한가위 달을 마음에 걸어두고/당신도 내내 행복하세요,둥글게!’
-이해인 시 <달빛기도-한가위에> 전문.

옛말에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란 말이 있다. 수확의 풍요로움에 빗댄 희망이 담긴 말이다. ‘5월 농부 8월 신선’이란 말도 있지만, 어디 그렇게 우리의 삶이 녹록하던가.
끝이 안보이는 ‘비대면’의 일상 속에서 “살기 힘들어 죽겠어”를 입에 달고 살면서도, 그래도 한가위 날 만큼은 만월 보름달 같은 넉넉한 가슴으로 서로를 따뜻하게 보듬을 수 있기를 희망한다.
그리하여 한 곳을 같이 바라보며 함께 나아갈 수 있기를 또한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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