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명견 교수의 재미있고 유익한 옷 이야기(112)

"타의로 뒤집어쓰지 않고
나를 아낌없이 표현하는
패션으로 평생을 즐기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

히잡(hijab)을 쓴 엄마와 어린 사내아이가 어설프게 웃으며 차창 밖으로 손을 흔드는 모습이 꿈인 양, 한편의 드라마인 양 코끝을 자극한다. 이슬람 무장단체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을 장악하자 살길을 찾아 이 나라에까지 날아온 어느 모자의 그림이다. 세계의 언론은 극적으로 이 많은 생명을 구출한 ‘대한민국의 힘’을 대서특필로 칭찬하고 있다. 한 명도 구출해내지 못해 정치적 위기까지 몰리고 있는 일본을 보며 한국이 자랑스럽기까지 하지만, 평생 나라 잃은 서러움을 안은 채 불안한 미래를 염려하고 있을 이들이 안쓰럽다. 그러나 여성도 인간답게, 어린이들도 생명이 보호되고 자유스럽게 살아갈 수 있는 곳에 왔다는 것만으로도 큰 축복이 아닐 수 없어 보인다.

탈레반은 아프가니스탄 남부의 파슈툰족에 바탕을 둔 부족단체에서 출발한 반군 테러조직이다. 이들은 1997년 엄격한 이슬람 규율로 무장하고 전국을 빠른 속도로 장악했다. 그러나 정권을 잡자 남녀차별 정책을 펴 세계로부터 강한 비판을 받았다. 특히 국제사회를 경악하게 한 것은 여성의 교육을 전면 금지하고 집안에 감금시킨 ‘율법’이었다. 부르카(burqa) 착용을 의무화한 것은 물론, 여성들의 사회활동을 틀어막고 심지어 집 밖에 여성이 혼자서, 혹은 여성들끼리 외출하는 것도 금했다.

남성이 특정 여성을 간통했다고 지목하기만 해도 여성을 돌로 때려죽이게 하는 끔찍한 사형제도도 국제사회의 지탄을 받았다. 탈레반 조직원들과의 강제 결혼이라는 인권 유린도 서슴지 않았다. 탈레반 이전의 아프가니스탄 여성들은 남성들과 동등한 교육을 받고 사회활동도 활발하게 벌였었다. 1970년대만 해도 여성들이 미니스커트를 입고 거리를 활보했던 곳이었다.

한때 쫓겨났다가 우여곡절 끝에 탈레반은 다시 아프가니스탄을 접수했다. 그들은 8월 17일 첫 기자회견에서 여성 인권을 존중하겠다고 선언했지만, 그날 북부 타하르주에선 한 여성이 부르카를 입지 않았다는 이유로 탈레반의 총에 맞아 숨졌다. 

부르카는 여성의 얼굴이나 피부를 완전히 가리는 이슬람 전통에서 비롯된 옷 가운데 하나다. 아프가니스탄을 비롯한 아라비아반도 일부와 베두인족 일부, 인도와 파키스탄의 일부 여성들이 입는다. 부르카 외에도 노출정도가 다른 여러 가지 옷들이 있다. 니캅(niqab)은 부르카와 비슷하지만 눈만은 가리지 않고, 차도르(chador)는 얼굴과 손을 제외한 신체를 가리고, 히잡은 머리와 목을 가리는 옷이다. 부르카는 얼굴은 물론 눈 부위까지 망사로 가리고 손에 장갑을 끼어 신체노출을 철저히 막는 옷이다. 이유를 막론하고 신체 일부도 내보여서는 안 된다는 것도, 어떤 옷만 입어야 된다는 것도, 아주 수준 낮은, 말이 안 되는 짓이다.

쏟아져 나오는 아프가니스탄 난민들이 세계적으로 골칫거리가 되고 있다. 우리 정부의 보호아래 이곳까지 온 ‘특별기여자’들 만이라도, 우리국민의 따뜻한 배려 속에 새로운 출발을 했으면 좋겠다. 특별히 인권 없이 서러움을 받던 여성들이 부르카는 물론 어떤 것도 타의로 뒤집어쓰지 않고 나를 아낌없이 표현하는 패션으로 평생을 즐기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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