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류미월의 문학향기 따라 마을 따라 - 경북 안동

▲ 도산서원

안동 곳곳에 밴 선비정신
전통과 예술이 어우러져
온고이지신의 멋을 뿜는다

낙동강 물줄기 따라 도도한 선비정신이 흐르는 안동은 권역별로 나눠서 돌아보면 좋다. 서쪽의 하회마을에는 경상북도 도청과 병산서원이 있고,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이 방문해 더 유명해졌다. 북동쪽에 자리잡은 도산권은 도산서원과 퇴계종택, 선비문화수련원과 이육사 문학관으로 이어진다.

안동 시내와 안동호 따라 밤이면 더 황홀한 월영교 일대, 안동댐과 안동문화단지가 있는 원도심과 안동댐권, 독립운동기념관과 임하댐을 따라 지례예술촌이 있는 남동부권, 봉정사와 학가산 온천이 있는 북서부권, 동화작가 권정생의 동화나라가 있는 남서부권으로 크게 구분된다.
퇴계 이황 선생의 정신과 청포도가 익어갈 무렵이면 생각나는 민족시인 이육사의 생가와 문학관이 있는 안동은 곳곳의 서원과 종택, 향교와 현대적 건물이 어우러져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의 멋을 뿜는 고장이다.

▲ 월영교

한 폭의 그림 같은 안동호와 월영교
트로트 가수 진성의 노래로 잘 알려진 <안동역에서>의 배경지인 구 안동역은 폐쇄됐고,  KTX 이음 열차가 청량리역에서 안동역까지 중앙선을 따라 개통돼 접근이 쉬워졌다. 낙동강 물줄기를 따라 안동역 일대를 돌아보고 안동의 오래된 빵집 맘모스제과점에서 대표빵인 크림치즈빵을 샀다. 물길 따라 임청각과 법흥사지 칠층 전탑을 지나 월영교에 도착했다.

달이 비치는 다리라는 뜻을 지닌 월영교(月映橋)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규모가 큰 나무다리다. 긴 다리 위를 걷다 팔각정 위에 앉으면 안동댐의 풍광이 한 눈에 들어온다. 낮엔 반영(反影)이 아름답고 밤엔 야경이 멋지다. 교량에서 조명을 뿜는 야경 월영교는 몽환적인 운치를 준다. 강물에서 연인끼리 친구끼리 달 모양 보트를 타고 전설처럼 동화처럼 오간다.

월영교 인근에는 맛집이 많다. 저녁은 30년 전통의 버섯전골로 유명한 집에서 고소하게 구운 안동 간고등어와 함께 먹었다. 주인장의 손맛이 일품이다. 규모가 큰 안동댐을 구경하고 내친김에 유교랜드를 돌아봤다. 유교문화를 중심 주제로 하는 테마파크 체험센터다. 안동문화관광단지 안에는 숙박호텔과 골프장과 식물원이 어우러져서 두루 즐기기에 편리하다.

봉정사 입구 고택서 특별한 하룻밤
구불구불한 도로를 따라 안동 도심과 월영교의 정취를 맛보고 숙소는 승용차로 20분 거리의 봉정사 입구에 위치한 고택으로 정했다. 진성 이씨 종손이라는 노신사 쥔장이 열 체크를 하고 반갑게 맞는다. ‘엘리자베스’라는 방에 묵게 됐는데, 방에 둘이 눕자 꽉 차는 작은 방이다. 캐리어를 선반 위에 얹고 한지 창을 쳐다보니 고향 생각이 절로 난다. 방 구석구석에 사군자 그림과 깔끔한 이부자리가 편안함을 준다.

단잠을 자고 동트기 전 이름 모를 새들이 몰려와 우짖는 소리가 숲속 작은 오케스트라처럼 아름답다. 눈을 감은 채로 누워서 한참을 새소리에 빠져든다. 날이 밝자 고무신을 신고 고택 뜨락을 걸으니 세월을 견딘 소나무와 감나무가 정겹게 반긴다. 주인장과 잠시 대화를 하고 작별하고 인근의 봉정사를 둘러봤다.
봉황이 머물다 갔다는 천년고찰 봉정사는 천등산에 있는 통일신라시대 사찰이다. 일주문으로 가는 계곡에 명옥대와 연등이 초록 신록과 어우러져 알사탕처럼 반짝인다.

