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자수필- 귀농아지매 장정해 씨의 추억은 방울방울

"붉고 화려한 능소화가
담 너머로 목을 뺀 채
바깥을 기웃거린다..."

축 늘어진 호박잎 줄기 사이로 권태가 내려앉고 한여름 절규하듯 우는 매미소리가 오히려 적막하다. 소낙비가 한 차례 지나간 자리, 마당 가장자리 보랏빛 방아꽃이 수직으로 피어오른다. 
오늘은 마을 어르신들을 뵙고 후반기에 나온 경로당 운영비를 어떻게 쓸 것인가를 의논하러 가야 하는데, 켜놓은 TV에서 도쿄올림픽 소식이 쏟아진다. 코로나19에 관중도 없이 진행되는 올림픽. 금메달을 따지 못하면 보도될 일이 없었던 예전과는 달리 요즘은 스포츠 정신이 살아있는 팀이 언론의 주목을 받는다. 열심히 준비한 선수들의 피땀과 눈물의 비하인드 스토리가 메달보다 더 관중을 감동시킨다. 

‘아름다운 꼴찌’란 이름이 붙은 럭비팀이나 유도의 조구함 선수는 은메달에 머물렀으나 승자의 손을 번쩍 들어준 페어플레이 정신에 관중의 박수세례를 받았다. 여자배구 김연경 선수를 세계가 극찬함도 메달만 염두에 둔 칭찬은 아니었다. 

브라질과의 준결승전에서 김연경 선수는 그녀의 절친인 나탈리아 페레이라와 맞붙게 됐다. 몇 년 전부터 두 차례나 같은 유니폼을 입고 함께 뛰었던 가장 강하고 제일 친한 친구와 공교롭게도 이번 올림픽에서 적으로 만난 것이다. 결국 페레이라의 스파이크가 김연경의 블로킹을 뚫고 브라질의 완승으로 끝났지만 어쩔 수 없는 승부의 세계에서 각자 가슴에 모국의 국기를 달고 최선을 다했다. 경기가 끝난 후 둘이 함께 뜨거운 포옹할 때 관중의 위로와 진정한 축하가 쏟아졌다. 이럴 때 ‘졌잘싸’(졌지만 잘 싸웠다)라고 하나보다. 황산벌의 계백장군과 같은 싸움이랄까. 승리에 연연하지 않고 승자는 겸손하고 패자는 예의바른 태도를 갖추는 것이 스포츠정신일 것이다. 

‘케냐 태생으로 귀화한 한국인 오주한, 한국 아버지를 위해 달린다’란 타이틀로 신문마다 대서특필된 케냐 태생의 아프리카계 한국인 마라톤 선수도 이번 도쿄올림픽을 또 한 번 기억하는 사연이 될 것 같다.

경로당에 도착해 문을 ‘덜컥’ 여니 검은 고양이 한 마리가 꼬리를 하늘로 치켜세우고 슬그머니 달아난다. “나비야 나비야” 부르니 걸음을 멈추고 벽에 몸을 비벼댄다. 손을 대자 머리를 손바닥에 지긋이 부딪힌다. 그 묘한 힘의 밸런스. 친절과 거절이 함께 한다. 고양이는 얼른 떠나지 않고 어슬렁거리며 근처를 배회한다. 

입추를 지나는 집 앞 공터엔 수확한 고추가 파란 비닐 위에 빨갛게 널려 있고, 햇살 따가운 담장 위로 바깥을 내다보는 능소화가 치렁치렁 꽃줄기를 늘어뜨린다. 솔개그늘 하나 없는 담장 위에서도 붉고 화려하게 피어 소낙비 내리고 천둥번개 쳐도 세월의 담 너머로 목을 뺀 채 바깥을 기웃거린다. 누굴 기다리는지, 자식을 기다리는 노인의 맘인가...  

‘해는 져서 어두운데 찾아오는 사람 없어...’ 코로나19가 창궐한 오늘의 거리두기, 숫자가 우리에게 명령하는 시대, 열정이 사라지고 미적거리는 그림자들을 밀치기라도 하듯 나는 경로당을 들어선다. “안녕하세요” 마스크 안에서 소리를 지른다. “어서와, 어서 들어와” 에어컨 아래 대여섯 분이 앉아 반갑게 맞아주신다. 모질게 가난했던 시절을 이미 겪으신 어르신들의 목소리가 예전보다 훨씬 더 다정하다. 
초대장 없이 같은 숲에 모여든 사람들, 더 없이 반갑고 고맙다. 모든 의논을 마치고 나선 길에는 들판을 가로지르는 바람이 옥수수를 따서 이미 갈색으로  말라비틀어진 거친 옥수수밭을 거쳐 내게 불어와 속삭인다. ‘괜찮아 아직은 살만하지 않니’ 

나는 버려지는 것으로, 사라지는 것으로부터 말할 수 없는 위안을 받는다. 그래도 여전히 사방은 고요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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