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밤이 되니 불현듯 돌아가신 형에 대한 그리움이 밀려든다. 15년 연상의 형은 나에게 할머니에 대한 얘기를 많이 해줬다. 할머니는 여름밤이면 마당에 모깃불을 피운 뒤 평상에 손자·손녀를 앉혀놓고 심청전, 흥부전, 신사임당전 등 재미있는 얘기를 많이 해주셨다고 한다.

할머니의 얘기 소재는 20개가 넘었노라고 했다. 얘기 소재가 떨어지면 예전에 했던 심청전 얘기를 다시 하셨는데, 전에 듣던 것 못지않게 재미가 있었다고 했다. 얘깃거리가 떨어지면 벼슬을 하신 할아버지가 공부하실 때 책읽기 지루해 논에 나가 개구리 합창에 맞춰 시를 읊으셨다는 얘기도 들려주셨다. 때로는 할머니가 어릴 적 살아오신 얘기도 하셨는데, 어른들 정성스레 모신 얘기에 많이 감동했다.

할머니는 내가 태어나고 2년 후에 돌아가셨다. 그러기에 80년 전 할머니와 형님은 여름밤을 이런 모습으로 살았다.

요즘 TV뉴스를 보노라면 코로나19로 사람간 어느 정도 격리가 돼야 함에도 불구하고 많은 인파가 바다와 산으로 몰려 걱정이다. 거기에 가서 놀다 고기를 구워먹고 흥에 겨워 술을 마시기보다는 친가나 외갓집에 가 부모와 조손, 가족이 다함께 모여 오순도순 얘기하며 정을 쌓는 게 좋을 듯하다.

특히 할아버지, 할머니께선 손자·손녀에게 전화로 먼 훗날까지 끝내 잊지 않는 좋은 얘기 많이 들려주고 추억을 각인시켜 주기를 바란다. 낯선 사람과 휩싸이는 휴양지보다 이번 여름만은 가족 모두가 호젓하게 모여 가족사랑을 돋우는 자리를 갖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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