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철 충남연구원 사회통합연구실장

"농민들은 잡다한
지원 사업을 없애고
농민들에게 1/n로 나눠주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냥 하는 말이 결코 아니다."

▲ 박경철 충남연구원 사회통합연구실장

최근 흥미로운 연구보고서가 나왔다. 더미래연구소에서 나온 ‘농가지원 재정, 조세지출의 농민기본소득으로의 전환에 관한 정책보고서’라는 제목의 보고서이다. 작성자는 김기식 전 국회의원이다. 그는 오랫동안 참여연대 등에서 재벌 감시와 금융개혁 등을 위해 노력한 분이다.

농업과 그리 관계가 없을 것 같은 분이 농업재정 문제와 농민기본소득에 관해 연구했다는 사실은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보고서를 보니 흥미뿐만 아니라 곱씹을 만한 내용이 많았다. 농업계 경력이 없는 것이 오히려 농업문제를 더 객관적으로 보고 분석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보고서에서 김 전 의원은 농가에 지원하는 각종 재정과 보조금, 조세지출과 조세감면을 분석했다. 그 결과 현재의 농가소득 지원은 형평성과 효율성 차원에서 문제가 많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현재의 농가지원정책은 농촌사회가 직면한 인구감소와 불평등 문제 등을 해결할 수 없다는 점을 지적했다. 따라서 그는 정부의 재정지출과 조세지출 제도를 통폐합해 농민 개인당 월 50만 원의 기본소득을 지급하자는 의견을 제시했다. 이럴 경우 연간 13조8천억 원이 소요되는데 이 비용은 기존 농민 소득지원 재정지출 통합 흡수(약 3조8천억 원), 조세지출의 재정지출 전환(약 6조2천억 원), 기타 재정 절감과 조세지출 전환 세수(약 1조 원) 등으로 11조 원을 만들고 그래도 부족한 예산은 예산 증가분과 일부 추가 세출 조정을 통해 충당하면 가능하다는 의견이다.

김 전 의원의 주장은 가히 획기적이기는 하나 농정여건을 보면 쉽지 않다. 예를 들어 현재 실시되고 있는 공익직불제, 농업재해보험, 농가유류지원 등을 전부 통합해 농민에게 똑같이 나눠주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도 않고 많은 논쟁과 저항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김 전 의원의 주장이 의미 없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농업의 외부자의 눈에 보기에도 현재의 농가지원정책은 모순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농업예산이 소수에 편중되어 있다는 점, 대부분의 농정예산이 간접방식으로 지원되기 때문에 농민에게 들어오는 소득은 터무니없이 낮다는 점은 분명 문제가 있다. 이 때문에 농민들은 잡다한 지원 사업을 없애고 농민들에게 1/n로 나눠주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냥 하는 말이 결코 아니다.

2015년에 농민기본소득에 관한 연구를 하면서 농민들과 함께 농민기본소득 상상워크숍을 진행한 적이 있다. 주제는 ‘농민인 나에게 매월 50만 원의 기본소득이 주어진다면?’이었다. 즉, 농민에게 매월 50만 원의 기본소득이 주어진다고 가정했을 때 농민에게 펼쳐질 미래의 모습을 아무런 제약조건 없이 마음껏 상상해 보는 워크숍이었다. 참가자들은 농민에게 아무런 조건이 없이 월 50만 원이 주어진다면 경제적 해방, 공동체 활동, 농업생산 활동, 사생활, 자유로운 삶 등에 관해 다양한 삶을 꿈꾸었다.

2019년에 전남 해남에서 시작된 농민수당은 마른 섶에 불이 붙듯 전국으로 확산됐다. 2022년이 되면 농촌지역 광역자치단체 모두에서 농(어)민수당제가 시행될 예정이다.
 이러한 결과를 처음부터 예상한 사람을 없을 것이다. 대선정국을 맞이하면서 기본소득이 뜨거운 쟁점이 되었고 농촌현장에서는 “여성농민에게도 농민수당!”을 외치고 있다. 농민 모두에게 매월 50만 원의 기본소득은 꿈같은 얘기겠지만 모두가 함께 꾸는 꿈은 언젠가는 이뤄진다. 우리는 현실을 직시해야 하지만 꿈이 없는 현실은 사막에 이는 모래바람처럼 삭막할 것이다.

저작권자 © 농촌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