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 옛날의 트로트- 노래의 고향을 찾아서

<42>‘엘레지의 여왕’ 이미자

▲ 끝까지 ‘가수 이미자’로 남고 싶다는 이미자는 천생 가수다.

‘아득히 머나먼 길을 따라 / 뒤돌아보면은 외로운 길 / 비를 맞으며 험한 길 헤쳐서 / 지금 나 여기 있네 / 끝없이 기나긴 길을 따라 / 꿈 찾아 걸어 온 지난 세월 / 괴로운 일도 슬픔의 눈물도 / 가슴에 묻어놓고 // 나와 함께 걸어가는 노래만이 나의 생명 // 언제까지나 나의 노래 / 사랑하는 당신 있음에 / 언제까지나 나의 노래 / 아껴주는 당신 있음에’

가수 이미자(1941~ )의 평생콤비로  ‘엘레지의 여왕’이란 타이틀을 안겨준 작곡가 박춘석(1930~2010)이 이미자 가수 데뷔 30주년이 되던 1989년에 이미자에게 헌정(작사·작곡)한 노래 <노래는 나의 인생>이다.

이젠, 또 그만큼의 세월이 더해져 노래인생 60년을 맞았다. ‘괴로운 일도, 슬픔의 눈물도 가슴에 묻어 놓고, 꿈 찾아 비를 맞으며 외로운 길, 험한 길을 따라 걸어온 길’이었다.
특별한 기교 없이도 듣는 이들에게 깊은 울림을 주는 가장 큰 이유는 뭘까…? 한결같이 “바로 내 이야기야!”다.

그건 스토리가 있는 노랫말의 힘 일까, 다소 청승맞기까지 한 노래 곡조의 분위기 탓일까, 그도 저도 아니면 노래를 부른 이미자의 가련·비애감이 느껴지는 구성진 목소리 때문일까…

목숨줄 끊어놓는 것 같았던 ‘금지곡’ 족쇄
한때는 그녀의 3대 히트곡으로 불리는 <동백아가씨>, <섬마을 선생님>, <기러기 아빠>가 ‘왜색조(일본풍)·나라 경제발전을 저해하는 비탄조 노래’라는 이유로 줄줄이 금지곡 처분을 받은 적이 있다. 이때를 그녀는, “정말 내 목숨을 끊어놓는 것 같았다. 죽고 싶었다”고 얘기했다.
오로지 노래만이 자신의 존재 이유였던 그 지난한 세월의 흔적들이 그녀의 노래인생 60년 2500여 곡의 노래에 녹아 흐른다. 올해로 여든 하나. 이제는 ‘망구(望九)’-구십을 바라보는 적지않은 나이에 그녀는 ‘트로트의 전설’이 됐다.

 

▲ 이미자 최고의 히트곡 <동백아가씨> 앨범재킷

          <동백아가씨>
1. 헤일 수 없이 수많은 밤을
   내 가슴 도려내는 아픔에 겨워
   얼마나 울었던가 동백아가씨
   그리움에 지쳐서 울다 지쳐서
   꽃잎은 빨갛게 멍이 들었소

2. 동백꽃잎에 새겨진 사연
   말못할 그 사연을 가슴에 묻고
   오늘도 기다리네 동백아가씨
   가신 님은 그 언제 그 어느날에
   외로운 동백꽃 찾아 오려나

          (1964, 한산도 작사 / 백영호 작곡)

 

▲ <동백아가씨> 노래비(부산 해운대구 우동 동부올림픽타운 도로변 소재)

1959년 열아홉 나이에 <열아홉 순정>(반야월 작사/ 나화랑 작곡)으로 데뷔했다. 그리고 신성일·엄앵란 주연의 영화 <동백아가씨>의 주제가 <동백아가씨>를 불러 크게 히트하며 일약 트로트 스타로 떠올랐다. 이때 부의 상징이었던 집·전화·자동차를 장만했다.
<동백아가씨>는 서울 충무로 스카라극장 부근의 한 목욕탕 건물 2층에서 방음장치를 해놓고, 얼음물에 발 담가가며 이미자가 임신 9개월 만삭의 몸으로 힘들게 녹음했다는 57년 전의 눈물겨운 에피소드도 전해온다.

이 노래는, 국내 가요사상 최초로 가요프로그램에서 35주(약 9개월)동안 1위를 하고, 당시 25만장의 음반 판매기록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왜색조’라는 이유로 방송금지처분을 처음 받은 이후 1987년 금지곡 족쇄가 풀릴 때까지 최장기간 금지곡으로 묶여 있던 기록도 보유(?)하고 있다.

어쨌거나 <동백아가씨>의 히트가 계기가 돼 ‘촌스러운 뽕짝가수’ 이미자는, 1960년대 대한민국 트로트의 ‘아이콘(icon, 상)’이 됐다.
그런 그녀가 자신의 가수인생 60년에서 가장 잊을 수 없는 두 사람을 얘기한 적이 있다. 작곡가 백영호와 박춘석이다. “백영호 선생님은 아버지 같았던 분, 박춘석 선생님은 오빠 같았던 분”이라고 했다.

▲ <흑산도 아가씨> 노래비(전남 신안 흑산도 소재)

그 일례로 작곡가 박춘석은, 이미자가 부른 전체 노래 2500여 곡 중 <섬마을 선생님>, <흑산도 아가씨>, <기러기 아빠>, <그리움은 가슴마다>, <황혼의 블루스>, <삼백리 한려수도> 등 500여 곡을 만들어 주면서 1급 트로트 조련을 시켰다.

