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성호 박사의 날씨이야기 - 6

 

대동강 얼음도 풀린다는 우수와 경칩 사이로 음력 2월 초하루가 찾아온다. 이 날은 하늘에서 영등할머니가 딸이 아니면 며느리를 데리고 내려온다는 ‘영등날’이다. 딸을 데리고 오면 바람이 불고, 며느리를 데리고 오면 비바람이 몰아친다고 하니 좋은 날씨를 바랄 수 없는 날인가보다. 딸은 그야말로 ‘바람의 의상’인 한복으로 하여금 더욱 아름답게 보이도록 하고, 며느리는 옷을 젖게 하여 몹시 초라하게 보이도록 만든다고 한다. 그런데 딸을 데리고 오는 해는 흉년이 들고, 며느리를 데리고 오는 해는 풍년이 든다고 전한다. 바람을 다스리는 신(風神)인 영등할머니의 예언이 맞고 안 맞고는 해마다 한 번쯤 지켜볼 일이다. 그런데 이 이야기에서 딸이나 며느리나 다 같이 소중하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들을 꾸짖는 영등할머니의 깊은 뜻을 읽을 수 있다.


꽃과 잎을 시샘하는 추위를 화투연(花妬娟)이라고 부르는 걸 보면, 영등할머니와 그의 며느리와 딸로 이루어진 생산과 관련된 여성의 신화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영등할머니는 음력 2월 초하룻날 내려와 땅과 바다의 바람을 다스리고 2월 스무날 하늘로 돌아간다고 한다. 영등날 농가에서는 문밖에 황토를 뿌리고 오색 깃발을 달아 천지신명께 풍년을 빈다. 영등할머니가 바람을 다스리는 동안에는 어부들은 바다에 나가지 않는다고 한다. 이 기간은 꽃샘추위가 잦은 환절기다. 영등할머니는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의 안전을 위하여 그리고 풍어와 풍년농사를 위한 준비를 철저하게 하라고 우리에게 온다. 제주도와 동해안에서는 해마다 영등제를 올린다.


봄에 꽃과 잎이 피어날 때쯤 갑자기 찾아오는 추위를 꽃샘추위라고 한다. 대륙고기압이 겨울처럼 다시 강해졌거나, 동해에서 발달한 저기압이 빠르게 물러나고 대륙고기압이 그 자리로 쳐들어올 때 꽃샘추위가 찾아오는 경우가 많다. 겨울이 물러가면서 봄이 돌아올 때 기습해오는 꽃샘추위는 그러려니 할 수 있다.
그런데 봄이 한창인 4월 하순이나 5월 상순에 뜻밖에 닥치는 꽃샘추위는, 한창 피고 있는 과수의 꽃에 직접 피해를 주기도 하지만, 벌과 같은 꽃가루를 나르는 곤충이 추위로 활동을 중지하여 꽃가루받이 시기를 놓치게 되는 경우가 있어 더욱 두렵다. 바람도 없이 찾아오는 꽃샘추위는 늦서리를 내리게 하여 농작물에 큰 피해를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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