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동 시인·칼럼니스트

"농촌 활력이 깊은 수렁으로 
가라앉고 있다. 
청렴을 유지한다는 빌미로 
더 이상 농민이 좌절하지 않도록 
정부나 정치권은 특단의 조치를 
마련해야 한다. 
농축산물 선물가액 상향은 
농민 생존 위한 최소한의 조치다."

▲ 김훈동 시인·칼럼니스트

추석을 앞두고 태풍과 가을장마가 이어졌다. 장기화된 코로나19에 결실의 계절이지만 농업인에게 시름만 안겨준다. 20여 일 지나면 대목이다. 대목은 설이나 추석 등 명절을 앞둔 가장 긴요한 시기를 지칭한다. 농산물이 가장 많이 팔려 다소나마 시름을 덜 수 있는 모처럼의 기회다. 40%가량이 명절대목에 소비된다. 하지만 청탁금지법으로 판로가 힘겹다. 농업인단체들이 추석 선물가액 상향 요구 목소리를 높이는 이유다. 대목이 다가오지만 농업인은 애써 가꾼 농산물판로에 신음한다. 지속가능한 농업을 영위토록 지원하는 게 국가의 책무다. 대목 때만이라도 농업인을 도와줘야 한다. 안정적인 수요처 확보는 농업인 입장에서는 절체절명한 일이다. 국민권익위원회가 청탁금지법 시행 이후 두 차례에 걸쳐 농업인의 고통 경감을 위해 농축산물 선물가액을 상향 조정한 바 있다. 선물 매출액이 증가해 상향조정 효과가 컸다.   

일반 국민이 받는 선물은 청탁금지법에 적용되지 않는다. 그런데 정부가 ‘청렴 선물권고안’을 만들어 민간영역까지 확대하려는 움직임까지 보여 농업인들을 불안하게 했다. 청탁금지법이 민간에도 적용된다는 오해로 농산물 소비위축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전현희 국민권익위원장이 “올 추석에는 청렴 선물권고안을 도입하지 않겠다.”고 밝혀 그나마 다행이다. 하지만 올 추석에는 도입하지 않고 앞으로 국민 의견을 더 수렴하겠다는 여운을 뒀다. 

코로나19 델타변이 확산으로 4차 대유행이다. 올 추석에도 고향 방문이 어려워질 듯하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농촌마을 어귀에 ‘불효자는 옵니다’라는 플래카드가 걸려 가급적 도시에 사는 가족들이 상대적으로 청정한 농촌으로 오지 않길 바랄 수도 있기에 그렇다. 대면할 수 없어 좋은 선물을 보내려는 트렌드가 형성돼 농축산물 선물세트 소비가 촉진될 수 있다. 소중한 가족과 친지, 지인들에게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라는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의미가 청탁금지법으로 점점 퇴색되는 현실이 안타깝다. 정성껏 기른 우리 농축산물을 주고받는 것은 선물이라기보다 따뜻한 정을 나누는 우리 고유의 전통문화가 사라지는 듯해서다. 

농업인들도 부정부패를 척결하고 청렴한 사회를 바란다. 일 년 내내 예외를 인정해 달라는 요구가 아니다. 대목만이라도 농축산물 선물가액 범위를 20만 원으로 상향해 달라는 최소한의 호소다. 농촌출신 국회의원들은 청탁금지법으로 농산물 소비위축의 우려가 현실화되고 있음을 인지하고 있을 듯하다. 반사이익은 국내산 농축산물 판매가 줄어들고 수입 농축산물이 꿰차고 있음도 시장을 둘러보면 알 수 있지 않은가. 청탁금지법의 입법 취지를 지키면서 시행령 개정을 통해 선물적용대상에 국내산 농축산물 가액범위 20만 원을 상시 유지할 수 있도록 해야 마땅하다.

지금의 농촌현실을 보면 그 해답이 나온다. 농업인구 감소, 도시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농가소득, 고령화 심화로 노동력 부족, 영농자재비와 인건비 상승, 해마다 겪는 자연재해와 가축전염병 등 나열하기 버거울 정도로 농업인들은 힘든 상황이다. 농촌 활력이 깊은 수렁으로 가라앉고 있다. 청렴을 유지한다는 빌미로 더 이상 농업인들이 좌절하지 않도록 정부나 정치권은 특단의 조치를 마련해야 한다. 농축산물 선물가액을 상향하는 것은 농업인의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조치다.

생명산업을 일구는 농업인들에게 위안과 활력을 불어넣어주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농사일로 지친 농업인들에게 수확의 기쁨을 누릴 수 있도록 실기(失機)하지 않고 추석 선물가액을 20만 원으로 상향해 농업인들의 기운을 북돋워주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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