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도 동물이 하는 짓은 다 한다 - 45

대파의 늙은 잎의 세포는 물이 많아 얼어 죽고 반면, 어린잎은 물은 적고 당(糖)을 많아 영하에도 얼지 않는다.

 

지난해는 배추가 풍년이라 내가 사는 오산에도 밭에 내버려둔 배추가 많았다. 된서리에 겉잎부터 얼어들어가면서 12월이 되자 폭삭 물러앉아 버렸다. 주인이 정성들여 가뭄에 물도 주고 비료도 준 것이라 참 아까웠다. 그런데 밭 귀퉁이에 비료 냄새도 맡지 못해 포기도 앉지 못한 채 납작하게 땅에 붙어 있던 배추는 혹한에도 끄떡없이 겨울을 나서 봄동이 되고 있다. 배추밭가의 대파도 겨울을 잘 견디고 있다.
왜 같은 배추인데 포기 앉은 배추는 얼어 죽고, 봄동과 대파는 얼어 죽지 않는가? 포기 앉은 배추는 비료와 물을 실컷 먹고 무럭무럭 자랐다. 빨리 자라다 보니 세포벽이 얇아 잎과 줄거리가 연하고, 세포에 물이 많아 쉽게 얼 수밖에 없다. 반대로 비료가 닿지 않은 배추는 빨리 자랄 수가 없었다. 겨우겨우 살아가자니 자연이 세포벽이 두꺼울 수밖에 없으니 좀처럼 얼지 않는다. 시련을 많이 겪은 사람이 역경에도 잘 견디는 것처럼.

보리나 대파 같은 월동작물은 아예 겨울추위를 가을부터 단단히 대비한다. 식물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자람을 멈추고 만드는 양분을 모두 전분으로 저장한다. 10월 하순경이 되면 전분을 추워도 얼지 않는 당(糖)으로 만든다. 그와 동시에 물을 세포 밖으로 내보낸다(노지 채소가 겨울에 고소한 것은 이 때문이다). 이런 복잡한 화학변화가 일어나 영하 50도에서도 얼지 않는다. 그런데 대파를 보면 늙은 잎은 얼어 죽는데 반해 어린잎은 여전히 푸르다. 늙은 잎의 세포는 늙으면서 물주머니인 액포가 점점 커져 90%나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어린잎은 액포가 10%도 안 된다. 어린잎이 얼지 않는 것은 물은 적고 당분은 많기 때문이다. 물론 대파에는 강추위에도 살아남을 수 있는 유전자가 있기도 하다. 날씨가 따뜻해지면, 맛있는 성분은 자라기 위해 분해돼서 잎이나 뿌리는 맛이 없어져 버리기 때문에, 더덕 같은 뿌리채소는 땅이 녹으면서 바로 캐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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