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류미월의 문학향기 따라 마을 따라 - 경기도 화성

▲ 화성시 효행동에 자리한 사도세자와 정조대왕의 융릉과 건릉

‘모세의 기적’ 제부도 바닷길
 궁평항 낙조와 지중해풍 전곡항
 화성에서 만나는 ‘왕이로소이다’

안개처럼 삶이 답답할 때 찾아가면 바다가 갈라지며 길이 드러나는 곳, 제부도다. 드러났던 길이 다시 밀물 때 사라지지만 경계 사이를 넘나드는 게 우리네 삶이 아닐까.
화성에는 섬과 예쁜 항구가 많다. 낙조를 바라보면 가슴이 따뜻해지는 궁평항과 지중해풍 엽서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푸른 바다와 하얀 요트들이 멋진 경관을 이루는 전곡항이 있다.

사도세자와 정조대왕을 모신 융릉과 건릉은 가족이나 연인들의 나들이 장소로 인기가 많다. 그런가 하면 삼성전자 등 제조업체들이 많이 있고 마천루처럼 뻗은 동탄 신도시의 모습은 화성의 또 다른 얼굴이다. <나는 왕이로소이다>의 작가인 노작 홍사용의 묘가 노작홍사용문학관이 있는 양지바른 노작공원 내에 있다.

▲ 제부도 바닷길

이별했다 만나고 다시 둘이 되는 제부도
제부도는 서신면 송교리 해안에서부터 서쪽으로 약 2㎞ 떨어져 있는 섬이다. 섬은 바다 위에 떠 있지만 구불구불한 길이 드러나는 동안은 섬이 아니다. 일명 ‘모세의 기적’을 볼 수 있는 신비의 섬 제부도는 썰물 때면 간석지를 통해 동쪽 해안이 육지와 이어진다. 바닷길은 하루 두 번 열리는데 물때를 알고 가야 제시간에 육지로 나올 수 있다. 섬 서쪽에는 갯벌이 아닌 모래사장이 펼쳐지는 걷기 좋은 매바위 코스가 있다.

물이 차오르는 시간이다.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갈라섰던 바다가 수천수만의 팔을 뻗어 엉겨 붙으며 만나는 시간이다. 섬이 섬으로 뭍은 뭍으로 돌아가는 시간이다. 이별하는 섬과 육지가 사납게 몰아치는 파도 같은 눈물을 뿌리는 시간이다.(서하진의 소설 <제부도> 중에서)

레저와 나들이에 좋은 궁평항․전곡항
궁평항에서 노을을 맞으면 하루를 살고 돌아가는 붉은 석양빛에 감탄과 경건함이 절로 든다. 궁평리에 위치한 궁평항은 고려 초부터 궁궐에서 관리하던 들녘이 많았던 곳이었기 때문에 궁평(宮坪)이라는 지명이 됐다. 해송 숲과 각종 수산물이 풍부한 경기도 유일의 국가 어항이다.
궁평항 남쪽 방파제에는 193m의 잔교형(棧橋形) 바다낚시터가 설치돼 있다. ‘피싱피어-바다 위 낚시터’라고 불리는 이 잔교를 걸으며 바다 풍광을 즐기기에 좋고 색다른 볼거리를 준다.

▲ 전곡항 요트 마리나

전곡항은 제부도 누에섬과 마주하는 항구다. 인근의 제부도, 궁평항, 화성호 등과 연계한 서해안 레저 어항으로 선정돼 다기능 테마 어항으로 조성된 항구다. 서신면과 안산시의 대부도를 잇는 방파제가 항구 바로 옆에 건설돼 밀물과 썰물에 관계없이 24시간 배가 드나들 수 있다. 요트와 보트가 접안할 수 있는 마리나 시설이 있고 파도가 적어서 수상레저의 최적지다.

전곡항은 국제보트쇼와 세계요트대회 등 각종 국제행사가 열리는 항구로도 유명하다. 이 항구에서는 매년 5월과 6월 사이에 화성뱃놀이축제가 열린다. 푸른 바다와 흰 구름에 요트가 더해져 화려하고 멋진 풍광을 자아내는 전곡항. 고요한 바다에 정박해있는 요트들이 출항을 기다린다. 한 번쯤 영화 주인공처럼 요트를 타고 낙조의 장관을 보면 어떨까. 캠핑카를 바다에 옮겨놓은 것 같은 요트 안에서 안락함을 누리며 인생샷 하나쯤 건지면서 말이다.

