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신 홍
본지 편집위원
前 축협중앙회 연수원장

 

모두가 어렵다는 이즈음 행복과 불행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해 보게 된다. 사람이 살아가는 목적은 각자가 다르지만 인간은 누구나 행복을 추구하는 존재이다. 어떤 사람은 내면의 세계를 중시하고 그 안에서 행복을 찾는 경우도 있으나 대부분은 재물이나 권세나 명예와 같은 외물(外物)에서 이를 구하고 있다.
그러면 인간은 과연 얼마나 많은 돈을 갖게 되면 행복할 수 있을까. 영국 어느 대학의 연구팀이 이러한 문제와 관련해 조사한 흥미로운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이 조사는 영국인들을 무작위로 추출해 그들의 생활수준과 만족도를 분석하는 방법으로 10년에 걸쳐 진행했다. 그런데 조사한 대상자들 중 많은 사람들은 100만 파운드(약20억원)를 약간 웃도는 돈을 얻었을 때 가장 행복감을 느꼈다고 한다.


그러나 연구팀은 100만 파운드의 돈이 있다고 해서 다 행복한 것은 아니며 일에서의 성취감이나 만족스러운 결혼생활, 건강 등이 행복을 결정하는데 중요한 요소들이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가난하던 사람이 복권에 당첨되거나 자기 노력의 대가로 그 정도의 돈이 주어지면 한동안 행복할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욕망이란 한이 없어 스스로 절제하고 자족(自足)하는 마음이 없는 한 아무리 자기가 추구하는 욕망이 충족돼도 다시금 더 큰 욕망이 생겨 행복해 질 수 없음을 알 수 있다.
권력, 돈, 명예, 지식, 미모나 섹스, 재능 등 우리가 누리고 싶어 하는 많은 것들이 진정 행복을 가져다 줄 수 있는 요소의 전부는 아닐 것이다.
건강과 자족하는 삶, 이것이 행복의 기본적인 요소가 된다. 건강한 삶, 즉 튼튼한 몸과 평안한 마음은 참 행복의 기본 조건이 되는 것이어서 이것이 없이는 오복의 으뜸인 장수도 부질없고, 온 세상을 다 준다 해도 소용없기 때문이다. 그러자면 평소에 끈임 없는 운동과 책읽기, 명상, 수련 등 좋은 습관을 몸에 배게 해야 한다.
살다보면 정말 어찌할 수 없는 불행이 닥칠 때가 있다. 자연의 법칙이나 신의 섭리는 순리로 이루어지고 선을 권하고 악을 규제하겠지만 착한 사람들에게 나쁜 일이 생기는 등 순리로 설명하기 힘든 일들도 다반사(茶飯事)로 일어난다.


삶이 힘들수록 우리는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나는 누구인가?’ ‘어떻게 살아 왔는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 갈 것인가?’
불가(佛家)에서는 ‘행복해 지려면 삼독(三毒), 즉 탐진치(貪瞋癡)에 떨어지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탐욕과 성냄, 그리고 어리석음에 빠지지 말라는 것이다. 흔히 착한 너에게 또 나에게 왜 이리 몹쓸 일이 닥치는가? 하고 한탄하기도 한다. 그러나 다시한번 되돌아보자. 다른 사람들로부터 무골호인(無骨好人)이라는 소리를 들으며 착해 빠지기만 했지 게으르지는 않았는지, 일을 미루는 버릇은 없었는지, 마음속에만 있지 행동과 실천이 뒤따라 주지 않았는지, 나약함에 빠진 자기를 잊기 위해 주색잡기에 빠지지는 않았었는지, 겉으로는 착해 보이나 속으로 얼마나 큰 탐욕과 노여움과 증오심에 불타고 있었는지, 배움을 게을리 해 얼마나 많은 잘못된 판단과 시행착오를 겪었는지 되돌아 볼 일이다.
행복은 최선을 다한 후 마음먹기에 달려있다. 발가락 하나를 잃고 불행해 하던 사람이 두발을 잃고도 웃으며 사는 사람을 보면 자기의 욕망이 얼마나 사치스러운지를 느낄 것이다.


평생 듣지도, 보지도, 말하지도 못하며 삼중고의 성녀로 살았던 헬렌 켈러의 일생을 통해 우리는 행복의 요소를 다시 생각 해 볼 수 있다. 그의 ‘생의 이야기’에서 그녀는 단 한번만이라도 무지개를 바라 볼 수 있다면 지금 당장 죽어도 한이 없겠다고 했다. 그런데 우리는 그의 소원을 일상으로 누리며 살고 있다는 것을 마음에 새겨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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