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자매네 반디농장 김영란의 전원일기(34)

"말의 불순물을 거르는
체를 옆구리에 하나씩
장착하면 좋겠다..."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
옛날에 천 냥이었으면 지금 돈으로 1억 원이 넘지 않을까 가늠해 본다. 말로서 이만큼 효과를 본 적이 있었나... 곰곰 생각해봐도 말 잘못해서 후회한 적은 많았어도 말을 잘해서 빚을 갚은 기억은 도무지 떠오르지를 않는다.
말로서 죄를 지은 적도 많았던 것 같다. 주로 뒷담화를 하거나 나를 서운케 한 사람들을 말로라도 뒤에서 분풀이 한 것들이 대부분이나, 내가 공인이었다면 가벼운 입 때문에 많은 파장을 일으켰을지도 모르겠다.

나도 주로 말을 많이 하고, 입이 가벼운 편에 속해서, 과묵해지는 것이 희망사항이나 거의 지키지를 못했다. 반짝반짝 재치 있는 말을 하는 사람들을 부러워하고 현란한 말과 글을 구사하려고 애쓴 날도 있었으나, 나이를 들어가면서 말 많은 사람보다는 말 없는 사람이 더 신뢰가 간다. 말을 하기는 쉽고, 말을 참기는 어려운 것을 스스로 느끼기 때문이다.
‘침묵은 금’ ‘남아일언 중천금’ 등 과묵한 것을 강조하는 속담을 미덕으로 듣고 자랐지만, 요즘처럼 자기표현이 자유로운 시대에는 고리타분해 보이기까지 하는 말들이다. 따뜻한 말은 많을수록 좋고, 쓰레기 같은 말은 하지 않을수록 좋다.

내가 최근에 말에 대해서 곰곰이 되새기게 된 것은 제주도에서 친환경농사를 짓는 사람들 모임 밴드에서 느낀 점 때문이다. 나이 덕에 남편이 회장을 했었는데, 너무 열심히 해서 내가 소매 끈을 잡아당기기 일쑤였다. 희생과 봉사의 개념인 회장 자리라 남들이 기피했지만 누군가는 해야만 하는 자리인지라 맡게 됐는데, 아내 말은 잘 안 듣는 남편이 남의 말은 잘 듣는지라 이 역할을 한 번 하고나니 사회화가 많이 돼서 회장직을 내려놓고 나서는 나도 좋은 평가를 하게 됐다.

한 달에 한 번씩 모여서 공부와 연구를 하는 자생 단체이고, 온라인 밴드에서도 다양한 의견을 올리며 공부와 친목을 도모하는데 가끔씩 말표현이 딱딱해서 불협화음이 생길 때가 있었다. 건설적인 토론까지는 좋은데, 말꼬리가 꼬이면서 감정싸움까지 비화한 적도 보았기에
갈등의 소지가 될 것 같은 말은 서로 하지 말자고 정했다.

얼마 전에 남편이 공적이기도 하고 사적이기도 한, 글 하나를 올렸는데 강직한 충고의 답글이 올라왔다. 남편은 자신에게 반하는 글에 기분이 나쁘다고 나에게 하소연을 하기에 제3자인 내가 보기에는 “맞는 말이지만 표현이 직설적이고 딱딱해 당신이 기분이 좀 나쁘겠다.”고 위로(^^) 하며 남편을 달랬다.

“기분은 안 좋은데 맞는 말이라면 뼈아픈 충고를 되새기는 게 현명하다”고... 나도 제3자니까 성인군자 같은 조언을 했지만, 답글 단 사람의 화법도 부족했다고 지적했다.
남편 마음에 돋은 가시를 빼주면서 나는 말의 중요함을 되새겼다. 말의 온도가 1도만 차이나도 어감이 달라지기에 같은 말도 상처주지 않고 잘 말하는 화법을 서로 다듬어야겠다.

사람 사는 세상, 적절히 향기로운 말을 잘 써서 말로서 행복하면 좋은데, 그 쉬운 말이 비수가 되는 일이 허다하니 말의 불순물을 거르는 체를 옆구리에 하나씩 장착하면 좋겠다. 말 한마디에 천 냥 빚을 갚을 수 있는 말하기를 나도 이제부터라도 연습해 예쁜 꽃 같은 말을 많이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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