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TA대응 한국농업 희망탐색시리즈 ④ 무엇이 우리를 농업·농촌으로 이끄는가…

 

욕심 줄이고 쾌적하게 살려면 농촌으로…
전남 4개 지역 ‘슬로우 시티’ 선정
현대화된 농촌, 젊은이에게 기회의 땅

 

농촌은 살 수 없는 곳인가? 농촌은 계속 피폐돼 가기만 할 것인가? 농촌은 젊은이들이 기피하는 곳인가? 이 질문에 우리 국민 모두가 “예”라고 대답한다면 우리 농촌은 희망이 없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지금도 농촌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이 있고, 기회를 기다리며 준비를 하는 사람들이 있고, 농촌으로 들어가는 것을 평생의 꿈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무엇이 사람들을 농촌으로 불러들이는가?
세계적으로 ‘슬로우 시티(Slow City)운동’이 일어나고 있다. 느림의 아름다움을 바탕으로 급하게 살지 않고 자연과 더불어 천천히 조화롭게 살자는 운동이다. 도시 전체에서 자판기, 냉동식품, 패스트푸드, 백화점, 할인마트를 몰아내고, 버스도 없애고 주민은 걷거나 자전거를 이용해서 움직인다. 슬로우 시티는 인구 5만 명 이하의 마을과 도시에 대해서만 슬로우 시티 국제연맹이 심사를 해서 선정한다.
이 운동은 1999년 이탈리아의 작은 소도시 ‘그레베 인 키안티’ 시장으로 취임한 ‘파울로 사투르니니’가 시작했다. 파울로 시장은 “빨리빨리 살 것을 강요하는 바쁜 현대생활은 인간을 망가뜨리는 바이러스”라고 주장한다. 지금까지 슬로우 시티 국제연맹이 지정한 슬로우 시티는 10개국 93개 도시이며, 우리나라는 2007년 12월1일 전남 완도군 청산도, 신안군 증도, 담양군 창평면, 장흥군 유치면이 아시아 최초로 선정됐다.

 

“농촌, 시선 낮추면 더없는 낙원”
인간은 원래 자연 속에서 태어났고 자연 속에서 살다 자연으로 돌아갔지만 문명이 발달하자 도시화가 이뤄지고 점차 살기에 편리한 도시로 몰려들었다. 많은 사람들이 복작대는 도시는 공해로 공기와 물이 오염됐고, 밤낮없이 발생하는 소음으로 마음 편히 쉴 수 있는 환경을 앗아 갔다. 거기서 사는 사람들은 틈만 나면 산과 바다로 탈출한다. 여름 휴가철 영동고속도로가 주차장으로 변하는 것은 도시민의 간절한 자연의 그리움이 불러오는 극단적인 한 단면이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깨끗한 공기와 물, 그리고 신선한 먹을거리와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사는 것이 꿈이다. 이런 환경은 인구 5만 이상의 도시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그 때문에 슬로우 시티 연맹은 인구 5만 명을 상한선에 놓고 있다. 따라서 완도군의 청산도나 신안군의 증도 지역은 사람이 살기에 매우 적당한 지역임에 틀림없다. 이런 농촌지역만이 ‘느리게 사는 생활(slow life)’을 즐길 수 있다.

“이곳에서 나는 다람쥐처럼 멧돼지처럼 노루처럼 살 것입니다. 그래서 언젠가는 숲을 보고도 감나무를 보고도 더 이상 경이로워하지 않을 만큼, 나 자신 그대로 자연이 되어 살 것입니다. 단지 산골로 이사를 왔을 뿐인데 모든 것이 한꺼번에 달라진 것 같습니다. 나는 지금 믿기지 않을 만큼 행복합니다. 쓰는 것보다 얻는 게 더 많습니다.”
황규섭(44)씨 가족이 도시생활을 접고 충북 진천군 백곡면 구수리에 이사한 첫날 부인 안상숙(43)씨가 가족 홈페이지에 올린 글이다. 농촌이 우리 대다수의 고향이거니와 마음의 고향인 것은 거기에는 심신을 껴안아주는 자연이 있기 때문이다. 요즘같이 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살아야 하는 도시인들에게 농촌은 더할 수 없는 안식처이다.
그러나 정작 농촌에 사는 대부분의 농민들은 농촌의 진정한 가치를 무시하거나 느끼지 못하고 있다. 그 이유는 도시근로자 수입의 80%에 그치는 소득과 어려운 농사일, 소외된 문화혜택 등이 그들의 마음을 무겁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도시민이 농민들보다 더 좋은 환경을 누리고 사는 것은 아니다. 도시민의 상당수 역시 도시생활의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불안정한 일거리와 비좁고 쾌적하지 못한 주거시설과 신선한 먹을거리의 부족, 돈이 없으면 전혀 움직이지도 못하고 먹지도 못하는 상황에 처할 수 있다는 상황에 대해 불안하다고 털어놓는다.
‘농촌은 시선을 낮추는 이들에게는 더없이 좋은 낙원’이라고 한 어느 시인의 말처럼 욕심을 줄이면 쾌적하게 생존을 즐길 수 있고 행복한 생활을 할 수 있는 장소이다.