▲ 퇴계 이황의 도산십이곡 시비

퇴계와 육사, 농암의 숨결을 느끼다
봉정사에서 도산서원으로 가는 길가에 사과밭이 많다. 안동은 사과로도 유명하다. 넉넉한 들녘을 지나니 도산서원이다. 퇴계선생이 살아생전 글을 가르쳤던 곳. 서당과 사후에 제자들이 퇴계선생의 높은 뜻을 기리기 위해 만든 서원을 두루 돌아보며 성리학(주자학)의 꽃을 피웠던 퇴계선생의 정신을 되새긴다.

도산서원은 퇴계선생이 벼슬을 사양하고 학문 연구, 인격 도야, 후진 양성에 힘썼던 서원으로 201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서원 입구에 고목 왕버들이 운치를 더한다. 도산서원을 돌아보고 퇴계종택으로 가는 길에 도산십이곡 시비가 있다. 도산십이곡은 퇴계 선생이 읊은 연시조다. 도산육곡은 전후 육곡이어서 전12곡이 된다. 그중 도산육곡(陶山六曲) 언학(言學)편의 5수를 감상해보자.

청산(靑山)은 엇찌하야 만고(萬古)에 프르르며/ 유수(流水)는 엇찌하여 주야晝夜에 긋디 아니하는고/ 우리도 그치디 마라 만고상청萬古常靑 호리라.(해석: 푸른 산은 어찌하여 영원히 푸르며/ 흐르는 물은 또 어찌하여 밤낮으로 그치지 않고 흐르는가?/ 우리도 저 물과 같이 그치지 말며 저 푸른 산과 같이 항상 푸르게 살리라)

도산서원을 지나면 퇴계종택과 선비문화수련원이 인근에 있어 퇴계선생의 정신을 되새기고, 선비문화수련원에서 선비문화를 체험해보는 일도 의미 있는 안동 기행이 될 것이다.
종택을 굽이돌아 나가다 보면 길가에 포도밭이 나오고, ‘이육사 와이너리’와 이육사문학관이 나온다. 퇴계의 후손인 이육사는 1930년대 일제의 무단통치가 극성일 때 문학활동에 나선 민족시인이다.

▲ 이육사의 청포도 시비

육사는 모국어를 부려서 쓰는 시인으로 등장했고 시뿐만 아니라 소설, 수필, 평론 등 문학의 전 장르에 걸친 작품활동에 매진했다. 문학관 옆에 이육사 생가를 복원한 육우당(六友堂)이 있다. 육형제가 태어난 곳이다.

육사의 시로 <청포도>, <광야>, <절정> 등이 널리 알려져 있고 총 40편의 시를 남겼다. 문학관 입구에 그의 동상과 시비가 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시 <청포도>를 감상해보자.

내 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이 마을 전설이 주저리주저리 열리고/먼 데 하늘이 꿈꾸며 알알이 들어와 박혀/ 하늘 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흰 돛단배가 곱게 밀려서 오면/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청포를 입고 찾아온다고 했으니/내 그를 맞아 이 포도를 따 먹으면 두 손은 함뿍 적셔도 좋으련/ 아이야, 우리 식탁엔 은쟁반에 /하이얀 모시수건을 마련해 두렴

이육사문학관을 둘러보고 시간 여유가 되면 도산면 가송길에 농암 이현보 종택을 가보면 좋다. 산과 물과 사람이 만나는 곳, 적벽강을 돌아가듯 수려한 경치에 강호사시가(江湖四時歌)가 절로 나온다.
최근 각광받는 예끼마을의 ‘선성수상 데크길’은 빼놓을 수 없는 안동의 관광코스다. 물 위의 낭만적인 데크길을 걷는데, 송홧가루가 물 위에 떨어져 노랑 물결이 인다. 하회마을과 만휴정과 권정생 생가는 다음을 기약했다. 안동에는 한국국학진흥원과 향교, 종택 등 정신문화가 낙동강을 따라 도도히 흐른다. 한적하되 스산하지 않고 고요하되 무료하지 않은 곳 안동의 매력이다.

▲ 예끼마을 선성수성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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