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옥임 순천대학교 명예교수/사회학

"차별 없는 생존을 위해
잘못된 관행이나 제도를
여성 한사람의 능력으로는
결코 이루지 못한다.
개인의 삶 자체가 망가지거나
너무 지쳐 도저히 감당할 수 없어
포기하기 때문이다.

여성들의 연대가
강한 의지와 견고한 결속력으로 이어져
목표를 효과적으로 달성한다."

▲ 박옥임 순천대학교 명예교수/사회학

3월8일은 세계여성들에게 뜻 깊은 날이다. 바로 UN이 정한 세계여성의 날이기에 그렇다. 113년 전인 1908년 열악한 작업환경 속에서 한 여성 노동자가 불에 타 죽는 사건이 발생하자 이에 분노한 미국의 여성 노동자들이 뉴욕 광장에 모여 장미와 빵을 달라고 외쳤다. 장미는 남성과 동등한 참정권을 요구하는 것이고, 빵은 생존권 문제로 장시간 저임금의 노동조건을 개선하라는 요구의 상징이었다. 여성 참정권 운동은 2016년에 개봉한 영화 ‘서프러제트(Suffragette)’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영국에서 남성 중심의 견고한 정치권을 흔들어 1918년에야 겨우 실현됐다.

여성의 참정권은 결국 노동권과 궤를 같이한다. 100여 년 전인 1922년 서울 서대문의 정측강습소에 여성 최초로 머리를 짧게 깎은 남장의 강향란이라는 여성이 나타났다. 남성에 의존하지 않고 측량을 배워 자립해서 남성처럼 살아보겠다는 것이었다. 당시 남성의 단발은 개화나 근대화의 상징이었지만 여성의 단발은 전통을 파괴하는 위험한 행위로 비난이 극심했다. 그 여성이 남장한 이유는 애초부터 여성을 교육생으로 받아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 후 60년이 흘러 1983년에 전화교환원 김영희는 43세의 나이로 해고를 당했다. 당시 남성의 정년은 58세였는데 말이다. 성차별적인 근로규정을 바꾸려고 대법원까지의 7년간 소송으로 차별을 바로 잡았다. 장기간의 소송에서 이길 수 있었던 힘은 당시 앞장서서 함께 한 여성민우회 등의 단체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처럼 여성단체가 여성의 생존권과 관련된 문제를 이슈화하면 힘이 실리게 돼 원하는 목표를 좀 더 빨리 이룰 수 있다. 특히 농촌여성들은 일상에서 겪고 있는 불편사항이나 개선할 문제가 산적해 있는 것이 현실이다. 다만 그것을 문제로 인식하지 않으면 보이지 않을 뿐 아니라 공론화 할 수도 없고, 사회의 관심조차 받을 수 없다.

혹자들은 오늘날 한국사회가 민주화돼 여성이 차별받는 일이 사라졌다고 한다. 그렇다면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나라 여성들이 생존권 차원에서 차별 없이 경제활동을 하고 있는가. 어째서 여성 임금이 남성 임금의 80%에 멈춰 있는가. 도대체 경력단절 여성이라는 용어는 끊임없이 언론에 회자되면서도, 그들이 노동시장에 진입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여성성폭력피해자가 해마다 증가하는 현실은 무엇인가. 학대받는 여성노인이 남성노인보다 4배나 높은 상황은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

여기에 농촌여성들의 삶의 질을 분석해보면 훨씬 더 열악함은 두말이 필요없다. 따라서 농촌여성단체에 부여된 책임감과 기대치는 도시의 여성단체보다도 기능과 역할이 훨씬 막중하다.
농촌여성단체는 농촌이라는 특수성과 여성단체의 보편성을 잘 접목해 접근하면 가시적인 성과를 이끌어 낼 수 있다. 아직도 여성의 생존권인 노동을 여성 개인으로만 한정시키는 것 자체가 구시대적이고 본질에서 벗어나 있다. 왜냐하면 농촌여성의 삶은 생계를 같이하는 가족의 생존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차별 없는 생존을 위해 잘못된 관행이나 제도를 여성 한사람의 능력으로는 결코 이루지 못한다. 개인의 삶 자체가 망가지거나 너무 지쳐 도저히 감당할 수 없어 포기하기 때문이다. 참정권이나 노동권을 쟁취한 사례에서 보듯이 여성들의 연대가 강인한 의지와 견고한 결속력으로 이어져 목표를 효과적으로 달성할 수 있다.

농촌에서 3월은 물오름 달이라고 한다. 새롭게 출발하는 농촌여성단체가 생명의 원천인 물이 모든 생물을 살리는 것처럼 농촌여성들의 삶에 생기와 활력이 생기고 농촌여성들을 위한 정책도 봄기운처럼 솟아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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