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자수필- 귀농아지매 장정해 씨의 추억은 방울방울

"양희은의 ‘한계령’이 흐르는 
오후를 나도 그와 함께 
담담이 걸어가 본다"

▲ 양희은 공식블로그 캡처

배봉지 싸는 일이 일단락 나고 장마가 시작되나 했는데, 한 이틀 비가 쏟아지고 흐지부지 게릴라성 소나기로 변하더니 장마가 끝났다 한다. 한편 다행이다 싶은데, 기다렸다는 듯 고막을 찢는 매미소리와 함께 불볕더위가 맹위를 떨친다. 요즘은 새벽 일찍 시작해서 해 뜨기 전 좀 선선할 때에 그날의 일과를 마쳐야 한다. 해지고 난 저녁에도 밭에서 오래 일할 수 없는 것이 두터운 겨울 솜바지에 점퍼, 모자와 마스크를 써도 모기에게 뚫리기 때문이다. 

여름의 절정, 온갖 벌레들의 전성기, 밭에 들어가기 무섭지만 그래도 동트기 전 푸른 새벽을 가만히 열고 발뒤꿈치를 세워 살금살금 일용할 양식을 얻는다. 매일 붉어지는 토마토 대여섯 알, 길게 늘어진 초록오이 두세 개 등 오늘의 샐러드 재료를 가지고 잽싸게 집안으로 들어오면 오늘 나의 외출은 이로써 끝이다.

연일 행정안전부에서 폭염을 알리는 문자와 4차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개인방역과 외출 자제를 권하는 문자가 밀려든다. 공통점은 외출을 자제하고 집안에서 푹 쉬라는 말인데, 그러다 보니 소파 앉은 자리가 푹 꺼지도록 휴대폰, TV와 에어컨 리모컨만 돌리는 모양새가 됐다. 
TV 채널을 돌리다보니 양희은의 노래가 흐른다. 유희열이 진행하는 ‘대화의 희열’ 프로그램에 양희은이 출연해 올해 일흔이 된 그의 삶에 대해 얘기하는 거였다. 나이는 나보다 한 살 위지만 우리와 동시대를 살았던 사람이고, 평소 그의 노래를 좋아하는 내겐 퍽 유쾌한 시간이었다. 얼마 전 유명가수전에 출연해 자신의 인생곡을 들려줄 때도 인상 깊었다. 

양희은의 노래에는 힘이 있다. ‘이 노래 듣기 싫으면 관둬라~’하는 배짱 좋게 부르는, 그래서 어떤 유명한 가수가 불러도 양희은의 곡은 그 만큼 부르지 못한다. 그의 노래는 그의 삶과 일치한다. 유독 특별한 아픔과 무게를 짊어지고 살아온 가수 양희은의 굵직한 목소리가가 가슴을 후벼 파는 감동과 따스한 위로를 우리에게 주는 까닭이다.

포크송의 대모, 그리고 라디오 ‘여성시대’ DJ 양희은의 목소리는 늘 푸른 느티나무처럼 숱한 이의 마음 기댈 곳이 돼왔다. 자서전적 에세이 <그러라 그래>에는 일흔이 된 양희은의 넉넉한 시선이 담겨있다. 나이 드는 것의 가장 큰 매력은 웬만한 일에도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와 다른 시선이나 기준에 대해 ‘그래 그럴 수 있어. 그러라 그래’ 하고 넘길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는 것. 

‘왜 상처는 훈장이 되지 못하나? 살면서 뜻하지 않게 겪었던 아픔들을 수치스러워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도대체 어떻게 아무런 흉도 없이 어른이 될 수 있을까? 사람은 제가 겪은 만큼이라지 않던가!’
‘고백하건대 별나게 겪은 괴로웠던 시간들이 내가 세상을 보는 시선에 보탬을 주면 줬지 빼앗긴 건 없다. 경험은 누구도 모사할 수 없는 온전한 나만의 것이니까. 따지고 보면 결핍이 인생에 가장 힘을 주는 에너지였다. 이왕이면 깊게 남과는 다른 굴절을 만들며 세상을 보고 싶다.’ 

그는 고단한 짐을 지고 가는 모든 이에게 자신의 노래가 지친 어깨 위에 얹어지는 따뜻한 손바닥의 무게, 딱 그만큼의 위로라면 좋겠다고 소망한다. 살아보니 세상은 이렇더라고 말하는 선배 같다. 그는 이제 담백하게 그저 좋아하는 걸 하고 좋아하는 사람들 곁에서 나답게 살면 그만이라고 담담하고 슴슴하게 말한다. 양희은의 ‘한계령’이 흐르는 오후를 나도 그와 함께 담담이 걸어가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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