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명견 교수의 재미있고 유익한 옷 이야기(110)

▲ 벨베데레 궁에서의 국빈만찬(사진출처/청와대)

‘한국의 미’ 차원을 넘어
의복예절과 서민대통령의
위치까지 나타냈다는 점에서
그 품위가 더욱 돋보였다...

한국과 오스트리아가 첫 외교관계를 맺은 것은 1892년이었다. 내년이면 수교 130주년이 된다.
지난달 오스트리아 대통령이 우리 대통령 내외를 처음으로 ‘국빈초청’ 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문 대통령은 오스트리아 대통령, 총리와 회담하며 양국 관계, 기후환경과 같은 글로벌 현안, 그리고 한반도 정세에 대해 폭넓게 논의하고 문화협력협정도 체결했다. 강소기업 히든 챔피언을 116개나 보유한 중소기업 강국인 오스트리아와의 이 같은 외교성과는 앞으로 양국의 경제는 물론 과학기술, 문화, 예술 등 다양한 분야의 협력 관계를 더욱 발전시켜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오스트리아는 음악의 거장 모차르트의 나라이기도 하지만, 옷의 역사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던 마리 앙투아네트의 모국이기도 하다. 왠지 옷을 잘 입고 방문해야 할 곳 같다. 문재인 대통령의 순방에 동행한 김정숙 여사의 패션에 더욱 관심이 가는 이유였다. 한나라의 최고 지도자의 부인으로서 품위와 아름다움은 물론 자국의 전통미를 알리는 사명도 겸하는 것이 영부인의 패션외교다. 김정숙 여사 역시 이 사명에 충실했던 것으로 보인다.

영부인은 행사에 따라 적절한 옷을 입지만, 국빈만찬 자리에서의 패션은 특별한 관심을 받는다. 아름다운 전망을 자랑하는 벨베데레 궁에서의 국빈 만찬장에 김정숙 여사는 치마저고리에 원삼을 현대화한 겉옷을 입고 등장했다. 오스트리아인에게는 매우 생소한 차림이었을 것이다.

원삼은 황실(皇室)에서부터 반가(班家)에 이르기까지 내외명부(內外命婦)가 널리 착용했던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부인 예복이다. 시대에 따라 색이나 색의 표현 방식에 차이가 있으나 색과 원삼에 직금이나 부금으로 장식된 문양으로, 입는 사람의 직급을 확연히 구분했다. 황제비는 황색에 용무늬, 왕비, 황태자비는 홍색 또는 자적색에 봉황 무늬, 공주·옹주는 초록에 꽃이나 문자 문양을 사용했다. 상궁이나 궁녀들은 문양 없는 녹원삼을 착용했고, 조선 말기 이후에는 문양 없는 녹색 원삼이 서민녀의 혼례복으로도 널리 입혀졌다. 형태는 공통적으로 둥근 깃이 어느 쪽으로도 겹치지 않도록 중앙에서 합해 여미고(합임), 넓은 소매 끝에는 색동과 흰색의 한삼(汗衫)이 달렸다. 김정숙 여사는 황제비나 왕비의 것이 아닌 바로 ‘서민의 원삼’을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했고, 좁은 소매통과 뒷 중심에 삼색의 색동으로 전통미를 살렸다.

전통 옷은 과거 생활에 적합하도록 오랜 역사 속에서 만들어진 유산이다. 때문에 삶의 형태가 달라진 지금, 더구나 세계가 같은 의복을 입는 오늘날 전통복으로 고유의 아름다움을 살려내기란 더욱 쉬운 일이 아니다. 본래 한복의 에티켓에서는 치마저고리 차림으로 공식 행사에 나서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 여성은 사회활동이나 바깥 활동이 제한적이어서 남성복에 비해 포의 종류가 많지 않았지만 조선시대에 겉에 입는 포(袍)가 발달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였다. 김정숙 여사의 이번 만찬 패션은 겉으로 드러나는 ‘한국의 미’라는 차원을 넘어 우리의 의복예절과 서민대통령의 위치까지를 나타냈다는 점에서 그 품위가 더욱 돋보였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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