‘엘레지의 여왕’이란 애칭도 1967년 이미자 자전스토리를 영화화 한 남정임·박노식 주연의 <엘레지의 여왕>에서 박춘석이 영화음악을 담당하면서 자연스럽게 주제가를 부른 이미자에게 따라붙었다.

어린 나이에 가정형편이 어려워 노래로 밥을 구해야 했던 가난의 시린 기억, 가수 초년시절의 결혼과 남편폭력으로 인한 이혼의 쓰린 기억들은 그녀가 확실하게(어쩌면 지독하게) 트로트 영역을 구축해 정상에 오르면서 극복됐다. 그리고 가정생활의 안정을 찾아 1970년 당시 KBS PD 출신 방송위원이었던 김창수씨와 재혼해 슬하에 아들 하나를 뒀다. 그녀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가정생활을 이렇게 얘기했다.

“가정에서는 남편(‘우리집 주인양반’이라 호칭) 다음이 나다. 아침에 일어나면 마실 물을 떠다드리고, 외출 하실 때는 와이셔츠부터 양말까지 전부 챙긴다. 식사는 손수 만들어서 갖다 드리고, 저녁에 들어오실 때에도 미리 준비해 놓는다. 밖에는 거의 안나간다. 그래서 아는 사람도 별로 없다.”
이 말에 전혀 의외라는 반응도 높았지만, 그녀는 그런 밖의 시선에 굳이 신경쓰지 않는다고 했다. “나는 내 방식대로의 인생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노래가 그렇듯이.

 

▲ <여자의 일생> 앨범재킷

             <여자의 일생>
1. 참을 수가 없도록 이 가슴이 아파도
   여자이기 때문에 말 한마디 못하고
   헤아릴 수 없는 설움 혼자 지닌 채
   고달픈 인생길을 허덕이면서
   아~참아야 한다기에
   눈물로 보냅니다 여자의 일생

2. 견딜 수가 없도록 외로워도 슬퍼도
   여자이기 때문에 참아야만 한다고
   내 스스로 내 마음을 달래 가면서
   비탈진 인생길을 허덕이면서
   아~참이야 한다기에
   눈물로 보냅니다 여자의 일생

          (1968, 한산도 작사 / 백영호 작곡)

 

화가 천경자(1924~2015)는 생전에 “그 여자(이미자)의 노래를 들으면 살고 싶은 욕망이 생긴다”(1977년 10월1일자 <동아일보>)고 했다.
<여자의 일생>을 듣는 이 땅의 여인들 거의 모두가 “맞아! 맞아!” 하며 무릎을 쳤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눈가에 그렁그렁 맺혀오는 눈물을 거친 손등으로 연신 찍어댔다. 그건 숙명 이라면서…

▲ <황포돛대> 노래비(경남 진해 영길만 해안도로변 소재)

영원히 기억되는 ‘가수 이미자’로 남고싶어
그녀는 자신의 노래 인생에서 특별한 분기점을 맞을 때마다 팬들을 만나 한결같은 자신의 모습과 자신의 노래를 들려줬다.
1979년 대한극장에서의 데뷔 20주년 기념공연, 1985년 일본 도쿄·오사카 공연, 1989년 가수생활 30년 기념 세종문화회관 공연, 그리고 같은 해의 미국 뉴저지 공연, 2003년의 북한초청 평양 특별공연, 2019년 5월의 <이미자 60주년 음악회>(세종문화회관)까지.

한창 전성기 때인 1960년대에는 한 해에 음반 10장씩을 내는 것을 목표로 해, 데뷔 10년째인 1969년에는 <1000곡 돌파기념 리사이틀>을 갖기도 했다.
그중 특히 1989년의 데뷔 30주년 기념 세종문화회관 공연은, 하나의 문화계 사건으로까지 일컬어진다. 당시 세종문화회관은 대중가요 가수들에게는 감히 발 들여놓을 엄두도 내지 못할 성역으로 여겨질 때였다. 그녀가 대관신청을 하자, “이미자 노래는 고무신짝들이 많이 들어와 질서가 없어지고, 문화를 해친다”는 이유로 대관 자체를 거절당했다.

이때 당시 고건 서울시장의 도움으로 대중가요 가수, 그것도 ‘뽕짝’으로 불린 트로트 가수에게는 역사상 처음으로 대관이 허락됐다.
이제 그녀에게는 가진 시간이 많지 않다. 그녀는 말한다.

“노래는 타고나야 하는 게 맞고… 저는 (노래를) 높지도 낮지도,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아야 한다는 신념으로 불러요. 인생도 ‘앞서 가야 한다’는 생각으로 산 것 같지 않아요. 그냥 좀 뒤에 처지더라도 꾸준히 가자. 앞서 가면 넘어질 수 있으니 천천히 바르게 가자 했지요. 그런데, 이제는 라이브로  무대에서 할 수 있는 한계가 왔어요. 그러나, 영원히 기억되는 ‘가수 이미자’로 남고 싶어요.”
그렇게, 누가 뭐래도 ‘천생가수’ 이미자의 ‘60년 트로트 대장정’은 아직도 ‘정중동’의 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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