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만나봅시다 - 집 고치는 여성들 ‘여기공 협동조합'

가구를 벽에 잘 고정하고 싶어도, 깨진 변기를 교체하고 싶어도, 하다못해 전구를 하나 갈고 싶어도 다른 사람의 손을 빌려야 했던 여성들이 스스로 나섰다. 여기공은 여성과 기술을 연결하는 장을 만드는 곳이다.  여성이 교육을 통해 기술을 익히고 일상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돕는다. 여기공협동조합의 이현숙 대표는 “여성에겐 그동안 기술을 배울 기회가 원천적으로 차단됐었다. 제대로 기술을 배울 기회가 없다보니 여성은 점점 더 기술에서 소외됐다”고 말한다.

▲ 이현숙 대표는 '인다'란 닉네임으로 활동하고 있다.

‘적정기술’로 일상생활에서 용기 얻기 
“여성이라고 기술을 배우지 못할 이유는 전혀 없어요. 다만 별다른 설명 없이 일단 공구를 사용해 보고 기술을 익히는 방식이나. 여성의 몸에 맞지 않는 공구, 실습기회를 박탈하는 과도한 도움 등이 여성이 기술을 익히는데 걸림돌이 될 뿐이죠. 이런 걸림돌만 제거된다면 여성도 기술을 어렵지 않게 배울 수 있어요” 이 대표는 고도의 기술이 아닌 ‘적정기술’은 일상생활에서 엄청난 용기를 주고 자립에도 큰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덧붙인다.

 강좌 1시간 만에 마감되기도 
사실 삶에 필요한 기술을 배우고 그 기술을 자신의 삶에 적용하고 지역사회에 있는 재료를 충분히 활용해서 살고자 하는 욕구는 누구에게나 있다. 기본공구의 원리만 알고 있어도 집과 공간을 돌보는 문제에 자신이 생긴다.

▲ '여기공 주택 수리과정 입문반' 포스터.

여기공에서 진행하는 여기공 주택수리과정 입문반 ‘집고치는 여성들’ 강좌는 공구 기초와 전등 달기, 실리콘 마감, 타일 깔기 등 집 고치기와 관련된 거의 모든 실무 지식을 총 10회에 걸쳐 가르친다. 현장실습을 곁들여 실제상황에서 기술을 응용하는데 무리가 없도록 커리큘럼을 구성했다. 배우는 사람부터 가르치는 사람까지 대부분이 여성이고, 강사와 수강생들은 서로를 본명이 아닌 별명으로 부르며 수평관계를 지향하고 사생활을 존중한다. 이현숙 대표는 이곳에서 ‘인다’라는 별칭으로 불려진다.

“강좌를 처음에 개설했을 때 아무도 수강신청을 하지 않으면 어쩌나 조마조마 했는데, 저렴하지 않은 수강료임에도 불구하고 오픈하자마자 한시간 만에 강의가 마감돼서 깜짝 놀랐어요”라고 말하는 ‘인다’는 교육을 하면서 특히 ‘본인만의 속도’를 강조한다.

기술을 잘 다룰 수 있게 된다는 말의 의미는 도구를 이용해 빠르고 과감하게 과제를 해낼 수 있게 된다는 말보다는 ‘호흡을 조절할 수 있게 된다’는 뜻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여기공의 수업은 고요하다. 드릴 수업도 조용히 진행된다. 전동드릴을 쓸 때도 느긋하게 돌리도록 돕는다. 세게 눌러 회전속도를 올린다고 해서 더 강하게 박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실제로 공구를 다루는 일은 힘만 좋다고 다 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거든요. 가장 중요한 것은 도구의 원리를 정확히 알고 자신의 능력을 남용하지 않는 선에서 올바르게 사용하는 거에요”라고 강조하는 이 대표다.

 의성으로 향하는 여기공
올해 이현숙 대표는 여성기술자 양성을 고향인 경북 의성에서 이어가고자 하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의성에서 여성을 대상으로 기술교육을 하면서 여성들이 편하게 작업할 수 있는 여성친화 ‘메이커 스페이스’(전문장비가 갖춰진 공동작업공간)를 조성하려고 한다.

“귀농·귀촌하고자 하는 여성들이 들를 수 있는 공간과 프로그램을 만들어보려고 해요. 기술교육을 같이 받고 장비도 대여할 수 있는 조금 안전하고 편안한 영역이 있으면, 여성의 경우 자신이 선택한 농촌에서 쉬고 싶거나 편안해 질 수 있을 것 같아요."

현재 많은 공장과 공방의 작업대, 공구들이 남성의 신체사이즈를 기준으로 만들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의성에서의 공간은 어린이나 청소년, 여성, 노인, 남성 누구나 할 것 없이 기술을 배우고 싶을 때 그들에게 맞는 안전장비와 공구, 작업대가 마련돼 있는 공간으로 조성할 계획이다. 서울과 지역을 오가며 많은 여성을 만날 여기공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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