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자수필-귀농아지매 장정해 씨의 추억은 방울방울

"맵고 젓갈내 풍기는
생파김치를 먹고 나면
입안이 얼얼하지만
애들은 그 맛을 좋아한다"

올해는 예년보다 꽃이 일찍 일어난다. 청매가 하나 둘 꽃잎을 틔우기 시작하더니 집 뒷담에 개나리가 송곳니 같은 노란 꽃망울을 뾰족뾰족 내밀고, 홍매도 무당벌레처럼 동그랗게 부풀기 시작했다. 목련 하얀 꽃봉오리가 제법 봉긋하고 덩달아 배나무 봉오리도 움직이기 시작한다.
작은 딸이 전화를 걸어왔다. “마덜~ 4월 첫 주에 오시는 거예요?” “그래 부활주일이라 올라갈 거야.” “엄마 김치 떨어졌어.” “내가 뭐해가지고 갈까? 부추김치, 파김치 다 먹었지?” “파김치는 벌써 끝났고 부추김치가 조금 남아있어 아슬아슬해.” “그래, 그럼 기다릴 것 없이 낼이라도 먼저 해서 부쳐줄게.” 

통화를 끝내자마자 나는 단골 채소가게로 나왔다. 큰 쪽파 한 단에 1만8천 원이란 말에 값이 너무 세다싶어 쳐다봤더니, 주인아줌마가 주저 없이 반을 가르며 반만 가져가라고 한다.
“지난 설에는 이만한 것이 5만 원이 넘었어. 지금은 많이 내린 값이야.” 좀 많은 듯 했지만 애들도 주고 우리도 먹을 요량으로 “그냥 다 주세요, 그리고 부추도 한 단 주고, 무도 두 개 더 주세요.”
대파 값이 오르니 덩달아 쪽파 값도 오르는 게 당연하다. 올 초부터 대파 값이 세 배나 올랐다. 안 먹으면 그만이지만 음식 맛을 내는데 대파는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양념채소라 조금이라도 꼭 있어야 한다.

올해 파가 비싼 데는 농사짓는 우리가 그 사정을 더 잘 안다. 재작년에 대파 가격이 폭락해 평년보다 대파면적을 줄여 출하량이 줄어든 데다, 50여 일이 넘는 긴 장마, 남도지방의 유래 없는 폭설 등 자연재해가 겹치고 코로나19로 가정마다 집밥을 해먹다보니 수요가 많아져서 가격이 오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재작년만 해도 김장이 끝나면 이웃끼리 거름비닐포대에 대파를 한 가득씩 나눠먹었다. 근데 작년에는 워낙 농사를 망쳐서 자기 먹을 것도 모자랐다. 늘 채 썬 파채를 한 봉지씩 주던 단골 정육점에서도 월계수 잎이나 쌈무로 대체했다.
파김치나 부추무김치나 양념베이스가 거의 비슷해서 나는 김치를 담그는 김에 많이 해서  애들도 주고 이웃과도 좀 나누고 싶었다. 쪽파가 큰 스테인리스 양푼으로 하나, 부추, 무김치도 양푼이로 하나, 김장하듯이 곰삭은 젓갈양념에 뻘건 고춧가루에 갖은 양념으로 버무렸다.

보고 있던 남편이 “자식 말 한 마디가 무섭네~ 김치 담그느라 애쓰는구만. 흐흐흐” “삭힌 깻잎을 오늘 밤에 물에 담궜다가 낼 일찍 꼭 짜서 깻잎김치도 담가 같이 보내야 해요.” “엊그제 밭에 보니까 쪽파가 조금 보이던데.”

겨울을 나는 동안 파가 거기 있는 줄도 모르게 밭 귀퉁이에 검불덩이를 뒤집어쓰고 살아 있었나보다. 근데 며칠 전부터 초록색을 띄며 제대로 파꼴을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양념간장에나 쓰려면 아직은 좀 더 자라야 할 거야.”

마른 잎은 다 어디로 갔는지 파릇파릇 쪽파줄기가 휑한 밭에서 여봐란 듯이 쑥쑥 키를 높이고 있었다. 놀라운 생명력이다. 겨울 추위를 견딘 모습이 그렇게 당당할 수가 없다. 먹기도 아깝고 애틋하다. 고생을 함께 겪었기에 그 고마움과 안쓰러움이 어떤 것인지 아니까.

파릇하니 훌쩍 더 크면 김치도 담그고 파무침도 하고 파숙회도 하겠지만 지금쪽파는 꽃보다 예쁘다. 돈 주고 사서 먹을지언정 지금은 두고 보고 싶은 것이 키우는 것이 때론 피붙이 같다. 빨갛게 버무려 완성한 김치를 국물이 흐르지 않게 포장해서 서울로 부친다. 맵고 젓갈내 풍기는 생파김치를 먹고 나면 입안이 얼얼하지만 어릴 적부터 먹어온 맛이라 그런지 우리 애들은 파김치 맛을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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