섬과 항구가 멋을 주는가 하면 화성 도심 노작로에는 <나는 왕이로소이다>라는 시로 잘 알려진 노작홍사용문학관이 있고 문학관과 연결된 노작공원에는 홍사용의 묘와 시비가 있다.

▲ 노작 홍사용 선생의 <나는 왕이로소이다> 시비

노작의 흔적을 더듬는 홍사용문학관
전국에 문학관들이 많다. 웅장하게 건립해놓고 시설 활용이 제대로 되지 않는 곳들이 많은 데 비해 노작홍사용문학관은 운영이 잘되는 곳으로 정평이 나 있다. 노작문학관의 슬로건은 ‘일상을 문화로, 문화를 일상으로’다. 노작문학관은 노작(露雀)을 호로 쓰는 홍사용(1900~1947) 시인을 기리기 위해 2010년 개관됐다.
홍사용은 낭만주의적 경향을 표방한 문예지 ‘백조’를 창간하는 등 낭만주의 시를 주도했던 시인이자 극단 ‘토월회’를 이끌며 신극운동에 참여했던 예술인이다. 생존 시에는 작품집이 나오지 않았고 1976년 유족들이 시와 산문을 모아 <나는 왕(王)이로소이다>를 간행했다.
그의 유해는 유년 시절을 보낸 화성시 노작로 노작홍사용문학관 뒤 노작공원에 안장돼 있다. 홍사용은 30세 무렵부터 5년간 미투리(삼으로 만든 짚신)에 두루마기 차림으로 전국 곳곳을 방랑했다. 교편을 잡았으나 오래가지 못했으며 1947년 폐질환으로 별세했다. 그의 작품을 감상해보자.

할머니 산소 앞에 꽃 심으로 가던 한식날 아침에 /어머니께서는 왕에게 하얀 옷을 입히시더이다./ 그러고 귀밑머리를 단단히 땋아 주시며 /“오늘부터는 아무쪼록 울지 말아라.” /아-, 그때부터 눈물의 왕은 ! / 어머니 몰래 남모르게 속 깊이 소리 없이 혼자 우는 그것이 버릇이 되었소이다.  (중략)
아-, 뒷동산 장군바위에서 날마다 자고 가는 뜬구름은 얼마나 많이 왕의 눈물을 싣고 갔는지요. / 나는 왕이로소이다./ 어머니의 외아들 나는 이렇게 왕이로소이다. /그러나 그러나 눈물의 왕! / 이 세상 어느 곳에든지 설움 있는 땅은 모두 왕의 나라로소이다.(홍사용의 시 ‘나는 왕이로소이다’ 중 일부)

시에서 화자는 가난한 농군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스스로 왕이라고 역설적으로 지칭한다. 식민지 현실 속에서 비극적 주인공이 될 수밖에 없는 지식인의 비애감을 느낄 수 있다. 

소나무 숲길이 일품인 융․건릉
연둣빛 신록이 한창인 요즘 융·건릉의 송림이 우거진 숲길을 걸어보는 것도 좋은 일이리라. 건릉은 조선 제22대 왕 정조와 부인인 효의왕후 김씨를 같은 봉분에 합장한 무덤이다. 홍살문과 정자각을 둘러보고 융릉으로 가는 길 입구에 놓인 원대황교를 건넜다. 먼 옛날 정조대왕이 건넜던 다리를 왕이 된 듯 걸어보았다. 융릉은 사도세자와 부인 혜경궁 홍씨의 합장릉이다.

화성에는 고정리 공룡알화석 산지와 비봉습지공원, 용주사, 아름다운 꽃처럼 피어나는 섬 국화도, 주한미군 공군의 폭격훈련장이었던 매향리, 호수경관이 좋은 동탄 호수공원 등이 있다. 화성은 자연과 역사와 문화를 두루 돌아보기에 좋은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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