백곡면 구수리에 이사와 살고 있는 안상숙씨는 이렇게 말한다.
“도시는 소비문화잖아요. 농촌은 쓰는 것보다 얻는 게 많아요. 사시사철 먹을 게 지천이지요. 우리는 ‘노천시장’이라고 불러요. 어제도 농사짓는 아줌마들이 들깨 따가라고 해서 얻어오고, 오는 길엔 시래기도 따 왔어요. 손이 부족해서 못 갖고 오는 게 아쉽죠.”
만일 도시근로자가 요즘 같은 경제상황에서 백수가 됐다고 가정하자. 그는 수중에 돈이 있을 때까지는 살 수 있지만 돈이 떨어지면 먹는 문제 자체가 어려움에 빠진다. 그러나 농촌에 사는 사람이라면 안 씨가 말한 것처럼 먹는 문제만은 도시근로자처럼 절박하지 않다. 농촌에는 맑은 공기와 깨끗한 물, 그리고 밖으로 나가기만 하면 먹을거리가 언제나 들과 산에 풍족하게 널려 있다. 인심이 아직도 따뜻해서 굶어죽도록 내버려 두지 않는다.
북한같이 먹을거리가 언제나 태부족인 지역에서도 농촌사람들만은 배를 곯지 않는다. 자신들이 식량주머니를 차고 있기 때문이다. 농촌의 장점 중에 이보다 더 큰 장점이 무엇이겠는가?

 

“자연에 순응한 삶은 행복하고 건강”
미국의 환경운동가이면서 작가인 스콧 니어링은 대학교수로 정치적으로 민감한 문제와 전쟁에 대한 비판적인 견해를 주장하다 사회로부터 위험분자, 과격분자로 몰려 소외를 당했다. 그는 스무 살 연하의 매력적인 여성 헬렌 노드를 만나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 5년 후, 그의 나이 50에 버몬트의 농촌에서 농사를 시작해서 101살로 눈을 감을 때까지 51년 동안 농사를 지으며 자급자족하는 생활을 했다.
그가 쓴 ‘조화로운 삶의 지속’에서 “자연에 순응해 사는 삶은 행복하고 건강하다”고 말하고 있다. 이 책을 읽은 미국사람들은 ‘자연으로 돌아가자’며 귀농행렬을 만들었고, 우리나라에서도 번역서를 본 많은 젊은이들을 귀농하게 하는 지침서가 되고 있다.
그들 부부는 모든 먹을거리를 손수 생산해 먹었고, 인세와 강연료는 한 푼도 어김없이 기부했다. 필요한 돈은 블루베리를 생산하고 사탕단풍나무 시럽을 만들어 팔아서 썼다. 니어링은 말한다. “간소하게, 간소하게 살라! 두 가지나 세 가지로 줄일 것이며, 백 가지나 천 가지가 되게 하지 말라. 간소화하라, 간소화하라. 하루 세 끼가 아니라 필요하다면 한 끼만 먹어라. 백 가지 요리는 다섯 가지로 줄여라. 이런 비율로 다른 일도 줄여라.”
이들 부부의 농촌생활에 대해 “담백하고 간편하게 조리한 음식, 돈이 적게 드는 소박한 먹을거리는 자연에 더 가까워 몸을 훨씬 튼튼하게 추슬러준다. 푼돈을 아끼며 사는 살림이라도 맑은 영혼을 지니고 있다면 온 식구가 불가에 둘러앉아 기쁨을 나눌 수 있다.”

 

농업은 청년에게 다양한 일거리 제공
독일 연방정부는 농업을 이렇게 설명하면서, 젊은이들에게 농촌으로 갈 것을 간접적으로 권하고 있다.
‘농업은 젊은이들에게 흥미로운 직업분야를 제공하고 있다, 농업은 다른 직종과 달라 일 년 내내 또는 매일 똑같은 작업을 반복하지 않고 변화하는 자연조건에 적응하면서 다양한 일을 한다. 오늘날 육체적으로 힘든 작업들은 대부분 농기계가 대신 해 매우 편해졌다. 대신 농민은 계획수립, 시장정보 수집, 경영관리, 생태농업 및 경관관리 등에 보다 많은 비중을 두고 있다.
농업은 모든 사람들에게 매우 다양하고 현대적인 직업분야를 제공하고 있다. 요즘 농민들은 자연과 기술을 다루는 것은 물론 컴퓨터를 잘 활용할 줄도 안다. 가축이나 작물을 기르는 실력도 있다. 농업과 긴밀한 연관을 가진 직업으로서 동물사육, 식물 육종, 유가공, 농자재산업 등 도전적이며 다양한 직종들이 있다. 모든 산업분야 중에서 농업보다 다양한 직종들을 제공하는 분야는 없다.’
어떤 농촌 예찬론자는 이렇게 말한다. “농촌과 도시의 좋은 점과 나쁜 점을 견주어 보건대, 농촌에 사는 편이 더 좋다는 쪽으로 저울이 기우는 건 틀림없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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