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자매네 반디농장 김영란의 전원일기 ㉑

"쓰레기장에 떨어진 꽃씨가
꽃밭 되는 세상을 꿈꾼다.
내가 그 꽃씨가 됐으면..."

꽃 이야기를 하라면 3박4일도 모자란다. 꽃에 미친 여자(꽃미녀)는 지난해 60세를 맞으며 남편에게 선언했다. 겨울 농번기를 빼고는 꽃 키우는데 전념 하겠노라고... 귤밭을 싹~ 밀어내고 꽃밭을 만들지는 않겠지만(귤나무도 꽃나무라) 야금야금 귤밭을 비집고 들어서서 꽃들로 채우면 귤밭인가 꽃밭인가 싶은 꽃동산을 만들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희번덕거리는 남편의 눈초리에도 아랑곳 않고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꽃밭을 만들기 시작했다. 지지난해, 30년도 더 된 낡은 귤창고를 최소의 비용으로 리모델링해 쉼터 겸 작업실을 만들고, 지난해는 그동안 여기저기서 세 들어 살듯이 키우던 꽃나무들을 이사 시켰다. 늘 생업이 우선이라서 맘껏 키우지 못해서 아쉬웠던 꽃밭을 이제부터는 맘껏 키우리라며.

그사이 하나씩 둘씩 키우던 꽃들은 귤나무 아래나, 귀퉁이 빈땅에 질서 없이 심어 놓아서 남편이 어수선하다고 핀잔하며 예초기로 날려버리기 일쑤였는데, 이제는 꽃이 꽃답게 공간을 만들어 줬다. 그래도 더 과감하게 귤밭을 밀어버리고 하지는 못하고 귤나무 몇 그루를 이사시키고 옹기종기 한 곳에 모았다. 그동안 한 뼘 가지를 삽목해 키운 아이들이라 비싼 꽃나무는 하나도 없다.

온통 꽃으로 물든 내 유전자는 형편에 맞게 선호도가 정해졌는지, 키 낮은 꽃, 풀꽃, 들꽃들을 좋아했다. 화려한 꽃이나 흔하게 보는 길거리 조성용 꽃들은 애정하지 않고 애잔한 들꽃들을 좋아했다. 엉겅퀴에 매료됐고, 구절초 흰꽃에 넋을 잃기도 했다.
흰색과 보라색 꽃들을 좋아했지만, 점점 더 다양한 꽃들과 화사한 색들에도 눈이 가는 것을 보니 사랑은 움직이는 것 같다. 장미대신 찔레를 심었는데, 이제는 장미도 눈길이 가고 빨간 양귀비꽃도 가슴을 흔드는 것을 보니 감정도 나이에 따라서 달라지는 것을 느낀다.

수수하지만 단아한 꽃들이 좋았는데, 이제는 도발적으로 튀는 아이들에도 눈길이 머문다. 네모라서 싫고, 세모라서 좋고 하던 기호가, ‘네모도 예쁘고 세모도 예쁘네~’ 하는 것을 보니 이렇게 나이 들어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

그래서 꽃밭을 만들 때도 여러 아이들을 섞어서 심었다. 가능하면 개화기가 오래인 꽃, 사계절 돌아가며 피는 꽃밭이 되려고 심다보니 또 여백이 없는 꽃밭이 돼가고 있다.
빼곡히 만물상이 돼 가려고 하나 이것도 나다움이라고 우겨본다. 옹기종기 모여서 어깨 부비며 서로의 예쁨을 바라보는 행복한 꽃밭이 되기를.

내안의 그 무엇이 나를 꽃에 미치게 했는지 모르지만, “하느님, 감사합니다, 꽃에 미치게 해 주셔서~”라고 기도한다. 꽃은 나를 즐겁게도 했고, 눈을 맑게 해 줬고 마음 안의 티끌도 씻어내려 줬다. 촉수가 돈으로 향했다면, 숨기려고 위장해도 흘러나오는 탐욕을 어찌 감당했으랴~

가난한 고학생 시절에도 화분 몇 개로 나를 달랬고, 옥탑방에서 시작했던 신혼기에도 나팔꽃 아치를 만들어서 나만의 운치를 누렸기에 꽃과 식물은 내 영혼을 늘 푸르게 지켜줬다.
제주도에 와서 귤밭이 꽃밭으로 보여서 귤농부가 된 것도 신이 내게 인도하신 은총이라고 느낀다. 꽃씨 하나가 쓰레기장에 떨어져서 꽃밭이 되게 하는, 그런 세상을 꿈꾸며 내가 그 꽃씨가 됐으면 좋겠다. 꽃, 함께 했던 매순간이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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