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대장정> 한식의 계승과 세계화 Ⅲ - 한식의 뿌리를 찾아 (36)

건진국수·헛제삿밥·안동식혜·안동간고등어

 

안동은 유교라는 정신문화와 그 생활양식에 뿌리를 둔 전통사회의 식문화가 비교적 온전하게 전승돼 오고 있는 대표적인 문화의 고장이다. 특히 전통음식은, 지체 높은 양반가 문중의 선비문화가 집성촌으로 이루어진 이 지방의 핵을 이루고 있어 의례음식이 주를 이루지만 음식은 의외로 일상음식과 같이 소박하고 검소하며 영남지방 특유의 서민적 취향인 맵고 짠 맛을 지니고 있는 특징이 있다.

안동지방에서 예로부터 대물림해 내려온 대표적인 전통음식을 들어보면, ▲주식류로는 건진국수, 헛제삿밥 ▲간식류는 안동식혜 ▲반찬류로는 문어, 상어, 간고등어와 이 지방의 주산물인 콩가루를 이용한 국과 찌개, 찜류의 음식 등이다.


길하고 장수하는 음식 ‘건진국수’
안동지역의 건진국수는 마을 단위의 잔치에서 손님접대용으로 내던 잔치음식의 하나다. ‘면을 삶아 건져 두었다가 말아내는 국수’ 란 뜻을 가진 이 국수는 밀가루만으로 반죽을 하는 일반국수와는 달리 밀가루와 생콩가루를 4:1 비율로 골고루 섞어 반죽한 후 홍두깨로 밀어 국수를 만드는데 반죽을 밀어내는 사이사이에도 콩가루를 뿌린다. 국수를 말아내는 장국국물을 장닭이 아닌 병아리 삶아 걸러낸 연한 육수를 쓰는 것도 특이한 점이다. 그리고 양념해 볶은 애호박과 다진 쇠고기, 잘게 썬 달걀 황백지단과 구운 김으로 된 고명을 얹은 다음 양념장을 곁들여 낸다. 여름철에 즐겨 먹는 이 국수는 애초 국수사리의 양이 적어 조밥과 배추쌈을 함께 곁들여 먹는 것이 전래의 이 고장 풍습이다. 예전에는 장국물을 우려내는 식재료로 은어와 꿩을 사용했다고 하기도 하나 식재료 마련의 어려움 탓에 지금은 찾아 볼 수 없다.

 

 

관광상품 제사음식 ‘헛제삿밥’
일반적으로 알려진 이 헛제삿밥에 관한 유래에는 두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쌀이 귀한 시절에 이 지방 유생들이 제사음식을 장만해 축과 제물을 지어놓고 제사상을 차려 거짓으로 제사를 지낸 후 제수음식을 먹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제사지낼 형편이 되지 않는 일반 상민들이 쌀밥을 먹기 위해 그냥 거짓 제사음식을 만들어 먹은데서 유래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민속학자들의 고찰결과에 따르면 이 음식이 전통적으로 안동에는 없었다는 것. 단지 일부마을에서 확인되는 ‘헛신위밥’, ‘헛지신밥’ 이라는 이름의 야식용 비빔밥이 1970년대 말 안동에서 식당업을 하던 한 할머니의 발상으로 새롭게 개발된 음식이라는 것이다. 그것이 안동사람들은 물론 외지관광객들의 긍정적 평가에 힘입어 완전하게 안동의 대표 향토음식의 하나로 자리하게 된 것이다.
헛제삿밥은 쇠고기·상어·간고등어 꼬치구이와 문어, 두부 지짐이, 배추전, 고사리, 시금치, 도라지나물, 동태전 등의 반찬을 제기에 담고 고춧가루가 전혀 사용되지 않은 국과 간장, 그리고 한 그릇의 쌀밥을 올린다. 이 헛제삿밥은 고추장이 아닌 간장에 비벼먹어야 맵지 않고 제 맛을 느낄 수 있다는 것.
이 음식은 안동보조댐 입구에 자리한 민속마을의 까치구멍집, 민속음식의 집, 터줏대감 등의 업소와 하회마을에 가면 맛볼 수 있다. 그러나 조상제사가 점차 사라져가는 세태이고 보면, 이 음식은 그나마도 전승의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겨울철 별미간식 ‘안동식혜’
안동식혜는 이 지방 사대부가에서 설과 정월대보름을 전후해서 즐겨 해먹던 간식이다. 이 음식은 내륙지방의 감주형 밥식혜와 바닷가 지방의 소식해, 생선식해의 중간형음식으로 소식해, 생선식해의 밋밋한 맛을 탈피하기 위해 무, 고춧가루, 생강과 같은 채소양념을 첨가해 밥식혜처럼 물을 넉넉하게 부은 지금의 안동식혜로 발전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것은 인근 영덕의 영해지방과 안동 사대부가간의 빈번한 혼인관계에서 양쪽의 음식문화가 교차하면서 생겨났다는 추정을 상당히 근거 있는 얘기로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이 안동식혜의 조리법은 찹쌀이나 쌀로 고두밥을 지은 다음 엿기름물을 붓고, 잘게 썬 무, 다진 생강, 고춧가루물을 넣고 물을 넉넉하게 부어서 6시간 정도 따뜻한 곳에서 삭힌다. 거기에 잣, 밤, 볶은 땅콩 등을 띄워 먹는데, 다른 지방의 일반식혜맛과 나박김치 맛이 동시에 나면서 약간의 과일 맛도 느낄 수 있는 것이 안동식혜만의 특징이다. 이 식혜는 최근 냉장·냉동기술에 힘입어 표준 상품화 되어 일반 식료매장에서의 판매는 물론 직송 판매도 하고 있다.

 

싱싱한 어물을 대신했던 ‘간고등어’
태백·소백산의 2백(二白)줄기 산간 내륙분지에 자리한 안동지방 사람들이 싱싱한 해산물을 바로 먹을 수는 없었다. 인근 영덕지방의 해산물이 이곳 내륙까지 유입되는 동안에 상한다는 것에 착안한 상인들이 왕소금에 절여 이 지방에 공급하게 되었다는 게 간고등어의 유래다. 이 덕분에 비교적 흔하고 당시에는 값이 쌌던 이 생선을 일반서민들도 자주 맛을 보게 되었던 것이다.
지금은 ‘안동간고등어’ 브랜드와 함께 40년 왕소금 간잽이를 해왔다는 노인(이동삼 옹)을 내세우는 제조회사 말고도 여러 개의 제조업체가 난립해 간고등어를 제조판매하고 있으며 안동의 어지간한 식당 간판치고 ‘안동고등어’를 내걸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로 성업 중이다.
그 외에도 전국 생산량의 30%를 소비하는 문어요리, 마른 명태를 두들겨 가늘고 부드럽게 부순 다음 고운 소금을 친 명태보푸름과 이 지방 주요작물인 콩가루를 이용한 무침과 찜 음식 등도 이 지방의 음식취향을 고유하게 보여주는 향토음식이다. 하지만 고유자연환경과 사회문화환경의 변화 속에서 점차 서양식 음식에 길들여진 소비자의 욕구에 부응하면서도 제 맛을 지켜낼 수 있을 지가 우리 전통음식의 과학화·상품화와 세계화 추진과정에서 풀어가야 할 커다란 과제라 할 수 있다.  

<도움말=안동시농업기술센터 장재옥 생활지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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